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채우려 할수록 채워지지 않는 것들, 연극 ‘이날 이때 이즈음에’

인간은 늘 아쉽다. 하나를 가지면 하나가 아쉽고, 둘을 가지면 둘이 아쉽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아무리 겉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해보아도 인간은 공허하다. 욕망은 사람을 쉴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주검의 목구멍처럼 삼켜도 삼켜도 성에 차지 않아 욕망은 인간을 끌어내릴 뿐이다. 의자왕의 애첩, 일제시대 장돌뱅이, 전과자임을 숨기고 결혼한 남자. 시대를 넘나드는 이들을 통해 연극 ‘이날 이때 이즈음에’는 인간의 근원적 결핍과 욕망에 대해 논한다. 이 세 사람의 삶과 겉모습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만큼이나 판이하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관객들은 경험한다. ‘결핍과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합치되는 그들의 모순을.

 

의자왕의 애첩 은고는 첫 등장부터 요망하다. 세상 권력 다 쥔 왕 옆에서 무엇이 아쉬운지 힘없는 화가를 건드린다. 백제 멸망이 다가와도 은고는 왕의 눈과 귀를 멀게 하며 왕의 행위를 농락한다. 장돌뱅이는 갈급하다. 15년째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여자를 찾아 전국을 헤맸다. 우연히 다시 만난 여자는 나쁜 남자와 함께다. 하지만 그녀는 장돌뱅이와 있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며 다시 떠난다. 알콩달콩 신혼 부부. 한 남자는 불안하다. 살인자였던 과거를 부인이 알게 될까 염려스럽다. 지금의 행복을 뺏긴다면 남자는 끝이다.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식 연극에서 불필요한 에너지는 관객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명확한 주제의식도 희미해지게 만든다. 이 연극은 구성이 앙칼지다. 탄탄한 배우들의 연기와 깔끔한 구성은 극의 에너지를 극대화해 관객들을 압도한다. 극의 에너지는 일관되게 강하고,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진행돼 주제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이로써 극은 세 주인공의 행동과 심리를 긴장감 있게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근원적 결핍을 만드는 이들의 불안은 작품에서 밀도 있게 다뤄지며 관객들의 마음으로 다가온다.

 

관객들과 마주한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무대와 조명, 음악 역시 극의 에너지를 강화시킨다. 나무와 흘러가는 물, 백색으로 무장한 무대는 배우들의 심리와 행동에만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최소한의 소품으로 조명과 음악은 극적인 효과를 유도한다. 따뜻하기보다 선명하고 날카로운 느낌의 조명은 내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때 마다 다양한 변화로 극의 몰입도에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연극 ‘이날 이때 이즈음에’는 곱씹을수록 마음에 다가오는 작품이다. 작품을 극장 안 공간에서 바라볼 때는 어렴풋했던 생각들이 세상에 나오니 정리가 된다. 무대 위 ‘그들의’ 욕망과 결핍이 똑같은 인간인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로 정리가 귀결될 때 연극은 영원히 살아있게 된다.

 

이 작품은 오는 10월 31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3관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 김문선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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