[리뷰Factory.26] 해체되므로 더욱 강렬하게 부활한 페르귄트, 연극 ‘영매’

제 6의 감각으로 행위 하는 무대 위의 배우들
영매(靈媒)의 사전적 의미는 ‘신령(神靈) 또는 사자(死者)의 뜻을 전달, 혼령과 인간을 매개하는 사람’이다. 즉 단절돼 소통할 수 없는 관계의 소통을 이루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신과 직관, 그리고 예술의 영역이다. 이제 무대 위에는 전에 없던 행위와 소리가 감각적으로 반복된다. 그들은 설명할 수 없는 영감으로 충만해 있으며 그 세계의 의미를 강제로 이해시키려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감각에 솔직할 뿐이다. 

‘Ouija! 영매’는 ‘Ouija! 프로젝트’로 형식과 장르, 국적, 예술의 경계 넘기를 시도한다. 이 프로젝트는 현지 공연 예술단체가 기존에 완성한 작품을 재료로 한다. 재료가 되는 완성작은 새로운 영감, 타 장르의 표현 요소들과 만나며 다른 작품으로 발전, 개조된다. 연극 ‘영매’는 극단 여행자의 2009년 연극 ‘페르귄트’를 재료로 사용했다. 이제 ‘페르귄트’는 해체, 재구성, 가공의 과정을 거쳐 원작과는 다른 표현법을 가진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했다. 극단 여행자와 세계적인 비주얼 아티스트 캐서린 설리번, 다원예술가 션 그리핀의 만남은 연극 ‘영매’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 목적이 분명한 감각적 행위의 기계적 반복 

연극 ‘영매’는 완결된 서사를 해체, 분절시킨 후 그들만의 리듬으로 재창조했다. 퀼트처럼 서로 다른 조각들이 모여 또 하나의 미학을 이룬다. 배우들은 조합된 퀼트 천과 같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합창하며 무리지어 움직인다. 마치 한 내면의 다중인격이 동시에 형상화된 듯 다르면서도 같다. 서로 다른 객체들은 음악, 소리, 혹은 리듬에 맞춰 자신만의 습관적 동작을 반복한다. 추상적이면서도 기계적인 이 행동은 충동적 행위처럼 보이나 배우들은 훈련돼 있다. 그 결과, 각자의 캐릭터가 생생히 살아있음을 알린다.  

이들이 내뱉은 산발적 언어는 무작위로 선택된 것 같다. 그러나 어느 기점을 지나고 하나의 문장으로 정돈되며 의미를 갖게 된다. 배우들이 합창하는 문장은 시적이고 철학적이며 원초적이다. 단절된 언어와 정처 없는 서사, 제각각인 캐릭터, 그 안에서 이뤄지는 관계와 몸짓들이 이 극을 메우고 있다. 관객들은 이 모든 것을 절대로 한 눈에 조망할 수 없다. 마치 영화의 딥포커스(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에 관계없이 초점을 중앙에 맞추어 모든 화면을 선명하게 찍는 촬영기법)처럼 무대 곳곳 모든 구석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때문에 관객의 시선은 분산되고 어느 한 곳을 선택 집중해야한다. 관객들은 그 혼란 속에서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가게 된다. 

- 지적 유희, 혹은 지적 스트레스 

배우들은 관객들보다 먼저 무대에 앉아있다. 무대 한 가운데는 흙무덤과 스핑크스 액자가 놓여있고 안쪽에는 경사진 거울이 있다. 연극 ‘영매’는 연극 ‘페르귄트’의 무대와 소품을 응축시켜 상징적으로 활용했다. 무대를 반영하는 거울은 흐릿해 완벽한 형상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존재’를 비춘다. 페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이 선명해지지 않는 것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무대를 반영하고 있다. 흙은 조금 더 구체적인 상징성을 띈다. 태초에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 자연의 일부분이 된다. 과거의 인간이 잠든 흙 위에 세계는 변화, 건설되며 다시 창조된다. 인간의 근원을 상징하는 흙은 강한 조명과 시선을 받지는 못하나 묵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입센 원작의 연극 ‘페르귄트’는 주인공 페르귄트가 일생을 자유와 인생을 찾아 방황하다 죽음에 이르러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대서사시다. 연극 ‘영매’는 ‘페르귄트’의 소재와 인물 등을 선택적으로 사용했다. 여기에 한국 악기의 다양한 소리들이 라이브로 조합된다. 그 결과 무대 위 순간들이 더욱 강렬하게 요동치는 효과를 얻는다. 관객은 순간을 표현하는 그들의 행위를 보며 분석할 수는 있으나, 이 작품은 완벽한 이해 대신 순간의 교감을 원하고 있는 듯하다. 관객들은 정리되지 않는 무대 위의 표현들 때문에 즐거울 수도, 혼란스러울 수도, 또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이 영리한 작품은 공연시간을 80분으로 설정, 지적 유희를 즐길 만큼의 분량을 보여줬다. 만약 120분을 넘어갈 경우 관객들은 아마도 괴로웠을 것. 충돌과 모순, 역설을 즐기고 나면 무대 위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가득 차 시작된 무대는 텅 비어 막을 내린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