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60] 살구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은유, 뮤지컬 ‘왕세자실종사건’
시다. 가난한 사랑 한 입 조심스레 베어 물었더니 그럴 줄 알았음에도 시다. 모든 걸 다 가졌어도 이해받지 못해 들이키는 외로운 술잔이 시다. 외면당하는 진실이 시다. 사랑, 이해, 오해, 진실, 아픔, 외로움 등이 뭉쳐 연민의 시린 살구로 열매 맺었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은 소극장 무대를 높은 밀도로 채우며 관객에게 살구의 신맛을 기어코 맛보게 했다. 그 아찔함에 눈물 한 방울 흘릴 때 쯤, 관객은 문뜩 시림에 취해 잊었던 진실을 생각해낸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묻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돌아보게 한다.
왕세자가 사라졌다. 대략난감이다. 왕과 왕비 사이 사랑의 부재처럼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듯 흔적 없이 사라진 왕세자는 구동과 자숙의 작은 살구보다도 불확실하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은 속으로 곪고 있으나 개인의 아픔 따위 상관없는 것처럼 평온해 보이는 궁궐에 왕세자가 사라지며 시작된다. 그와 동시에 상처들이 터져 진한 고름을 흘린다. 왕세자가 실종되던 시간에 처소와 근무지를 이탈했던 자숙과 구동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가장 구석에서 생략되어지기 마땅한 자숙과 구동은 왕으로 대변되는 시대의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며 극의 중심으로 떠밀려 나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가장 아플 수밖에 없는 두 인물이 살구를 주고받는 동안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왕과 왕비는 하늘아래 가장 외롭고 고단한 무명의 한낱 인간으로 축소된다. 부각되는 것은 사랑과 안타까움, 오해와 외로움 등 인간이기에 느껴야 할 감정들이다.
사라졌다는 사건만 있을 뿐 단서가 없는 왕세자의 실종사건은 모자란 증거만큼이나 추리 역시 쉽지 않을 터, 더욱이 이 작품은 추리가 불가능하도록 극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진실을 추리해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수많은 진실이 외면당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그 노력은 현재 안에서 과거를 수시로 불러내 반복 재생시키는 과정으로 표현된다. 교차되는 시공간의 이동경로에는 현재와 과거를 넘어 상상이 개입되므로 재생될 때마다 이야기는 덧붙여지고 오해된다. 결국 하나의 사건은 진실과 무관하게 개인의 입장에서 정리된다. 핵심에 대한 조명이 구동과 자숙의 관계로 옮겨가는 동안 어둠 속에서 잊혀져가는 왕세자는 보이지 않음에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가장 확실한 진실은 ‘진실은 찾기 힘들다’는 것뿐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전환점은 매우 매력적이다. 배우들의 역모션은 시종일관 드러나는 작품 특유의 동작, 템포와 어우러지며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은 배우들의 동선이 복잡함에도 치고 빠지는 모든 순간을 철저하게 계산함에 따라 그들만의 리듬과 이미지를 형성해낸다. 비어있는 무대를 채우는 것은 극단 ‘죽도록 달린다’만의 특허(?) 동작과 조명, 그리고 음악이다. 장치와 소품이 없음에도 바람은 불며 살구나무는 흔들린다. 빛과 소리의 조화는 새로운 상황, 공간, 이미지들을 창조한다. 극 초반, 비극을 알리는 보모상궁의 비명은 무대와 객석 더불어 작품 전체를 압도하며 보고 들리는 작품을 날카롭게 관통한다.
간단하게 요약해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은 매우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서재형, 한아름이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치에 대한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 배우들의 가창력이 약간 아쉬움에도 문제는 그것이 이 뮤지컬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은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갖는 일반적 상식에서 자유로우며 탄탄한 구성 아래 관객을 완벽한 그들 편으로 만들었다. 한없이 가라앉지 않고 슬픔과 적절하게 조화된 유머는 긴장의 끈이 느슨해지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탄력을 더한다. 촘촘한 밀도 사이로 진하게 배어나오는 살구의 신 맛이 혀끝을 마비시킨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은 살구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은유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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