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34] 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연극 ‘실비아’

위기의 중년남자, 그리고 그의 개
오디세이에서 남자주인공이 이십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유모도, 아들도, 부인도 아니었다. 개였다. 그 개는 20년 동안 자기 주인을 기다렸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왔을 때, 고개를 들고 꼬리를 흔들더니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개의 충직함은 오랫동안 ‘개만도 못한’ 인간들을 감동시켜왔다. 가까이 한국만하더라도 주인을 찾아 천리 길을 헤맨 진돗개 백구가 있지 않던가. 그러나 문제가 있다. 지금 이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개라는 사실이다. 개가 자신을 다른 집에 보내려는 주인에게 죄책감과 도덕적 책임에 대해 묻는다. 또 다른 문제는 이 개가 예쁘다는 데 있다. 단순이 예쁜 게 아니라 자유롭고 본능적이며 섹시하다. 가끔은 쌍욕도 한다. 연극 ‘실비아’ 속 개는 그렇게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야기는 그렉이 직장상사와 싸우고 찾아간 공원에서 실비아라는 이름표가 달린 개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그렉은 실비아에 대한 무한애정을 표출한다. 그들의 ‘사랑’ 짙어지는 만큼 아내 케이트와의 갈등도 깊어진다. 그렉과 실비아는 손을 잡고 다닌다. 농도 짙은 스킨십에 사랑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당연하다. 우리는 집에 있는 애완견을 쓰다듬고 끌어안기를 기뻐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 실비아가 실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어 에로틱하게 비춰진다는 것이다. 이는 아내와의 관계와 대립되며 여자들(케이트와 실비아)은 화해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아내보다 먼저 떠오르는 실비아에 대해 그렉은 이렇게 묘사한다. ‘맑고 투명한 눈을 가진 실비아는 단순한 이름이나 유전자, 심리적 증상 그 이상의 존재’라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은 개를 키워야한다, 헌법에 명시해야한다, 선거권과 개를 키우는 것을 함께 묶어야한다, 그러면 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아질 것이다!”  

이 황당한 언변이 끝나고 나면 관객은 간접적 질문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현대인에게 개의 존재란 어떤 의미인가. 케이트는 실비아(그러니까 개)에게 질투를 넘어선 살의를 느낀다. 이 모든 사건의 핵심이 실비아와 그렉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연극은 실비아가 아닌 그들 당사자, 즉 점점 소원해지는 그렉과 케이트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연극 ‘실비아’는 무료하고 외로우며 소통되지 못하는 도시 부부의 현실을 까발리는 방법으로 죽음, 운명, 돈, 예술 등 거대한 소재를 사용하지 않았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사소하며 구체적인 개를 등장시켜 도시의 메마른 심리를 건드렸다는 게 신선하다. 솔직하고 당당한 실비아의 사랑은 그렉을 매료시킨다. 이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그렉의 향수가 깊음을 반증한다. 실비아를 사람으로 보고 있는 그렉은 실비아의 모든 것을 알고 개입하길 원한다. 발정기의 실비아에게는 걸레라는 말도 내뱉는다. 그렉의 집착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연극은 평소 애완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 불필요한 거부감을 없앴다. 

이제 실비아는 문제의 핵심이 뭔지 멍청한 인간 케이트에게 알려준다. 느닷없이 등장해 15년 결혼생활을 망쳐놓았다고 윽박지르는 케이트를 앉혀놓고 친절히 설명한다. 자신 실비아가 없었다면 그렉과 케이트는 에어로빅하고 있는 아내에게 총질하는 남편, 날이면 날마다 식당에 마주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부부가 됐을 거라고.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는 이상 그렉은 나와 함께 있어도 행복하지 못했었다’고. 또한 ‘무엇을 함께 나누는 것이 공유고, 공유가 곧 사랑’이라고. 거 참 똑똑하다. 개를 바라보는 인간이나 개가 바라보는 인간이나 서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뉴욕의 도시는 고단하나 원색의 건물들이 즐비한 무대로 인해 활기를 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라이브연주와 노래는 건조한 일상의 비처럼 적당한 수분을 공급해준다. 피로한 도시와 부조화 속 조화를 이루며 도시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비’라는 ‘물’의 기능을 톡톡히 해냈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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