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밤을 밝히는 당신은 낭만, 달빛 오르골 ‘판타스틱스’
‘Try to remember’ 멜로디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면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며, 눈은 지그시 감기고 입가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번진다. 마냥 설레어지는 이 음악은 다름 아닌 뮤지컬 ‘판타스틱스’의 오프닝 넘버이다. 1960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 ‘판타스틱스’의 명넘버이지만 뮤지컬보다 성시경, 유열 등이 불러 더욱 잘 알려져 있다. 뮤지컬 ‘판타스틱스’는 이같은 낭만적 넘버 뿐 만 아니라 기분상승제라도 넣은 듯, 입가에 머금는 잔잔한 함소(含笑) 를 짓게 하는 로맨틱한 장면으로 가득하다. 아름다운 두 남녀의 수줍은 사랑 이야기는 물론이요, 이 둘을 축으로 행성처럼 맴도는 아버지와 악당들이 벌이는 재기발랄한 사랑작전은 그야말로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달콤한 사랑시를 연상케 하는 낭만적인 대사와 천진난만한 등장인물들의 수줍은 사랑 표현, 슬랩스틱 코미디는 마치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상자에서 러브레터를 발견한 것처럼 소소한 기쁨이 샘솟게 한다. ‘사랑했던 그 순간만큼은 참 아름다웠다.’ 러브레터를 열면 어디선가 맑고 투명한 오르골 소리가 청명하게 울러 퍼진다. 뮤지컬 ‘판타스틱스’에 귀 기울여 보자.
- 진실한 사랑의 ‘원형’
소년 마트와 소녀 루이자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갈망한다. 그들을 갈라놓는 건 양쪽 아버지다. 이들을 더욱 끈끈하게 맺어주려는 것이다. 그들이 드라마 같은 사랑에 흠뻑 취해 있을 무렵 양쪽 아버지는 조용히 쾌거를 이룬 듯 기뻐한다. 아들, 딸의 확고부동한 사이를 위해 서로 또다시 머리를 모으는 양쪽 아버지. 악당을 합류시키면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 한 뮤지컬 ‘판타스틱스’에는 여과에 여과를 거듭한 진실한 사랑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50년 간 공연된 세계 최장수 뮤지컬의 노하우가 여기에 있다. 클래식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뮤지컬의 막이 내리고 진하게 전해지는 환상적인 기분은 이 작품의 진가를 증명해준다. 피아노 반주 하나와 서정적 대사, 사소한 소품의 조화로운 선율만으로 환상에 잠길 수 있다는 건 마법 같은 일이다. 이에 무엇보다 가장 돋보였던 것은 앙상블이었다. 서현철, 김현철 콤비는 각각 남녀 주인공의 아버지와 헨리과 머티머 역을 맡아 ‘판타스틱스’ 특유의 낭만적 분위기를 잘 이끌어냈다. 앙상블 콤비는 다소 진부하게 끝날 수도 있었던 클래시컬한 무대에 슬랩스틱 코미디로 유쾌한 색깔을 덧입히고, 만화 같은 비현실적 상상을 편안하고 실감나게 소화해 무대를 장식했다.
- Fantastics! 무대, 그리고 환상
뮤지컬 무대는 늘 가슴 떨리는 긴장감과 흥분, 꿈으로 가득하다. 뮤지컬 ‘판타스틱스’는 이름 그대로 환상적인 무대에서 극중극을 가미한 액자구성으로 환상을 고조시켰다. 이 작품은 수차례 극중극과 극중 현실을 오간다. 무대 안에 무대가 있고, 또 그 무대 안에 스토리가 있다. 어수선해질 수 있는 구조의 이야기는 연출의 손에 거쳐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 녹아났다. 이야기 전개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적절한 속도감을 유지하면서도 지루함이 없었다. 특히, 마당 울타리 곁에 걸어둔 황금빛 ‘달’은 작고 소박하지만 조명효과와 더불어 또렷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달빛의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넘버와 어우러져 진정성을 높였다.
뉴스테이지 김미성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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