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우리가 풀어야할 함수관계, 연극 ‘프루프’
연극 ‘프루프’는 배우 강혜정의 출연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영화 출연을 위주로 활동했던 그녀의 첫 연극 데뷔무대라는 점과 출산 이후 공식적인 행보로 선택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녀 역시 제작발표회 당시 “무대 위에서 제대로 걷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전한 만큼 무대는 배우로서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많은 선배 연기자들이 무대를 거쳐 갔고 연기의 깊이를 알았던 것처럼 배우 강혜정 역시 같은 길을 선택했다. 그녀는 10개월 가까이 굳어있던 머리를 흔들어 깨우고, 캐서린이라는 인물에 비로소 생기를 불어넣었다. 캐서린이 느꼈던 불안과 고민은 마치 그녀 안에 이미 녹아들어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분출된다.
- 캐서린에 대입되는 불안정한 자아
유독 자아가 강하고, 자기 안으로 깊이 침잠하는 사람들이 있다. 캐서린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불안정한 기질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고, 충돌한다. 그녀가 어긋나는 이유는 천재적으로 회전하는 수학적 두뇌와 상관없이 처음부터 연약하고, 불안하고, 고독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연극 ‘프루프’는 캐서린의 정서를 아버지와 언니, 그리고 할의 관계를 통해 섬세하고 촘촘하게 그려낸다.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실패를 경험하는 캐서린은 극의 후반부에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세상과 소통하기에 힘쓴다. 캐서린은 연약하지만 삶에 대한 의지와 애착이 그를 강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한다.
- 짜임새 있는 극 구조
극의 구조는 마치 로버트가 겪는 정신분열 증세처럼 현실과 과거가 교차된다. 마치 그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장면 장면을 따다 놓은 느낌이다. 따라서 각각의 장면은 낱개로 서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의 짜임새를 획득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버지 로버트와 그를 닮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캐서린, 그녀와 관계된 클레어와 할의 관계가 극 전체를 관통하는 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한 장면 안에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다. 어떤 장면은 극 결말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순서를 뒤바꿈으로써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캐서린
캐서린은 주로 집 밖에 머문다. 무대도 일반적인 작품처럼 장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 집 밖 마당이다. 사람들은 문을 열고 닫으며 집을 드나들지만 캐서린은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에도, 혼자 수학 증명을 풀 때도, 할을 만날 때도 모두 이 장소에 서 있었다. 캐서린이 느끼는 소외감과 모든 것으로부터 배제되었다는 고독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더욱이 아버지의 정신분열 증세를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녀가 처음부터 극복해야 될 과제였다. 배우들의 호연과 군더더기 없는 연출은 이 모든 것을 뛰어 넘는다. 극이 후반부로 흘러갈수록 치밀하게 계산된 개연성 덕분으로 관객들은 캐서린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볼 수 있다.
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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