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놓고 명품배우 ‘민영기’의 대놓고 잘난 ‘알베르트’

그가 명품배우라는 데 이견을 내세우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대 위에서 감정에 취한 눈빛과 대사 한 번 날려 주고 객석을 침묵시킬 노래를 시작하면 조금 아쉬운(?) 공연도 곧 명품이 되고 만다. 그런 그가 달빛아래 산책하며 ‘그대 향기 있으니 내 마음은 소년처럼’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다가 ‘얼마나 더 관대한 미소를 띠우라는 건지’ 극한의 이성으로 분노를 다스리더니 ‘이해하오, 내 사랑’이라며 관객으로 하여금 롯데가 부러워 죽게끔 만드는 자상함과 사랑을 베푼다. 베르테르가 주체할 수 없는 순수함과 열정으로 롯데의 마음을 흔든다면 관객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들었다 놓는 것은 쉽사리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알베르트, 바로 민영기의 알베르트다.

 

처음에는 다들 베르테르를 생각했다. 공식적 발표가 나가기 훨씬 전 그가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대에 오른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대부분은 그가 연기했던 베르테르를 떠올렸다. 안 그래도 인간의 숙명적 슬픔과 혼을 담고 있는 그의 목소리가 가장 서정적인 비극을 노래했을 때, 우리 모두가 울지 않았던가. 객석에 앉아 어쩜 저렇게 잘 어울릴까 감탄하느라 바빴지만 정작 본인은 공연 내내 감정적으로 힘들어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고. “연습과 공연까지 세 달 정도를 우울증 초기증상처럼 보냈어요. 한 여자를 사랑하다가 자살하기까지 이르려면 어느 누구와도 말을 섞지 못 할 만큼의 상태고, 때문에 대인관계도 줄어들었죠. 당시 겨울이었어요. 몸과 마음이 추운만큼 힘들었죠.” 그래서 알베르트는 조금 더 쉬울 거라 생각했으나 막상 알베르트 내면으로 들어가 보니 광기와도 같은 순수한 열병의 가속도를 내는 베르테르보다 오히려 오만가지 감정의 미로로 가득 차 있다. 작품에서 내면의 변화와 심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베르테르, 롯데와 달리 알베르트는 스스로를 다스린다. “저도 조금 더 쉬울 줄 알았는데 이 알베르트가 갖고 있는 고민과 감정들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가 알베르트에 대해, 그러니까 민영기만의 알베르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발하임 최고의 신사 알베르트,
뮤지컬계 최고의 신사 민영기

 

Q. 알베르트는 피해자임에도 이성적 행동과 냉철한 눈빛으로 피해의 수위(?)에 비해 이해를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민영기의 베르테르는 변화됐다. 그 아픔과 사랑을 관객이 이해하도록 만들었으며 공감대를 형성토록 했다

이번에 중점적으로 생각한 것도 그 부분이에요. 이전의 알베르트가 무섭고 타인들로 하여금 멀어지게 만들었다면 이번 알베르트는 조금 더 자상하고 기다릴 줄 아는 거죠. 발하임이라는 마을에서 유명한 사람이에요. 남들도 부러워하며 ‘최고의 신사’라고들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를 생각해봤어요. 젠틀하고 섬세하면서도 핸섬한 사람이어야한다고 판단했어요. 또한 롯데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기다려주는 거죠. 연출가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베르테르가 없으면 허전하고 심심하겠지만 알베르트가 없다면 롯데는 쓰러질 것이다, 라고요. 저는 그 말에 굉장히 공감해요. 알베르트는 어느 순간에건 인정받아야하고 사랑하며 그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롯데라고 생각해요.

 

Q. 단번에 베르테르의 마음을 짐작할 만큼 통찰력이 뛰어나서 그런가, 알베르트는 쉽사리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베르테르와 롯데의 감정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표출되는 반면 알베르트의 마음은 짐작만 갈 뿐, 그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설명 좀 해 달라

제가 표현하는 알베르트는 베르테르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그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이 분은 저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신 베르테르라는 분이예요’라고 롯데가 소개하는 순간부터 아! 하고 알게 되는 거죠. 하지만 표현하지 않아요. 잘 모르겠어요, 그걸 표현한다고 해서 무언가 해결되지 않잖아요. 모른 척 해주고 롯데는 내가 없으면 쓰러지는 사람이라는 마음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어떠한 관계라 할지라도 묵과해주고 기다려주는 알베르트죠. 어떻게 보면 표현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리고 베르테르를 가여워하죠.

 

Q. 베르테르를 가여워한다는 말을 들으니 모든 게 이해가 간다

따지고 보면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상대가 되지 않아요. 알베르트가 그 보다 한참이나 위에 있어요. 때문에 직접적으로 맞서기 보다는 살짝 비켜나주고 ‘난 니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그러니까 이제 그러지마’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 오히려 가여워하며 어느 정도의 포용력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Q. 만약 실제 알베르트와 같은 상황을 겪었다면 어땠을 것 같은가

실제로 알베르트의 상황이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아요. 화는 나지만 표출하지 않는 알베르트인 반면 저는 그 앞에서 표현이 될 것 같아요. 베르테르와 정면으로 싸우거나, 아니면 법으로 묶어서 멀리 보내지 않았을까 해요.

 

Q. 베르테르는 자살을 한다. 알베르트는 극 중 자살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베르테르를 보면 마냥 손가락질 할 수만은 없다. 죽음 혹은 자살에 대한 개인적 견해는 어떤가

저는 크리스찬이기에 자살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극적으로 봤을 때는 그가 죽어야만 베르테르가 성립되고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적 동요를 일으킬 수 있어요. 또 당시 베르테르 효과가 있었던 것처럼 그의 자살은 이 시대를 대변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의 사랑이라면 다른 사랑을 찾지 않을까 싶어요. 그 열정으로 더 고집스럽게 살아남겠죠.

 

Q. 신앙이 배우생활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가

혹자는 안 된다고 하기도 해요. 예전 연출 분들은 약간 신기 있는 사람들이 무대에 많이 서며 더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셨죠. 저는 크리스찬이 아니었다면 무대에 서지 못했을 거예요.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었거든요. 두 세 명만 저를 쳐다봐도 얼굴이 빨개져서 이야기를 하지 못했어요. 교회에 다니면서 남들 앞에서 대표기도도 하고 찬양도 하는 등의 활동이 훈련이 됐죠. 노래도 못했는데 성가대에 서면서 노력을 많이 했고요. 저는 정말 음을 못 맞췄어요. 고등학교 때 합창단에 들어가기 위해 오디션을 봤는데 두 명이 떨어졌고 그 중 한 명이 저였으니까요.

 

Q. 아, 음치인 기자 입장에서는 매우 희망적인 이야기다. 말이 나온 김에 음치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기본을 좀 알려 달라

많이 듣고 그 노래를 카피하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듣고 시험할 줄 알아야하고 질타할 줄 알아야 해요. 자신의 소리를 듣고 알아야 고쳐져요. 수험생이나 저에게 노래를 배우고자 하는 친구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노래를 잘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성량 역시 키워져요. 저도 목소리가 얇았거든요. 성악을 전공하고 호흡을 키우고 소리 지르는 법을 알게 되면서 성량도 자연스럽게 커지더라고요. 희망이 있습니다. 하하.

 

Q. 결혼하고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몸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게 좋아요. 결혼 전에는 집에 돌아가면 주로 컴퓨터와 대화를 하거나 개인 홈페이지 혹은 메신저를 통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였는데 지금은 아내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요. 오늘은 뭐했는지 어땠는지 등. 또 서로의 대본을 보며 의견도 나누죠. 결혼 전에는 몰랐던 소소한 것들이 저를 자유롭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줘요.

 

Q. 같은 직업을 갖고 있어서 많은 부분이 도움이 되겠다

그럼요. 제 일에 대해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도 만나봤지만 말이 안 통하니 3분 이상 대화를 못하겠더라고요. 지금 아내와 사랑을 키워가는 데 있어 서로 이해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도 크게 작용을 했어요.

 

Q. 요리는 잘 하는가

아유, 제 아내는 요리를 너무 잘….

 

Q. 아니, 아내 말고….

아, 저요? 저는 음, 기본적으로 MT나 스키장 등 어디에 가서든지 김치찌개 만들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아내는 제 계란볶음을 너무 좋아해요.

 

Q. 그게 뭔가. 계란볶음이라하면 그냥 프라이팬 위에 계란 풀어서 이리저리 뒤집는 거 아닌가

그렇긴 한데 아내가 너무 좋아하거든요. 이런 맛을 처음 먹어봤다고. 하하. 저 요리 잘해요. 비빔국수 이런 것도 잘하고.

 

Q. 음, 잘 모르겠으나 결국 요리 실력은 별로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는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의 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실수담!

제가 어디 나가서든 에피소드로 하는 이야기죠. 무대에 그만큼 나가면 안 되는 데 제가 너무 많이 나간 거예요. 포즈가 멋있어야하는데 뒷걸음질 치다가 흔들렸죠. 갑자가 하얘지면서 가사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난난나~’로!

 

Q. 더 큰 실수를 한 적은 없는가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지금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엠마 역의 조정은이라는 친구와 주인공을 맡았어요. 처음 주역이었고 무대에 많이 못 서본 때였는데 또 첫 공연이었죠. 그때는 환생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해서 발레 하는 친구들이 환생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돼 그들을 쳐다보며 춤을 추고 예쁘게 마무리를 하는 거였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이 둘 다 죽고 음악이 고조되며 암전이 됐는데 그와 동시에 조정은씨와 제가 약속이나 한 듯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조명이 켜지고 환생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무대를 봤는데 거기에는 칼 한 자루와 약병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던 거예요.

 

Q. 도대체 왜 나간거지?

몰랐어요. 그때는 암전이 됐으니 커튼콜이구나 하고 각자 나갔는데 생각해보니 뒤에 신이 하나 더 있었던 거죠. 연출님께 엄청 혼났어요. 당시 제임스 전 선생님이 안무를 맡으셨는데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없으니까 춤이 잘 보여서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Q. 직접 목격했어야하는 실수인데 매우 아쉽다. 지금껏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대형뮤지컬은 물론, 소극장 뮤지컬, 모노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역으로 호평을 받았는데 아직도 하고 싶은 역이 남아있는가

무궁무진하죠. 모노뮤지컬 ‘조지 엠 코핸 투나잇’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당시 지금보다 어려서 잘 모를 때 육십 대 노인까지 연기를 해야 했기에 아쉬운 부분이 많았어요. ‘지킬앤하이드’도 한 번 더 하고 싶고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과 라울도요. 작년에 오디션을 봤어야하는데 스케줄이 안 맞는 등 기회가 안됐어요. 아직 우리나라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마리우스, 매력적인 자베르만 역, 또 나이가 조금 더 들면 ‘맨오브라만차’도 하고 싶어요. 배우는 그런 것 같아요. 5,60이 되어도 여전히 하고 싶은 역이 있겠죠.

 

Q. 수많은 아이돌스타가 무대로 넘어오고 있다. 뮤지컬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공연은 마니아성이 짙다. 그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 혹은 스타캐스팅에 대한 아쉬움 등은 없는가

제가 봤을 때 이거는 누구나 겪어야하는 과도기예요. 스타들이 이곳으로 넘어와 물을 흐리는 게 아니에요.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뮤지컬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럴 수 있다면 당연히 수용을 해야 하고 다만, 그들의 티켓파워만 보는 게 아니라 작품 전체에 맞는지를 판단해야죠. 제가 뮤지컬 ‘모차르트!’를 하고 나서 십대 팬들이 많이 늘었어요. 그걸 시아준수 효과라고. 하하. 서로의 것들을 공유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거죠. 이제는 연극, 뮤지컬 무대에 섰던 배우들도 방송이나 영화 쪽으로 진출하잖아요. 저도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고. 브로드웨이 시장의 경우 뮤지컬 넘버가 일반 차트에 오르고 뮤지컬 배우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호평을 받는 것처럼 상호간의 교류는 분명 유익한 거라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이 계절에 참 잘 어울리는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고 관객이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는지, 무엇을 함께 공감하고 싶은지 이야기해달라

일단 누구나 사랑의 경험이 있죠. 어렸을 적 어머니에 대한 사랑부터 이성에 대한 사랑까지. 사랑에 대한 경험이 있다면 분명 많은 공감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세기가 변했음에도 여전히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 십년 동안 한국에서 꾸준한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가 분명 있거든요. 뮤지컬 ‘모차르트!’의 작곡가와 연출가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셨어요. 본인의 나라에서도 시도하지 못했던 작품이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오랫동안 공연됐다는 데 놀라면서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스케줄이 안 맞아 못 보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만큼 우리나라 뮤지컬은 열정이 있어요. 이 작품이 한국 정서와도 잘 맞고요. 관객 분들은 자부심을 갖고 과연 어떤 사랑이기에 그토록 아프고 시리며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지 경험하셨으면 합니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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