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48] 나이스 드라이빙,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때로는 거대한 시간에의 순응이 치기어린 반항보다 감동을 준다. 우리의 치열함과 상관없이 어느 곳에도 시선을 두지 않고 흐르는 시간의 매정함은 야속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하다. 그 속에 절대적으로 얽매여 있기에 시간의 이동을 ‘구경’할 요량이 없는 우리에게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두 시간 가량 한 발 물러나 ‘목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켜보니 시간의 흐름은 무심한 듯 꽤 친절하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시간이 이동하는 연극이나, 무대와 인물은 극히 제한돼 있다. 여간해서는 미동도 하지 않는 무대와 단 세 명의 인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실로 다양한 이미지들을 생산해낸다. 모든 이미지들은 박제된 무표정의 흑백사진이 아니다. 평범하나 인물들 간의 심리, 행동, 무엇보다 표정으로 단순하면서도 깊은 의미들을 전달한다. 데이지와 호크의 드라이브가 시공간을 초월한 산들바람을 일으키고 관객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어깨의 힘을 뺀 채 ‘작은’ 여행을 만끽하도록 돕는다. 이 초월적 공기는 추상적이고 거대한 관념에 의한 것이 아닌, 너무나도 사소하고 구체적인 에피소드들로 이뤄져있기에 인물에 대한 연극의 객관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몰입이 가능하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면서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므로 관객은 한결 편해진다. 그들의 여행이 거의 끝났음을 알리는 마지막 장면은 두 관계가 이뤄낸 여행의 결정체로 한없이 따스하다. 압도할만한 하나의 사건이 없는 스토리는 ‘사람’으로 인해 풍만해진다.

 

인물들의 성격은 매우 명확하며 극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극명하게 대립된다. 창백하고 마른 미망인 데이지와 야망 있고 객관적이나 데이지 앞에서는 한 뼘 수그러드는 아들 불리, 그들 사이에 미끄러지듯 개입된 흑인 운전수 호크까지 모두 저마다의 말투와 표정으로 위치를 지킨다. 성격과 환경, 여기에 얼굴색까지 다른 데이지와 호크는 자기 삶의 주체이자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다. 극 저변에 깔려있는 종교, 인종, 성, 계급의 문제는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회당에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은 무시당하며 타인을 향한 조롱의 시선이 분명 존재하지만 극 안으로 성급하게 침입하지 않는다. 데이지와 호크가 우정이라 부를만한 관계를 완성하기까지 장애물처럼 보이는 겹겹의 문제들은 분명 중요하게 언급되나 시간의 견고함을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아직 말이 대화가 되지 못하고 데이지의 명령과 호크의 변명으로만 이뤄지던 그때, 충돌하던 말들이 인사를 나누며 조우하는 순간은 소박하면서도 급작스러운 환희처럼 찾아온다. 데이지가 운전기사 호크에게 글을 공부할 수 있는 교본을 건네는 순간, 타인 훑기를 즐기는 시선들과 인종에 대한 세상의 편견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전락한다. ‘이것은 절대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니다’라며 교본을 건네는 데이지는 차라리 귀엽기까지 하다. 인간이 글을 깨우치며 세상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수월해졌듯 서로에 대한 수용면적이 조금씩 넓어져간다.

 

25년이라는 시간 흐름의 속도에 맞춰 여러 에피소드들은 짧고 암전은 잦다. 적당한 타이밍의 암전은 이미지들로 승화되고 머리에 각인된 사진처럼 끊임없이 환기된다. 그 사이를 매우는 기타와 건반 연주는 햇살을 받으며 드라이브 중인 음표처럼 자유롭다.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이 내몰리고 충돌하는 대신 이해라는 관용 안으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라이브 연주의 아름다움은 일상을 반짝이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배우 신구와 손숙이다. 무대에 서있기만 해도 감동이 되는 배우들의 힘은 경이롭다. 특히 흑인 운전기사 역을 맡은 신구의 말투와 표정, 제스처는 동명 영화의 모건 프리먼이 정의시켜 놓은 호크 캐릭터의 재창조라 할 만하다. 여기에 굵직한 목소리로 중심을 지키며 대립의 균형을 잡아준 배우 장기용 역시 관객이 배우의 이름에 의존하는 이유를 의심 없이 증명해줬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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