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허무와 고독에 날개를 달아라! 연극 ‘오감도’

올해가 이상 탄생 100년이 되는 해다. 그는 죽었지만 영혼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예술가들은 그에게서 끊임없는 창작의 영감을 얻는다. 평생을 불우하고 고독하게 살았던 한 인간을 우리는 한 세기가 지나도록 놓아주지 못한다. 이미 무수한 영화와 책 그리고 연극이 짧은 생을 마감한 그를 향해 애정과 위로를 보냈다. 그가 살았던 삶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그에 대한 찬사는 더욱 격렬해진다. 연극 ‘오감도’ 역시 그런 의미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 이상을 통해 본 21세기 예술가

‘극단오늘’의 배우들과 위성신 연출이 함께 만든 연극 ‘오감도’는 무대부터가 이상(李箱)을 닮아있다. 아무 의미 없는 숫자들의 배열, 전깃줄, 의미를 알 수 없는 세 개의 등퇴장로 등 형이상학적인 메시지들로 가득하다. 공연을 자주 접한 관객들이라도 소극장에 들어섰을 때 첫 느낌은 불편함, 혹은 부담감일 수 있다.

 

이 작품은 현대를 배경으로 이상의 작품들을 절묘하게 교차시켰다. ‘나가요’가 된 금홍, 휴대폰을 구입하는 이상 등 과거의 예술가를 21세기 대한민국에 새롭게 환생시켰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는 네 명의 코러스는 이상의 분열적 자아를 나타낸다. 그들은 이상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힌다. ‘정말 그렇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은 참을 수 없는 허무와 분열에 시달린다. 연극 ‘오감도’는 이런 시인의 정서가 극 전체를 아우른다. 짙고 무겁다. 이상을 연기하는 주연배우는 섬세하고 집중력 있는 심리묘사로 안정감을 준다.

 

평소 난해하고 ‘이상(異常)’한 시인으로 유명한 이상은 남들과 좀 달랐다. 이 때문에 그는 평생을 외로운 허무주의에 빠져 살았다. 시대가 바뀌고 원고지에서 워드프로그램으로 글쓰기의 ‘도구’가 바뀌는 사이, 예술가들이 느끼는 본질적인 고독과 외로움은 그다지 ‘개선’된 것 같지 않다. 연극 ‘오감도’는 현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이상을 통해 투영해낸다. 천부적인 재능을 부여받았지만 가혹한 운명은 늘 그들을 따라다닌다.

 

- 연출가 위성신의 실험극

연극 ‘오감도’는 지금까지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 ‘늙은 부부 이야기’, ‘락시터’, ‘염쟁이 유씨’ 등 대중적인 작품을 주로 선보였던 연출가 위성신의 첫 실험극이다. 로맨틱코미디가 범람하는 대학로에 이 작품은 보기 드물게 진지함을 추구한다. 소재 자체가 ‘웃음’기를 쫙 빼고 있지만 1시간 40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전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실존했던 위대한 예술가의 삶이 갖고 있는 ‘힘’은 대본의 구성과 짜임새를 만나 더 큰 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 역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진짜 그렇게 살았던 시인 이상의 삶에 대한 진정성이다. 한편 극 자체가 가진 무게감은 경쾌한 탱고 음악으로 인해 상생한다. 남미 탱고가 지닌 한과 밝음의 경계가 이 작품의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진다.



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