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리뷰] 관객과의 강렬한 조우 ‘로미오와 줄리엣’

시계추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도시의 거대한 인구와 맞닥뜨리다 보면 마음 한 켠 엄마의 손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이, 계층과 관련 없이 누구나 갖는 원초적인 그리움이다. 음악극 ‘로미오와줄리엣’은 어느새 인생의 주름이 깊게 파인 엄마의 굳은 살 베긴 손과도 같다.  인생의 연륜과 관용이 담긴 엄마의 손은 풍요롭고 광대해서 세상사 여러 모양의 마음들이 언제든 멈추고 쉬어가도 충분하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자식 앞에 엄마가 가장 먼저 내놓는 것은 흐트러짐 없는 밥상이다. 자식이 음식을 먹는 모습만 봐도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다. 밥상 위에 오른 음식은 오래된 법이 없다. 아무리 조촐한 밥상이래도 정성이 묻어나는 새 밥, 새 반찬이다. 음악극 ‘로미오와줄리엣’이 그렇다. 배우들은 밥이 가장 감질 맛나도록 신속하고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린다. 밥상에 수북이 담긴 정성은 연출가의 마음이다.  

 

- 연극의 본질과 재회하다

장터 한복판에서 벌이는 연극 판

 

우리 연극의 처음은 모래 바닥에서 시작됐다. 북적거리는 장터 한복판에서 판을 벌이고 민중들의 이목을 즐겁게 해주던 것이 연극이었다. 청자나 화자, 누구나 할 것 없이 함께 즐기며 주거니 받거니 했다. 관객들은 ‘관람자’이자 ‘창작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극 속에 자연스럽게 개입됐다. 그 안에는 조상들의 특유의 유머와 해학, 흥과 신명이 배어 있었다. 지금의 연극은 고차원적인 변화를 거듭하며 바닥에서 시작된 과거 연극의 뿌리를 상실해가고 있다. 세련된 관객들의 눈썰미에 맞춘 몇몇 맞춤형 연극들은 욕망을 뒤흔드는 비주얼과 화려함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헤집는데 열심이다. 관객들과 함께 장단을 맞춰가려는 연극들도 더러는 보이지만 소통의 부재로 골절상을 앓고 있는 사회마냥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이다. 우리 조상들의 흥은 어느새 ‘관객참여’라는 파삭하게 말라버린 연출적기법의 하나로 변모된 듯 보인다. 음악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신명나는 장터 한복판, 그 장소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보는 것’에만 익숙해진 관객들이 이 공연에 임하는 자세는 어쩐지 어색함이 묻어났지만 곧 동화되어 하나의 풍경화를 이룬다.

 

- 관객이 중심이다
극적 상황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다

 

공연 중 약초를 제조하는 노파가 관객석으로 사발에 담긴 물을 끼얹는다. 관객들이 우왕좌왕하는 중에 노파는 ‘닦어’라는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수건을 객석으로 던진다. 그리고 여유 있게 로미오와의 대화를 이어나간다. 관객들의 훈훈한 웃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관객은 매끄럽게 극에 개입된다. 한국적 정서를 고스란히 녹아낸 대사와 연기에 감동하고 극적 상황과 현실의 경계를 파괴시킨 연출력에 또 한 번 감화된다. 극중 로미오가 정중하게 관객에게 다가가 묻는다. ‘죄송합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관객이 대답 사인을 보내면 로미오는 무대로 힘차게 올라가 실행한다. 이는 다만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지만 사실 이 극은 끊임없이 관객들의 동의를 구한다. 배우들이 관객을 보고 대사를 읊는 이유도 이와 상통해 보인다. 배우들은 관객을 등지는 법이 없다. 관객이 있기에 연극도 있다는 철칙과 정중함은 중간에 변질이 없다. 끝까지 불변해 결국 관객들의 마음을 동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묻지 않는 본연의 나태함을 배제한 대가의 작품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관객은 이 연극에서 핵심이다. 그러므로 관객 역시 이 작품을 배반하지 못한다.

 

- 자연적 질서 아래 자유롭게 어울리다
색체감과 이미지, 음악의 환상적 조합
 
음악극 ‘로미오와줄리엣’은 텍스트보다 이미지 구현에 가깝다. 한국전통의상을 차려입고 추는 무용과 무예, 퍼포먼스 등 또렷한 여러 색체와 이미지들이 바람과 같은 자연적 질서 아래 흩날린다. 따로 또 같이 자유롭게 숨 쉰다. 한데 어울리지만 엉키는 법이 없다. 이는 서로를 인정하며 속도를 조절하고 자신을 낮추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화가 거의 모든 신을 명장면으로 만들었다. 연출은 적절하고 조화로운 바람으로 각각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구현해줬다. 한국적 비장미가 담긴 전통 음악은 이 모든 조화를 잘 담아내는 고이 빗은 그릇과 같았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의 절정에 달한 첫날 밤, 구슬프고 가녀린 초롱불 같은 둘의 사랑과 애정의 실랑이를 실감나게 잘 표현해냈다. 이날 관객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정성스럽고 거나하게 차려진 최상의 식사를 했다.



뉴스테이지 김미성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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