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35] 욕망의 집요한 발현, 연극 ‘레이디 맥베스’

죽음과 씻김의 갈망을 상징하는 오브제
눅눅하고 음침하며 불길한 어느 여성의 내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무대, 그곳은 실재하는 공간이며 동시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다. 낮은 없다. 여인의 불면증으로 인해 밤도 찾아오지 않는다. 혼란의 공간이다. 그녀의 손에 묻은 검은 피가 지워지지 않는 죄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분열을 가속화한다. 이제는 불안하고 초조한 여인의 눈동자, 그도 한때는 날카로운 광기로 번득였다. 가부장적 권위를 전복시키는 강한 남성성으로 고정화된 자연법칙을 깨뜨리기도 했다. 모든 욕망 뒤에 남은 것은 추한 기억과 잡히지 않는 공포로 말라 뒤틀려가는 레이디 맥베스의 내면이다.
 

연극 ‘레이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맥베스’에서 주변화 된 레이디 맥베스를 극의 주체로 확대시킨다. 이 작품은 전의가 맥베스 부인의 불면증을 치료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병을 고치기 위해 기억을 끌어내며 현재와 과거,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사이 그녀의 범죄행위가 밝혀진다. 죄의 재현을 통해 기억하기 싫은 자신의 행위와 직면하게 되는 레이디 맥베스의 시선은 확실과 불확실 사이에서 정착하지 못한다. 일상적 삶의 궤도를 이탈한 그녀는 환각의 세계에서 방황한다. 한 덩어리나 정신은 파편화돼 있다. 이 혼돈은 앙상블로 인해 극대화된다. 

레이디 맥베스를 제외한 극의 인물들은 모두 역할을 바꿔가며 등장한다. 마녀와 시종, 왕과 전의 등 어조와 행동을 달리하며 혼란을 준다. 이는 레이디 맥베스의 분열, 일탈과 맞물리며 극을 광란으로 이끈다. 이들은 타인인 동시에 레이디 맥베스의 내적 자아다. ‘내가 본 것은 존재라는가’라는 질문은 그들이 결국 레이디 맥베스의 보이지 않는 내면임을 확인시킨다. 여러 역할을 하는 배우들을 존재하지 않는 환영으로 판단, 그녀의 죄의식이 빚어낸 악몽임을 증명한다. 형상화된 욕망은 시각뿐 아니라 후각, 청각, 촉각을 자극하며 이른바 감각의 전율을 선사한다.  

물체극 창시자 이영란은 밀가루와 찰흙으로 연극성과 미술성의 조화를 절묘하게 이뤄낸다. 생생하게 살아 퍼덕이는 이 오브제는 강한 운동력으로 레이디 맥베스의 내면을 드러내며 나아가 그녀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인체의 뼈대와 심장, 피의 은유로서 단순하나 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끝까지 함께하는 원일의 타악 연주와 구음 역시 관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이는 배우들의 기형적 언어와 더불어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관객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몽환적 제의에 참여하게끔 유도된다. 레이디 맥베스의 욕망과 파멸을, 그 내면을 목격 동시에 체험한다. 

텅 빈 무대를 채우는 것은 연극과 오브제의 중심에 서 있는, 빙의된 듯한 배우들의 연기다. 수수한 얼굴로 세상에서 가장 음흉하며 잔인한 여자가 되길 마지않은 서주희는 낮고도 지적인 목소리로 살인의 섬뜩함을 전한다. 쾌감과 고통, 집요한 시선과 행동으로 무대 전체를 압도하며 그곳이 자신의 내면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는 왕 맥베스를 아이처럼 대하며 어르고 달래 자신의 욕망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맥베스의 어머니이자 우주이며 실제 조종자로 왕 맥베스 위에 군림한다. 궁중전의 역을 맡은 정동환은 비일상적인 언어와 어조로 극의 환상성에 박차를 가한다.  

그는 한바탕 놀이가 끝날 즈음, 자신이 레이디 맥베스의 양심임을 고백한다. 이 회오리 같은 놀이가 끝나고 나서야 배우 서주희는 무대에서 퇴장한다. 인생은 한바탕 꿈이고 꿈은 또 다른 인생. 한 여인의 마지막 삶을 애도하는 구슬픈 목소리가 관객을 꿈에서 깨어나도록 만든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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