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최민철, 늦가을의 시린 공허에 온기를 불다
만약 그를 뮤지컬 ‘살인마 잭’에서만 봤다면 그가 무대 밖에서도 어두운 밤거리를 호령하는 살인마처럼 느껴져 말조차 건네기 무서울 수도 있다. 만약 그에게 남우조연상을 안겨준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서만 그를 만났다면 실제 친구를 컴컴한 동굴 같은 암흑 속으로 밀어 넣고 친구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만들만큼의 ‘나쁜 놈’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이건 훤칠한 키와 가만히 있어도 뚝뚝 흐르는 외형적 카리스마 때문이 아니다. 만약 그를 ‘올슉업’의 데니스로만 만났다면 머뭇거리는 소심한 로맨티스트로만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극장 무대 어느 곳에 서있어도 신비한 힘으로 기어코 관객들의 시선을 묶어두는 그가 소극장 무대에 섰다. 게다가 이름도 정겨운 ‘춘식’으로 말이다. 서울생활에 적응 못하는 춘식뿐이랴, 웨이터 찰스도 됐다가 카피가수(?) 배후도 됐다가, 그리고 전설로 남은 배호도 된다.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으나 그의 침착하고 느릿한 말투, ‘저는 살인 따위 꿈도 못 꿔요’라고 말하듯 천진하게 웃는 모습은 최근 무시무시했던 그의 무대를 몽땅 잊게 만들었다. 이 정겨운 말투는 아직 사투리를 벗지 못한, 그냥 춘식이다. 배호의 삶, 노래와 더불어 60-70년대 클럽 음악과 함께하는 ‘천변카바레’에서 배우 최민철은 다양한 역을 소화해낸다. 그가 들려주는 노래는 가을 길을 덮은 낙엽처럼 한없이 아름답고 쓸쓸하다.
“가사가 참 좋아요. 왜 옛날 사람들은 같은 이야기를 해도 빙 둘러서 하잖아요. 가사들이 다 그래요. 답답할 정도로 빙 돌려서 이야기해요.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예술이에요. 외로운 사나이, 이런 말을 누가 써요 요즘. 모든 게 쉽고 직접적이고 단순화된 이 시대지만 사실 감정이란 건 매우 복잡한 거잖아요. 그걸 표현하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인 가사예요. 시적이고 은유적이죠. 그래서 처음 들으면 다 비슷하게 느낄 수도 있어요. 전주 듣고 절대 노래 못 들어가요. 어, 무슨 노래지? 하면서(웃음). 그러나 가사를 대뇌이고 듣고 부를수록 그 의미의 깊음을 느낄 수가 있죠.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같은 이슬비 누가 울어 이 한밤 잊었던 추억인가….’ 정말 좋지 않아요?” 뮤지컬 마니아들은 물론 이번 공연을 통해서 중년들의 마음까지 감성적이면서도 멜랑꼴리하게 만든 배우 최민철을 만났다.
- 소년의 수줍은 봉오리와 중년의 묵직한 열매,
딱 그 가운데에 선 배우 최민철이 노래하는 인생
Q. 매우 늦었지만 이번 남우조연상 수상을 축하한다. 예상 못했다고 하던데 정말인가
우선 안 알려줘요. 알려주면 배우들이 안 와요(웃음). 정말로 나는 다른 배우, 그 중 범석이 형이 상을 받지 않을까 했어요. 이름이 호명됐을 때는 당황스럽고 놀랍고, 그리고 좋았죠. 근데 왜 나는 내가 못 받을 거라고 생각했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네. 네가 받을 것 같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그냥 의례 그러려니 했어요.
Q. 수상 소감에서 ‘최몬테’가 히트를 쳤다. 아이 이름은 정했는지
그 얘기 엄청 많이 들었어요. 재밌었어요? 아직도 아이 이름은 정하지는 못했는데 정말 최몬테로 할까….
Q. 그러지 않길 바란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를 비롯, 최근 대극장에서만 만나왔는데 소극장 무대에 선 것을 보니 색다른 느낌이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가
먼저 회사를 통해 배호의 음악과 이야기로 작품을 만든다고 전해 들었어요. 생소했죠. 제가 그 세대의 음악도 잘 모르는데다가 배호의 노래도 많이 알지 못했고 또 소극장 공연도 한참 안하던 터라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말로 누나도 잘 몰랐거든요(웃음). 그러다가 친구 준면이가 하는 ‘천변살롱’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때는 하림씨가 했는데 사람들과의 만남이 재밌고 또 공연이 새로워 잘 만들면 따뜻한 공연이 되겠다 싶어서 하게 됐죠.
Q. 오랜만의 소극장 공연에 1인 2역에, 게다가 배호는 실존 인물이다.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맞아요. 일단 소극장 무대에 오랜만에 서지만 처음 연기를 시작한 게 소극장이어서 그 부분에 대한 부담감은 크지 않았어요. 역할 변화도 예전 ‘지하철 1호선’을 할 당시 배우들이 최대 1인 12역까지 소화했거든요. 무대 뒤에서는 전쟁터예요. 분장까지 자신이 다 바꾸니까. 그런데 1인 2역 정도야 뭐(웃음). 캐릭터에 대한 중심선만 잘 잡고 있으면 크게 문제될 건 없는데 아무래도 배호라는 인물에 대한 고민은 엄청났죠. 배호가 나왔습니다, 라고 할 때 사람들이 배호로 믿어야 하잖아요. 그것에 대한 부담감은 어마어마했어요.
Q. 그 부담감을 안고 연기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그와 아무리 비슷하게 해도 사실 본전이에요. 흉내를 잘 낼 수는 있지만 결국 배호는 아니니까요. 더군다나 대극장 저 멀리서 보인다면 모를까, 이 소극장에서 배호의 부활을 보여주기에 제 능력이 거기까지는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신 무대에 배호가 섰을 때, 혹은 마지막 잎새를 부르고 떠나가는 배호를 볼 때의 관객 느낌이 어떨지, 한 시대의 예술가를 보내는 관객들에게 어떤 마음이 들게 할지에 대해 고민했어요. 저는 그를 상징적이고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고귀한 인물로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지만 그럼에도 예술가적인 마인드를 끝까지 잃지 않았던 예술가로 보이게 하기 위해 노력을 했죠.
Q. 노력 끝에 무대에 섰고 이제 며칠의 공연도 했다. 스스로 만족은 되는가
에이, 스스로 만족은 안 되죠. 그래도 기분이 좋은 게 다른 공연과 다르게 어른들이 오셔서 보는 공연이잖아요. 저는 조용히 음악 들으면서 잔잔히 보시다가 갈 줄 알았어요. 그 정도면 늦가을에 어울리는 따뜻한 공연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에 비해서 관객들이 너무 좋아하세요. 사실 어른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공연이라고 하면 딱히 잘 떠오르지 않고 한정돼 있어요. 저희 팬들도 보러 왔는데 젊은 사람들도 좋아하더라고요. 물론 노래는 하나도 아는 게 없대요. 노래 아무것도 모르겠대(웃음). 나는 그래도 몇 개 정도는 알 줄 알았는데. 모른 척 한 건가? 어린 척 했나?
Q. 말했듯이 객석에서 중년 관객들의 모습을 꽤 볼 수 있었고 또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아저씨가 와서 재밌어하면 그 공연은 잘 된다고 하거든요? 이 공연은 정말로 아저씨들이 좋아해요. 어떤 분은 중반정도에 ‘야, 저 사람 배호랑 목소리 똑같네’ 하시더라고요. 기분 좋았죠.
Q. 아, 결국은 본인 자랑인 것 같다. 배호의 노래가 주를 이루지만 아무래도 역할 상 비중이 큰 건 춘식이다. 춘식이와 본인이 닮은 점이 있다면
제가 대학에 늦게 간 편인데, 처음 서울로 대학을 왔을 때 딱 춘식이었을 거예요. 휴가를 받아 수능을 치르고 군 제대를 1월 4일에 했어요. 실기시험은 1월 21이었죠. 집에서는 뭐 되지도 않을 거 한다고 걱정을 하셨어요. 더군다나 성악인데 전혀 준비가 안됐으니까요. 대충 반주자 하나 데리고 시험을 봤는데 붙었어요. 집에서는 난리가 났죠. 학교를 다니는데 전라도에서만 있던 사람이 서울 와서 적응 전혀 못하고 어설프고 그랬어요. 누군가는 카리스마 있는 역을 하다가 촌스러운 춘식을 소화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데 그런 거 전혀 없었어요.
Q. 매우 잘 어울린다. 그리고 결국은 준비 안하고도 시험에 합격했다는, 또 본인 자랑인 것 같다. 극 중 미미는 조지와 미국으로 떠나고 순심이는 홍등가에서 만난다. 그 관계들은 거기서 끝나는데 그 후의 애정선은 어떻게 흘러갔으면 좋겠는가
대본 구성할때부터 회의도 많이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는데, 저는 순심이가 다시 돌아와서 춘식과 함께 행복한 걸로 마무리 지었으면 했어요. 근데 몇몇 의견들은 순심이가 적당히 갔으면 되는데 돌아오기엔 너무 멀리 가버렸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어쨌든 저는 순심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글쎄,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아요. 그때의 시대상을 반영한 거니까요. 저도 들어서 알고 있지만 당시 서울 온 대부분의 여성들의 현실이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Q. 카바레는 가 봤는지 알고 싶다
카바레는 안 가봤는데… 아, 이거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어렸을 적 그 비슷한 곳에서 웨이터로 일해본 적은 있어요. 누군가에게 맞지는 않는데 욕은 많이 듣죠. 아, 맞다, 카바레 가봤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나? 가족들과 함께 극장식 카바레 가봤어요. 어렴풋한 기억에는 아는 친척 분 누군가가 관여돼 있어 오픈식에 갔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아요.
Q. 무대 경력 십 년이다. 그 동안 뮤지컬 환경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
많이 달라졌죠. 일단 자본 여건이 많이 성숙해졌어요. 예전에 소극장에서 창작을 한다고 하면 정말 어려웠어요. 내일이 공연인데 오늘 노래가 새로 나올 때도 있고 대본이 다 뜯어고쳐지고 연출이 짤려 다른 사람이 연출이라고 오고, 또는 안무가랑 연출가가 싸워 안무가가 나가기도 하고. 당장 무대에 서는 건 배우들인데 불안하니까 당일까지 대사, 노래 외우고 하우스오픈 10분 전에 커튼콜 연습하고. 지금 이 작품도 소극장 창작인데 그때에 비하면 제작, 준비 과정이 많이 성숙해졌죠. 두산아트센터에서도 준비를 많이 해주셨고 연출, 작가를 비롯해 저 모르게 오랫동안 준비를 하셨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도 욕심을 낸 부분도 있고요.
아, 이거 이야기하면 또 자랑한다고 할 텐데. 안무 보셨죠? 그거 제가…. 하하. 출연하는 배우들이 저 말고 세 명이 더 있는데 호흡이 잘 맞아야겠다는 생각에 함께 하고 싶다고 여쭤봤더니 제작사 쪽에서 흔쾌히 오케이 하셨어요. 물론 안무선생님이 오시면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우리의 콘셉트에 맞춰 우리끼리 재밌게 만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저희가 함께 동작을 만들었어요. 어떻게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최대 열심히 한 거예요(웃음). 웃으며 작업을 할 수 있는 이 모든 게 뮤지컬 환경과 여건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죠.
Q. 역할에 대한 또 다른 욕심은 없는가
어렸을 때는 항상 동경했죠. 초기 참여했던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러시아 공사 베베르라는 역을 맡았는데 그 금발을 쓰고 숨어서 고종노래 연습하고 그랬어요. 현재 그런 욕심은 많이 없어졌고 지금에 만족하는 게 생겼어요. 제가 다른 배우들하고 다르게 개성 있는 역을 많이 했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잘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Q. 외형적 아우라가 영화를 찍어도 상당히 좋을 것 같은데, 본격적 진출 등의 생각은 없는지
본격적으로 지금 하고 있는 걸 다 때려치우고 갈 마음은, 처자식이 있기 때문에 없고(웃음). 우연치 않게 접하게 된 영화 작업이 무대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가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또 지금 개봉을 앞둔 ‘화이트’라는 영화를 찍기도 했어요. 영화든 연극이든 장르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배우로서 성장해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무대를 버리고 타 분야에 매진할 생각은 없어요.
Q.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올 예비 관객들과 독자들에게 인사해달라
60-70년대에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그를 위해 원곡을 그대로 삽입하기도 했지만 재즈나 블루스, 스윙 등을 과감하게 적용, 편곡한 곡들도 있거든요. 부모님들, 아이들과 함께 와서 모두가 즐겁게 보고 갈 수 있는 작품이니 늦가을 따뜻함을 느끼고 돌아가셨으면 합니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