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적도 아래의 맥베스’, 전쟁속에 스러진 영혼의 빛들
한?일 양국 연극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인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의 신작 ‘적도 아래의 맥베스’가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된다. 작가 정의신은 극단 신주쿠료잔파쿠(新宿梁山泊)의 창립멤버로 ‘천년의 고독’, ‘인어전설’ 등의 수작들을 발표, 일본 연극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연극뿐 아니라 영화(‘달은 어느 쪽에서 뜨는가’, ‘피와 뼈’ 등), TV 드라마(‘제비꽃이 필 무렵’ NHK, ‘신기한 이야기’ 후지TV 등)를 넘나들며 테아트르상, 기시다쿠니오 희곡상,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각본상, 블루리본 작품상,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각본상 등을 수상했다.
재일교포 2세로 이방인,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았던 그가 새롭게 내놓은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동원되어 결국 전범으로 사형대 앞에 설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인 군속(軍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연극에는 사형수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다른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 싶어 했던 김춘길이 등장한다.
연극은 사회적 상황이 한국인 군속들을 전범으로 내몰리게 만들었음을 보여주면서 이들을 주변의 유혹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는 ‘맥베스’에 비교한다. 그러나 극중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파국을 그들이 자초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남김으로써 최종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 관계자는 “일본에 사는 한국계 작가로서 정의신은 무대를 통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버림받은 그들의 잊힌 과거를 되살린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제국주의적 시스템, 전쟁이 야기한 비극을 말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번 작품의 연출은 셰익스피어 비극부터 마당놀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왔던 손진책 연출이 맡았다. 손진책은 ‘서울 말뚝이’, ‘오장군의 발톱’, ‘남사당의 하늘’, ‘템페스트’, ‘벽 속의 요정’. ‘디 아더 사이드’ 등을 통해 한국은 물론 해외 유수 극장과 페스티벌에 초청돼 관객들의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연극 ‘적도 아래의 맥베스’에는 극단 미추의 작품들을 통해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던 12명의 배우들이 함께한다. 이기봉, 최용진, 조정근, 이상철, 서상원, 정나진, 오일영, 김정원, 황태인, 이병우, 권정훈, 홍성락 등이 출연한다. 명동예술극장과 극단 미추가 세계 초연으로 올리는 정의신의 신작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10월 2일부터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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