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추남은 아름다워!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

배우 안석환의 연기는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운다. 시라노가 되어 내뱉는 문장들은 깊고 우울하지만 유쾌하다. 아름다움과 쾌락을 추구했던 17세기 파리의 정서를 대변하듯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섬세한 짝사랑의 감정을 재기발랄한 언어로 볼륨감 있게 표현했다.

 

시라노가 쓰는 편지에 담긴 내용은 하나 같이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것들뿐이다. 그가 가진 글 솜씨와 말재주에 비해 길고 못생긴 코를 가진 시라노는 자신의 진심을 문장 뒤에 숨긴다.

 

타고난 검객이자, 호방한 시인이었던 시라노는 고결한 정신에 비해 터무니없이 흉측했던 육체의 한계를 콤플렉스로 간직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진심을 전달하지 못하는 그는 건강하고 잘생긴 크리스티앙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작품의 화법은 흡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비슷하다. ‘아름답다’는 역설로 가득한 한 남자의 인생이 유머와 재치로 버무려질 때 관객들은 감동을 느낀다.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 역시 비슷한 느낌이다. 관객들은 시라노가 용기를 갖고 사랑을 고백하길 바라지만 정작 그는 록산느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인다.

 

본질과 껍데기는 늘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외모는 사람의 매력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록산느가 사랑한 것은 크리스티앙의 외모가 아니라 시라노가 가진 진심이었다. 우스꽝스러운 큰 코는 시라노가 극복해야할 태생적인 비극이기도 했지만 그는 선택의 기로에서 스스로를 자신의 제한적 조건에 가두어버린다.

 

그럼에도 시라노는 여전히 모험을 즐기고, 낭만적이며, 호쾌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가 읊조리는 시에는 울음이 섞여 있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의 잔여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관객들은 그가 쓰는 시에서 잔잔한 울림을 느낀다.

 

무대 구성은 비교적 단순하다. 극장, 라그노의 빵집, 록산느의 발코니, 전쟁터, 수녀원 등 다양한 공간이 등장하지만 장면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관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탁자와 의자를 세팅하고 무대를 이동시킨다. 그 사이를 부유하는 침묵은 배우가 직접 연주하는 기타선율로 말끔하게 채워진다.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전체적으로 브라운 계통의 색감을 사용해 따듯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준다. 옷깃을 여미게 되는 가을과 안성맞춤이다. 이 작품은 오는 11월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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