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가장 격렬했던 조선의 비극을 엿보다, 뮤지컬 ‘남한산성’

무대는 병자호란을 겪었던 조선의 임금인 인조와 고뇌하는 선비 오달제의 갈등과 고민, 조선 땅을 아버지 마음으로 보고 괴로워했을 주인공들의 진심으로 채워진다. 뿐만 아니다. 관노 출신의 청나라 통역관인 정명수, 기생 난생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축을 이루며 극을 긴장감 있고 묵직하게 끌고 간다. 광대부부인 훈남, 순남이의 등장은 뮤지컬 ‘남한산성’이 갖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털어주며 관객들이 떠안게 될 부담을 감소시킨다.

 

뮤지컬 ‘남한산성’은 지난 해 초연 이후 두 번째다. 남한산성이 위치한 성남시가 지역브랜드화를 목표로 김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했다. 2009년 공연 당시 많이 지적받았던 어설픈 이야기구성 역시 재공연을 앞두고 수정, 보완을 통해 한층 더 매끄러워졌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양쪽 스크린을 통해 전체적인 줄거리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역사적 사실 등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아이돌가수의 출연이나 스타들을 이용한 마케팅 없이 순수하게 뮤지컬 배우들로만 구성된 캐스팅은 흔히 배우예술이라고 불리는 현장공연의 장점을 발휘하기에 충분했다. 무대는 김수용, 성기윤, 최재림 등 풍부한 성량과 감성을 가진 배우들의 에너지로 공간과 공간 사이를 충만하게 메워준다. 조화로운 앙상블의 군무나 적절하게 등퇴장하는 무대세트?소품은 장면과 장면, 하나의 큰 이야기흐름을 가지고 흘러가야하는 이 작품의 서사구조를 유기적이고 부드럽게 이어준다.

 

이 작품이 결정적으로 감동을 획득할 수 있는 이유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인조는 역사적으로 볼 때 비극과 치욕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인물이다. 조선의 임금이 청나라 젊은 황제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는 사실은 인조 개인뿐만 아니라 그를 섬겼던 수많은 이 땅의 조선인들의 비극이기도 했다. 가슴을 치며 하나 둘씩 백성들이 눈물을 터트릴 때 알 수 없는 공기가 관객들의 목구멍을 타고 터져 나온다.

 

뮤지컬 ‘남한산성’은 한 나라의 임금이자 개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맞닥뜨린 인조의 내면을 관객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무조건적으로 실패한 왕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아닌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를 놓고 괴로워했을 인조의 인간성에 집중한다. 그는 결국 ‘살아서 죽는 길’을 선택하지만, 아픔이 있는 제 나라 역사를 받아들이는 일은 어쨌든 지혜 있는 누군가를 성숙하게 한다. 적어도 내가 누군지에 대한 보다 깊고 근원적인 이해를 도와주니까.

 

악역인 듯 보이는 정명수 역의 최재림은 얼마 전 TV 출연으로 유명세를 탔다. 뮤지컬배우 출신이었던 그 이름에 걸맞게 안정적인 노래실력을 보여줬다. 부피감 있는 무대 세트가 등장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사실 뮤지컬 ‘남한산성’이 꽉 찬 느낌을 주는 이유는 무엇보다 김수용, 성기윤 등 걸출한 뮤지컬배우들의 노래,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무대 전체를 힘 있게 아우르기 때문이다.



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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