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 이름처럼 빛날지니, 배우 조휘

거 참 신기하다. 언제라고 느낄 새도 없이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의 심리를 파고들어 묵직하게 자리 잡는 배우가 있다.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은 화려한 스타배우 대신 그의 이야기를 하며 공연장을 떠난다. 시간의 흐름에 당황하지 않고 어디에서든 제 몫을 200프로 이상 해내는 배우. 웃을 때 개구진 그의 눈매에서는 내면의 치열함과 깊은 사색들이 묻어난다. 군복무 후 “무대에서만큼은 빛나고 싶어서, 나로 인해 작품이 빛나길 원해서” 조휘로 이름을 바꾼 서른 살의 그가 왕이 돼 돌아왔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영웅’, ‘돈주앙’, ‘클레오파트라’, ‘김종욱찾기’, 드라마 ‘토지’ 등에 출연했던 그는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성급하지 않았다. 자신이 서 있는 길에서 굵직한 발자국을 남기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배우가 바로 조휘다. 우리는 보통 이런 사람을 두고 ‘훈남’이라고 부른다. 또 하나, 관객들 사이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미친 존재감’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가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는 “감정을 선물”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다. “감정이라는 것은 돈을 주고 사기 어렵잖아요. 공연은 감정을 선물하는 매개나 다름없어요. 극장에서는 울거나 웃거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죠. 기쁨이 될 수도 있고 슬픔이 될 수도 있는 감정을 선물한다, 거기에서 전 보람을 느껴요.”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의 동요가 그에게는 기쁨이라니, 우리들에겐 배우 조휘가 바로 선물이다.

 

관객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 배우 조휘
뮤지컬 ‘왕세자실종사건’을 통해 왕으로 돌아오다

 

뮤지컬 ‘왕세자실종사건’이 10월 19일부터 11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배우 조휘는 왕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연극계의 환상 콤비이자 블루칩 서재형 연출과 한아름 작가가 선보이며 공연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연극 ‘왕세자실종사건’의 뮤지컬 버전이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연습과정에서 힘들었다는 조휘는 작품과 연출에 대한 신뢰 하에 자신을 끊임없이 다듬고 있었다. “연출가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무대 위에서 배우가 힘들어야 관객들이 즐겁다는 것.” 경제적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도 “겨우 먹고 살고 있어요”라며 소탈하게 웃는 그에게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 따위 평생 없을 것 같았다.

 

Q. 나이 서른에 왕이 됐어요. 어떤 왕인가요
제가 나이 들어 보이나 봐요. 나이에 비해 원숙한 역을 많이 했어요. 주변에서 어린 사람이 잘 할 수 있을까,의 염려도 많았죠. 딱 한 살 차이인데도 서른이 되니까 ‘그래, 이제 뭐 그런 역 맡을 나이도 됐지’라는 반응도 있고. 나이를 드는 게 오히려 더 편한 것 같아요. 또 저는 얼굴이 예전부터 계속 이랬어요. 그러니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어려지지 않을까. 하하.


제가 맡은 역은 선이 굵은 왕이에요. 소리도 많이 지르고 화도 많이 내요. 한편 중전에게 사랑을 주지 않고 역설적으로는 중전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해요. 자숙이라는 나인을 통해 진짜 사랑을 알죠. 높은 위치에서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결국에는 그저 외로운 사람이지 않나 생각해요. 그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Q. 시대극이고 왕 역할이다 보니 행동, 말투 등 제약이 많았을 것 같은데. 연습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걷는 것. 서재형 연출님이 추구하시는 걸음걸이가 있는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걷는 걸음이 아니에요. 템포나 속도 조절을 통해 극의 흐름에도 반영되는, 특유의 걸음걸이죠. 볼 때는 멋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너무 어렵더라고요. 긴박할 때는 뛰기도 해야 하는데 왕이니까 지킬 건 지키면서 뛰고, 또 웃기면 안 되고.

 

Q. 이 작품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요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작품 ‘청춘 18:1’을 바로 이 공연장에서 봤어요. 너무 상업적이거나 반면 추상적이어서 어렵게만 느껴지던 작품들과 달리 대중적이면서도 작품성을 잃지 않아 매우 즐겁게 관람했어요. 이후로 연극 ‘호야’, ‘토너먼트’ 등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작품을 많이 봤죠. 언젠가는 이들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마침 지난 뮤지컬 ‘영웅’에서 한아름 작가님을 만나게 돼 하고 싶다고 피력했죠. 사실 연극 ‘호야’도 하고 싶었는데 제가 할 게 없다고 하셔서(웃음). ‘토너먼트’도 하고 싶었는데 잘 안됐어요. 어떻게 보면 삼수 끝에 오디션을 보고 참여하게 된 거죠.

 

Q. 하고 싶은 작품은 보통 어떤 공연들인지 그 기준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저는 코믹도 좋고 진지한 것도 좋아요. 단, 작품의 메시지가 뭐냐 하는 거죠. 그 공연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느냐가 저에게는 중요한 기준점이 됩니다. 너무 가벼운 웃음이나 지나친 쇼 위주의 뮤지컬은 지양하고 싶어요. 작품이 좋다고 판단되면 하고 싶고, 역할의 비중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창작 작품들을 많이 하고 싶어요. 제작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제작사들의 입장에서도 창작을 만들어 내는 게 힘들 거예요. 또한 배우들 입장에서는 외국 라이선스 공연이 검증 된 작품들이기 때문에 배우가 입는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죠. 그럼에도 한국만의 느낌이 있는 창작 작품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기회가 된다면 많은 창작 무대에 서고 싶어요. 누군가 정의해놓은 캐릭터가 아닌, 조휘만의 색을 입힐 수 있는 공연을.

 

Q. 그렇다면 뮤지컬 ‘왕세자실종사건’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왕세자가 실종된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그와 얽힌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핵심은 잃어가고 주변의 이야기로 흘러가요. 결국은 우리가 정말로 찾아야 할 것들, 중요한 것들을 많이 놓치고 있다는 걸 돌아보게 하죠. 또 시대 안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Q. 연습과정에서의 스트레스를 푸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이번 작품에서 하내관 역할을 맡은 안세호라는 친구가 있어요. 동갑인데 그와 코드가 잘 맞아서 힘들 때 서로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함께 웃어요. 서로 웃기고 또 웃고. 쉴 때는 정말로 친한 사람들과 수다 떠는 거 좋아해요. 술 마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카페에 가 새벽 2~3시까지 이야기 나누죠. 요즘 24시간 하는 곳 많잖아요.

 

Q. 보통 남자들은 카페에 가기 보다는 술집으로 향하던데,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술이 몸에 안 맞는다든지, 혹은 건강 때문이라든지
술자리 좋아하는데 노래를 해야 하니까요. 목 관리 때문에 술과 담배는 하지 않아요. 최근 몇 년 동안 작품을 계속하다 보니 지속적으로 꾸준히 관리하려고 노력하죠.

 

Q. 관객의 기대가 큰 만큼 부담도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인사 남겨주세요
배우로서 연극으로 이미 무대에 올렸던 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지만 우리의 음악적 정서가 녹아있기 때문에 더 좋아졌을 거라 생각해요. 국악만 있는 게 아니라 재즈 등 여러 음악장르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고요. 이 안에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고 감동도 있으니 관객 분들이 많이 오셔서 소중한 감정들 다 챙겨가셨으면 좋겠어요. 소극장의 열기와 배우들의 에너지까지 모두 다요. 좋은 공연을 보고 나면 기분이 좋잖아요. 그런 선물이 됐으면 합니다.

 

 

글, 사진_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