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상상하지 못한 엄마의 이별통보, 연극 ‘애자’

있을 땐 성가시고, 없을 땐 그립기만 했던 엄마
요즘 공연계는 엄마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 중 하나가 2009년 가슴 찡한 모녀의 사랑 이야기로 흥행 돌풍을 이끌었던 영화 ‘애자’를 연극화한 연극 ‘애자’다. 천륜이 맺어준 사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바로 부모와 자식. 특히 엄마와 딸이다. 연극 ‘애자’는 사고뭉치 딸과 암에 걸린 억척스런 엄마와의 사랑과 화해를 가슴 뭉클하게 그려냈다.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대한민국 대표 청춘막장 스물아홉의 박애자. 그녀는 유별나도 너무 유별난 학창시절을 보냈다. 툭하면 싸움질에, 담배까지 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시를 써야한다고 학교에 가지도 않는다. 그래도 글 실력은 ‘부산의 톨스토이’로 이름을 날렸을 만큼 뛰어났다. 글 실력과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그녀의 성격은 한마디로 다혈질의 사고뭉치. 이런 애자를 말려줄 단 한사람, 바로 인생 끝물 쉰아홉의 산부인과 의사이자 애자의 엄마 최영희다.

엄마는 눈만 뜨면 소설만 쓰는 애자를 바라보며 ‘소설 써서 빤스 한 장이라도 사봤나!’라고 말한다. 이러한 구박을 받으면서도 아랑곳 하지 않는 애자는 연신 키보드만 두드려 댄다. 왜냐? 엄마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오빠에게는 모든 걸 다 해주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이기에. 하지만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옛말이 있듯 엄마는 딸 애자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러나 엄마와의 말다툼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오빠의 결혼식에 상상초월 이벤트를 벌여 아수라장을 만들고 귀가하던 그녀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엄마가 쓰러져 병원에 있다는 것. 부랴부랴 달려간 병원에는 딸에게 소리를 지르며 당차던 엄마의 모습 오간데 없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엄마가 병원에 누워있다. 결국 엄마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은 애자는 결국 바쁜 오빠를 대신해 엄마와 원치 않은 동거(?)를 시작한다. 

엄마와 추억을 만들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애자는 엄마와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애자와 달리 불과 몇 년 밖에 살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딸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 수술을 포기하려한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징글징글하지만 그 속내를 알고 나면 결국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바로 우리네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오래전 자신이 운전하던 차에 가족을 태우고 가던 중 사고가 나게 되고 애자 아버지는 죽고 오빠는 불구가 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엄마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지금껏 살아왔다. 시한부를 선고 받고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애자는 마음이 아프다. 엄마와 티격태격하는 사이, 애자는 철이 들고, 엄마와의 마지막 여행을 준비한다. 그리고 엄마는 딸과 함께 떠난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에서 엄마는 깨어날 수 없을 만큼의 깊은 꿈속으로 홀로 떠나갔다. 그렇게 자신의 곁을 떠난 엄마에게 애자는 말한다. 사랑했다고.

연극 ‘애자’는 뻔한 시한부 신파극이 아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병에 걸려 죽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가족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말이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슬픈 이야기지만 모녀사이의 화해, 갈등 해소를 담고 있어 이 공연을 보고나면 가슴까지 따뜻해진다. 또한 이 작품은 원작의 감동과 재미를 고스란히 무대로 옮겨 놓았고 함축된 언어와 절제된 대화, 빠른 세트 교체로 연극만의 묘미를 제대로 살렸다. 언제나 내편이고 나에게 친구 같은 엄마와 그녀의 아픔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딸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다면 연극 ‘애자’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머리로 보기보다는 가슴으로 봐야하는 작품, 연극 ‘애자’는 오는 6월 20일 충무아트홀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 김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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