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달릴 준비됐습니까? 연극 ‘굿닥터’

연극 ‘굿닥터’는 빠른 호흡이 관건이다. 한 순간도 늘어지거나 지체되면 콩트가 가진 유머와 풍자를 놓치기 쉽다. 덕우기획의 ‘굿닥터’는 그런 면에서 짧은 콩트 형식의 에피소드 여섯 개를 연속적으로 보여주고도, 스피디함과 각각의 드라마 사이에 어떤 괴리감도 느끼지 못하도록 깔끔한 이음새를 완성시켰다. 내처 달리고도 숨이 차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웃음 포인트는 절묘한 타이밍에서 어김없이 터져주고, 그 웃음을 만들어내는 배우들의 연기는 깊은 내공의 산물이다. 숨죽인 가운데 누구 한 사람이 참지 못하는 웃음을 터트릴 때 그 웃음은 순식간에 관객석 전체로 퍼져나간다.

 

- 체홉의 단편, 닐 사이먼에 의해 무대화

연극 ‘굿닥터’는 주인공들을 억지로 우스꽝스러운 상황 속에 밀어 넣고 우리 삶의 비틀어진 단면을 꼬집는다. 콩트라는 장르에 걸맞게 연극 ‘굿닥터’는 다른 코미디 연극이 보여주는 웃음 코드와는 체계를 달리한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기발하고, 압축적이며, 극 후미에는 급전(急轉)의 묘미가 있다. ‘재채기’가 여섯 개의 이야기 중 가장 처음에 배치된 것도 이러한 작품의 성격과 방향을 잡아주기 위함이다. 첫 에피소드가 끝나고 암전이 되면 관객들은 감을 잡는다. 실수로 상사의 뒤통수에 재채기를 한 부하직원은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사과에 사과를 거듭하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더욱 꼬여만 간다. 코드를 읽어낸 관객들은 두 번째, 세 번째 스토리에도 쉽게 적응해나간다.

 

‘재채기’로 시작된 이야기는 ‘겁탈’, ‘늦은 행복’, ‘의지할 곳 없는 신세’ 순으로 이어진다. 무난하게 이어지는 ‘겁탈’과 ‘늦은 행복’은 잔잔하지만 스토리 자체에 흡입력이 강해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특히 ‘늦은 행복’은 중년의 두 노인을 등장시켜 ‘시간’이라는 아득한 소재를 형상화시켰다. 급할 것도 딱히 바쁜 일도 없어 보이는 두 노인의 시간은 마치 정지된 그림처럼 정적이다. 이는 강약의 정도에 따른 에피소드의 적절한 배치와도 연관이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의지할 곳 없는 신세’는 무겁게 내리누르는 눈꺼풀을 당장이라도 번뜩이게 할 정도로 에너지와 위트를 자랑한다.

 

연극 ‘굿닥터’를 살리는 일등공신은 바로 배우들의 역량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모두 연극적 연기를 지양한다. 다소 허술해 보이고 소위 대사를 ‘씹’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작품 안에서 ‘의도되’었거나 혹은 ‘허락된’ 것으로 본다. 결코 완벽하지 않은 우리 삶과 전적으로 닮아있다. 이것은 체홉이 추구했던 ‘사실주의’와도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연극 ‘굿닥터’는 연극이 아닌 삶의 일각을 보여준다. 허구적 관계와 상황에 지극히도 현실적인 삶의 이면을 덧칠했다. 작품의 마무리는 체홉이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 첫 장면과 수미상관을 이룬다. 언제고 우리 삶의 에피소드는 되풀이 될 수 있고, 또 끝나지 않음을 암묵적으로 나타낸다.

 



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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