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원작에 연극적 볼거리와 재미를 더한 연극 ‘비계덩어리’

 모파상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비계덩어리’가 이달 4일부터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 연극은 탄탄한 소설 원작을 뼈대로 한국적 상황과 연극적 볼거리가 맞물려 새롭게 번안된 작품이다.

 소설 ‘여자의 일생’ 등의 세계적인 작품을 남긴 모파상은 일생동안 매독과 편두통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그의 불행한 내면을 반영한다. 특히 염세적인 인물 설정에 있어서 더 그렇다. 그는 그러한 인물들을 객관적으로 묘사함으로 인물의 이중성과 추악함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연극 ‘비계덩어리’ 또한 이를 바탕으로 인간내면의 뿌리 깊은 이중성과 탐욕, 위선을 꼬집는다. 다소 어둡고 심각해 질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연극은 구태환 번안으로 부드럽고 매끄럽게 다져졌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그 중간 위치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도록 연극적 재미를 더했다.  

배경은 6.25 남북전쟁이 한참인 한반도다. 서울의 유력자, 창녀 수향을 포함한 7명이 부산으로의 피난을 위해 마차에 승차했다. 대전에 이른 일행은 국군대위의 검문을 받고 잠깐 머물게 됐다. 그들은 모두 통행증을 소지하고 있지만 국군대위는 보내줄 생각을 않는다. 7명의 승객은 발을 동동 구른다. 군군대위의 요구는 창녀 수향, ‘비계덩어리’와의 잠자리였다.  

연극은 극한 상황이 아니라면 만나려야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한데 뭉쳐 놨다. 잡지사를 운영하던 배부장 부부와 민주주의자 오병구, 막걸리 장사로 돈을 번 이춘삼 부부와 수녀, 젊은 창녀 수향이 그렇다. 그들은 권위와 신분을 일단 접고, 머리를 하나로 모아 창녀 수향을 설득해 탈출할 궁리를 한다.  

그들이 굶주릴 때 그들과 떡을 나누며 친절을 베풀던 창녀 수향이다. 그들의 관심은 일단 자신의 생존 자체에만 있다. 자신들에게 피해가 번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들은 탈출이란 목적달성을 위해 희생의 참의미와 삶의 참된 원리까지 거론하며 창녀의 희생을 은근 강요한다.  

관객들은 그들의 노골적인 모습을 보며 현 사회의 뿌리 깊은 비양심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그나마 수녀가 그 중립의 자세를 지키는 듯 보이지만 그야말로 수향이 장교에게 몸을 내어주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처럼 양심과 원칙이 극한점을 만나 무너지고, 그 자취마저 찾아보기 힘든 시점에서 수향의 불행은 이미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듯 씁쓸함을 더한다.  

무대는 7개의 방이 둘러져 당시 한옥 마당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소박하고 차분한 무대와 집 주인은 그들의 난잡하고 추한 내면,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부조리와 대조적이다.  

한편 극중 이춘삼은 신분을 감추고 지키려는 인물들 사이에서 감초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감칠맛 나는 사투리, 실감나는 연기는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러나 이춘삼을 되짚어보면 그는 먼저 기본적인 양심과 원칙을 저버리는 비열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높은 사람에게 비비고, 낮은 사람들을 유인해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입장을 몇 번이고 바꾼다. 

결국 수향은 다수를 위한 희생을 자처한다. 목표를 달성한 두 부부커플은 어깨춤을 추며 모두는 목적지로 떠날 채비를 한다. 그들에게 수향은 다시 ‘부끄럽고 천한 여자’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차에 몸을 실은 그들의 모습이다. 무표정의 그들은 유쾌한 음향과 함께 관객들에게 씁쓸한 미소를 남긴다.



뉴스테이지 김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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