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속물근성과 위선으로 가득한 연극 ‘크리스토퍼 빈의 죽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여기 죽은 후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인정받게 된 작가가 있다. 바로 크리스토퍼 빈이다. 그는 술주정뱅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크리스토퍼 빈의 작품은 아주 고가에 거래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닭장 속에 처박아 두었던 그의 작품이 입이 쩍 벌어지는 금액에 거래된다. 몰랐으면 좋았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인간 내면에 있던 욕망과 속물근성이 무대 위로 퍼진다.
- 돈과 예술, 불가분 관계
종잇조각보다 못하게 취급했던 작품이 알고 보니 황금알을 낳은 거위였다. 연극 ‘크리스토퍼 빈의 죽음’은 여기서 시작된다. 사후에 인정받는 작가가 어디 한둘이겠느냐 만은 살아서 겪었던 고충을 알게 되면 안쓰럽기 마련이다. 커피조차 마음껏 마시지 못했던 작가의 작품이 이제는 커피공장을 차리고 남을 정도가 됐다. 예술도 시대의 흐름을 타기에 홀대받던 작품이 어느 순간 천정부지로 값이 솟구치기도 한다. 죽은 자야 말이 없다지만 남은 자는 작품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연출한다. 작품은 이미 작품으로서 대우받기보다는 예술가의 분신 혹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번 비싸진 몸값은 내려올 줄 모른다.
- 속물과 위선이라는 탈을 쓴 인간
속물근성의 대표적인 인물로 헤겟트 부인을 꼽을 수 있다. 작품에 대해선 관심도 없다. 단지 그것이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거라는 걸 알고는 어쩔 줄 모른다. 속물과는 반대되는 인물 크리스토퍼 빈의 아내 애비다. 그 중간쯤 있는 게 헤겟트다. 헤겟트가 속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속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 몰랐으면 좋았을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인정과 체면을 차릴 줄 모른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오로지 돈이다. 예술작품을 소유하기보다 돈을 소유하고 싶은 게 헤겟트의 속내다. 일반적인 인간의 습성을 잘 담아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 조용히 극을 이끄는 무대
무대는 단출하다. 소파, 카펫, 책상, 탁자 정도가 전부다. 더 화려할 필요도 없다. 배우들의 연기와 탄탄한 스토리만으로 무대를 꽉 메운다. 눈에 띄는 소품이 있다면, 애비의 자화상이다. 애비의 자화상은 모딜리아니 작품과 흡사하다. 거의 같다고 해도 좋을 만한 화풍과 모딜리아니와 그의 연인 잔느를 묘하게 닮은 크리스토퍼 빈과 애비다. 극심한 가난에서도 사랑했던 잔느와 모딜리아니처럼 이둘 역시 가난을 뛰어넘는 사랑을 나눈다. 돈에 이끌려 가는 인물들 사이에서 오로지 사랑만으로 먹고 사는 이가 애비와 수잔, 수잔의 연인 이자 크리스토퍼 빈의 제자 와렌이다. 돈 때문에 거짓에 거짓을 더하며 인간의 추악함으로 극을 가득 채울 때 이 세 명은 극을 환기시키며 숨통을 틔운다.
- 그래도 돈보다 사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작품 소유권에 대한 싸움도 서서히 끝이 난다. 돈에 눈이 멀어 크리스토퍼 빈 작품의 소유권을 주장하던 헤겟트도 진실한 마음의 애비 앞에선 무너진다. 억지스럽던 거짓말들이 한 번에 물거품이 되어 공중을 떠다닌다. 극에 푹 빠져 있던 관객은 한숨을 몰아쉬며 비로소 긴장을 푼다. 미술작품이라는 소재로 인간군상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던 연극은 막바지에 이르러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며 불편했던 관객의 마음을 보듬는다.
뉴스테이지 박수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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