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잔혹한 출근, 연극 ‘가정식백반 맛있게 먹는 법’

영리한 영업사원 vs 순진한 만화가
혼자 사는 자취생들은 ‘집밥’이 그립다고 말한다. 집에 사는 친구들은 ‘집밥’이 거기서 거기라고도 한다. 누구의 말도 틀린 게 없다. 연극 ‘가정식백반 맛있게 먹는 법’은 가족이 없어 단 한 번도 ‘가정식’을 먹어본 적 없는 주인공 만화가의 눈물겨운 자기주장법이 담겨있다.  

- 지독히도 외로웠던 한 사람의 이야기 

집이든 차든 우리는 뭐든 크게 갖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배웠다. 사람들은 더 넓은 평수로 이사 가는 것이 일생의 목표가 됐고,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늘도 닥치고 자기계발에 열중이다. 딱 휴대폰 기종만큼의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아웅다웅 더 많이 가지려고 움켜쥐는 세상, 친구 하나 없이 소외되고 불쌍한 만화가 한 사람이 무대에 등장한다.  

꼬라지부터 심상치가 않다. 결벽증이 있는 듯 깨끗한 상을 닦고 또 닦는가 하면 탁자 위에 놓인 책의 모서리를 기준으로 규격을 맞춘다. 소파 밑에 떨어진 로봇인형과는 심지어 대화까지 나눈다. 벨을 눌러도 사람이 살지 않는 척, 짐짓 숨을 죽이고 제 할 일을 하는 만화가는 우리 시대 소외된 인간형을 나타낸다.  

그는 봉사활동을 나온 교회 형의 말 한마디에 훌륭한 만화가가 될 것을 결심한다. 성공한 만화가가 되어 형 앞에 짠! 하고 나타날 그 날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요지부동 좀처럼 만화책이 팔리지가 않는다.  

- 선의의 거짓말, 희망은 절망이 된다 

백과사전을 판매하기 위해 영업사원은 만화가의 비위를 맞춰주고 띄워주느라 정신이 없다. 온갖 감언이설로 만화가를 꼬신다. 딸린 처자식만 없었더라도 하고 싶은 만화를 그리며 살았을 영업사원은 이젠 이 일이 생활이 되어버렸다. 자칫 교활해 보이고 영악해보이기까지 한 영업사원이지만 그도 먹고 살기 위해, 죽지 못해 한다.  

순진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만화가는 결국 계약서에 싸인을 한다. 관객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둘의 관계를 지켜본다. 만화가를 설득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점심시간이 되자 만화가는 영업사원에게 함께 점심 먹을 것을 권한다. 

우리 주변에는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아원 출신인 만화가 역시 그랬다. 어느 날 고아원을 찾아와 ‘너 그림 정말 잘 그린다’는 말 한마디에 희망을 갖게 된 만화가는 그러나 그 순간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만화책이 팔리지 않은 것도, 훌륭한 만화가가 되지 못한 것도, 무심코 던지 선의의 거짓말도, 누군가를 탓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만화가는 단지 사랑이 필요했을 뿐이다.  

- 낡은 소극장, 혜화동1번지 

1시간 20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좁은 소극장을 빠져나오면 엉덩이가 쑤시고 허리가 아프다. 공연하는 소극장이 혜화동1번지만 아니었어도 당장 불만을 터트렸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돼있지 않은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혜화동1번지를 찾는다. 오랜 시간 좋은 연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해온 작품들이 소극장의 낡은 외모만큼이나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브랜드 가치를 의미한다. ‘왜 안 바꿔?’가 아니라 ‘여기는 원래 이래’하며 너그럽게 웃어주는 것, 역사에 동참하는 것, 그것이 혜화동1번지를 찾는 매력 중에 하나다. 언젠가 혜화동1번지가 ‘쌔끈’하게 리모델링을 한다고 나선다면, 대학로를 찾는 발걸음이 조금은 서운해질게 분명하다. 

연극 ‘가정식백반 맛있게 먹는 법’은 6월 20일까지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