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별점리뷰] 인인인 시리즈 마지막 작품, 연극 ‘인어도시’

고선웅의 연극 ‘인어도시’는 한국인에 대한 단상을 주제로 올린 작품이지만 결국은 모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해 말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는 이 과정을 어찌 단적인 한국인들의 고민으로만 내팽겨 칠 수 있을까? 하지만 고선웅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병들고 죽는 인간의 삶이 사하라사막에서 자라 병들고 죽는 누구의 삶과는 다를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을 모티브로 했다. 그것이 ‘인어도시’라는 가상 세계로 은유가 됐고, 배우들은 두려움, 광기, 체념 등 복잡한 심리 상태로 죽음 직전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들은 결국 각자가 만들어낸 인어의 도움을 받아 이승 너머 깊고 나른한 죽음의 세계로 넘어간다. (이것은 본인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저수지로 넘어가는 그들의 태도가 이상하다. 세상 나만 희생했고, 죽어라 억울했고, 천박한 니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호스피스 환자 다섯 명은 죽음 앞에 돌연 자유로움을 느낀다. 생각보다 상쾌하고 시원하다. 환자들은 가슴에 꽉 막힌 무언가가 쑥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 모두는 죽어야 한다 ★★★★☆ 

자신의 밑바닥을 보는 일은 어떻게 보면 끔찍하다. 한 평생 바르고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이런 사람 절대 없겠지만)이라도 자기 내면의 깊숙한 곳에는 남에게 보여주면 창피한 시커먼 욕망과 죄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연극 ‘인어도시’는 이런 자신의 진짜 실체를 마주보게 한다. 아니라고 애써 외면했던 아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도, 외도를 일삼는 남편에 대한 증오심도, 자신이 선택이 아닌 어쩌다가 물려받은 별 볼 일 없는 혈통과 가문도 결국에는 모두 ‘내’ 것이었다. 연극 ‘인어도시’는 웃다가도 침묵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슬프다. 

작가는 인어라는 환상적이고 기묘한 존재를 통해 실은 형편없고, 천박하고, 이기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을 철저하게 까발린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자신의 과거와 상처가 드러나고, 환자들은 자신의 밑바닥을 들킨 것 같아 괴로워한다. 인정하기 싫다. 하지만 극의 후반부에서 배우들은 결국 한 사람씩 자신의 죽음을 선서한다. 인정하고 보니 별것도 아니었다 싶다. 오히려 내가 누군지, 어떤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추한 사람인지 수긍하고 보니 새로운 시작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난 셈이다. 

무대 메커니즘 ★★★☆☆ 

배우들은 인어의 도움을 받아 인어도시로 간다. 그곳은 자아가 완전히 죽은 공간이다. 침대 다섯 개가 놓여 있던 무대는 일순간 뗏목으로 변한다. 호스피스 한 쪽 벽면이 열리고 물을 채운 무대는 저수지가 된다. 삶과 죽음이 하나의 여정으로 묘사가 된다. 또한 연극 ‘인어도시’는 주제의식이 영상과 적절하게 부합된 경우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한 번씩 유리 창 너머로 희뿌연 물체가 지나간다. 이는 기묘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관객들이 극에 더 잘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연극 ‘인어도시’는 인인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으로 각각 중국작품 ‘코뿔소의 사랑’, 일본작품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에 이어 한국인을 대표하는 연극으로 선정됐다. 고선웅이 쓰고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다섯 사람의 삶과 죽음을 통해 관객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진다. 하지만 그것이 곧 구원이란 뜻은 아니다. 이 작품은 마치 구원 받을 수 있을 것처럼, 진실에 가까운 무언가를 보여줬을 뿐이다. 오는 7월 1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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