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삶과 연극?관객과 무대는 함께 숨 쉰다, 오태석 연출
한 마디, 한 마디가 오래 끊여 진하게 우러난 진국이다. 가슴에 뜨거운 국물을 전하는데 혹여나 데일까 조심조심, 후후 불어 건네는 정이 물씬 느껴진다. 연극의 대가 오태석 연출을 만났다. 그의 눈은 눈가 깊은 주름 사이로 여전히 청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수한 차림과 사람 좋은 너털웃음이 요새 한 뼘 가까이 다가온 가을볕을 닮았다. 오태석 연출은 배우 유해진, 성지루, 박희순 등 유수한 배우들을 배출한 스승이다. 그들의 영화진출에 대한 언급에 그는 “나는 그런 거 잘 몰라, 배우는 대중적인 인기와 무관하지. 광대라는 게 100년 전만 해도 삼각형의 아래 중의 아래였어. 광대인데 뭘”하고 웃어버린다. 오태석 연출이 이번 연극 ‘템페스트’를 무대에 올린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작으로 한국의 ‘삼국유사’를 만나 새롭게 재탄생된다. 오태석 연출은 “우리에 소리몸짓 색깔을 동원한 필 해맑은 옥양목으로 자아내도록 노력했다”고 작품의 연출의도를 전했다. 연극 ‘템페스트’는 9월 1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개막, 내년에는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참가를 앞두고 있다.
Q. 오태석 선생님께 ‘연극’은 어떤 의미?
차를 타고 가다 건널목에서 차단기가 내려오면 ‘머물러야 한다’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생긴다. 이 때 ‘여름은 죽었고, 가을이 오는구나. 벼 이삭이 고개를 숙였구나’ 등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내 안에 있는 것을 잠깐 알 수 있는 차단기 역할이 연극과 예술이다.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전혀 뜻밖의 사건을 만날 때가 있다. 이 때,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유턴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 인생의 길에서 잠깐의 멈춰 사유하고 둘러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연극이 아닐까. 또 이 연극은 필름처럼 간직할 수 없다. 그저 흘러가는 것을 볼 뿐이다.
Q. 작업 시, 가장 중점에 두는 것은?
나는 관객의 입장에 있다. 관객이 무대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짐작한다. 객관적이려고 애쓴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자타가 공인하는 연극이다. 기원전에는 소포클래스가 있었고, 500년 전에 그가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연극의 틀을 제대로 이용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 할아버지다. 그 얘기가 인간의 정체성이나 존재에 참작해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희곡을 만들었다. 500년 전 그가 생각한 것을 나는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말로 표현해야 한다. 이 작품이 어떻게 관객과 가까워질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Q.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해?
셰익스피어는 고상한 할아버지가 아니다. 장보러 온 사람들이 막걸리 걸치고 모처럼 휴식을 즐길 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분모라고 말한다. 희노애오(喜怒肯惡)를 포함하고 있다. 사회계급과는 무관한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 질투, 용서 등 근본적인 것들이다. 누구든지 내 얘기로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학자들이 좋아하다 보니까 접근하기 어려운 양반으로 만들어졌다. 우리 옷을 입고 우리 정서로 말하면 재밌게 보지 않겠나. 500년 전 이야기가 당신 안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우리의 전체 DNA 중 73% 정도는 미개발이라고 한다. 우리는 나머지만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가 분모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건들다 보면 내 안의 천개의 방이 열리면서 개발이 되지 않겠나.
Q. 작품을 한국식으로 만드는 이유와 영국이 한국적인 작품을 호평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되도록 ‘장독대’에 가깝게. 우리의 오장육부가 장독대로부터 왔다. DNA에도 장독대의 퍼센트가 많이 차지하고 있다. 모두가 비슷한 오감의 뿌리를 가지고 있기에 내 감각 또한 쉽게 흡수할 수 있다. 각 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대로 작품을 이해한다. 그리고 새로운 각도로 만들어낸다. 영국은 자신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해준 여러 다양한 시선을 반갑게 여긴다.
Q. 작품에서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는?
작품은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긴 프로스페로가 자신에게 저지른 일에 복수를 시도 한다. 하지만 결말에서 딸을 원수 아들과 부부로 맺어주고 원수를 용서하며 사돈지간이 된다는 내용이다. 이 사회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아닌가 생각했다. 남북관계도 그렇고, 남남도 그렇고. 노년과 청년 간에도 그렇고. 깊은 생각을 해야 할 시대다. 너무 미움을 키우는 나라가 됐다. 젊음은 관대하다. 술 먹고 얼굴을 꼬맬 정도로 싸웠다가도 다음날 되면 별일 아니었다는 듯 말하는 그게 젊음이다. 당신들의 관대함과 용서가.
글, 사진 뉴스테이지 김미성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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