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눈이 아닌 마음에 그림 그려주는 것이 무대미술”, 뮤지컬 ‘영웅’의 박동우 무대미술가

2010년 뮤지컬계는 ‘영웅’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뮤지컬 ‘영웅’은 올해 제4회 뮤지컬 어워드와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각각 4관왕, 6관왕을 달성하며 창작뮤지컬의 위엄을 보여줬다. 지난 4일부터 뮤지컬 ‘영웅’의 앙코르 무대가 시작됐다. 이 작품을 소개하는 기사마다 빠짐없이 보게 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뛰어난 무대 기술’. 지난해 초연 당시 하얼빈역 장면에서 등장하는 실물 크기의 기차는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역시 박동우!’ 그는 공연계에서 이미 알려진 거물이다. 그는 뮤지컬 ‘명성황후’의 무대미술로 국위 선양에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6년 스태프 최초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했다. 올해만 해도 뮤지컬 ‘서편제’, ‘생명의 항해’ 연극 ‘드라이빙 미스데이지’ 등 무대로 칭찬 받은 작품에는 어김없이 그의 손길이 닿아있었다. “세계 챔피언을 꿈꾸는 권투선수처럼 무대로 세계최고가 되는 꿈을 꿨어요. 그리고 여전히 계속 꿈꿔요.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매년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죠. 그렇게 성장된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어요.” 꿈꾸는 무대미술가 박동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뮤지컬 ‘영웅’의 넘버가 컬러링이던데, 각별한 애정이 있으신것 같아요.
컬러링 뿐 아니라 벨소리도 알람도 뮤지컬 ‘영웅’의 넘버에요. 뮤지컬 ‘영웅’의 넘버는 알람으로 들으면 잠이 확 깨요(웃음). 물론 뮤지컬 ‘영웅’이 제게 그만큼 각별하다는 거겠죠. 이 작품은 명성황후 이후 15년 만에 만드는 대작이었고 디자인 기간이 2년이나 걸렸어요. 뮤지컬 ‘영웅’을 제작하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분들에게 이 무대가 부끄럽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각별한 것 같아요.

 

Q. 무대 디자인 기간이 2년이나 걸렸다고 했는데 어떤 점 때문인가요.
그만큼 시작이 빨랐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많은 공연들이 시간을 짧게 두고 기획해서 빠른 시간 내에 무대 디자인을 완성하기를 원하는데 이 작품은 달랐어요. 기획 단계에서부터 첫 공연 날짜는 20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 기념일이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긴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줬죠. 2008년 3월에 이미 중국러시아 현지답사를 다 다녀왔어요.

 

Q. 초연 당시, 많은 관객들이 뮤지컬 ‘영웅’의 가장 인상적인 무대로 기차 장면을 꼽았습니다.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작업할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에요. 쉽게는 기차가 도착해 있는 것부터 장면을 시작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관객들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관객의 기대치를 최대한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기차가 달려오는 것부터 무대에 올려야했죠. 달려오는 기차는 영상이 불을 끄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들이 눈치지 못하게 영상을 기차의 실물로 바뀌게 했죠. 영상의 스크린 역할을 하던 것이 핵심이에요. 마술같은 일이죠.

 

Q. 무대 디자인의 영감은 대체로 어디서 많이 받으시나요.
누가 주면 어디 가서 얻고, 팔면 내가 살텐데...(웃음) 딱히 어디서 영감을 받는다고 하기는 힘들어요. 살면서 얻어왔던 정보, 내안에 축적된 정서, 작품 연구를 하면서 새롭게 만나는 자료 등을 종합해 만들어 가는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는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기도 하죠. 소설은 우리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니까요. 문화재도 물론 참고하긴 하지만 무대 세트는 영화처럼 똑같이 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어요.


Q. 구체적으로 영화 세트와 공연의 무대가 다른 점을 설명해주신다면요.
한마디로 하면 ‘재현’의 차이에요. 경복궁이 극본에 있을 경우 영화 세트는 경복궁의 실제모습과 가장 유사하게 만들어요. 공연은 달라요. 물론 리얼리즘이라고 해서 공연에서도 작품에 따라 사실적으로 무대를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요. 공연의 무대는 관객의 눈앞에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그려줘야 해요. 관객이 각각 다른 생각을 해도 괜찮아요. 심리적으로 전달되면 돼죠.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지 않고 굳이 공연장에 찾아온 관객들의 마음은 공연이 갖고 있는 ‘상상력’때문이 아닐까요.

 

Q. 최근 뮤지컬에서는 화려한 무대 장치나 영상을 활용한 무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국내 창작 뮤지컬 무대의 경향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국내 뮤지컬계에서 창작 뮤지컬들은 서양의 화려한 뮤지컬들과 직접 경쟁을 해야해요. 그렇기에 동등한 수준의 스펙타클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영상이나 무대장치에 치중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영상도 마찬가지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영상을 쓰기 좋은 제작환경이 되고 관객들도 영상이라는 표현방법에 익숙해져 있어요. 하지만 영상이 아닌 무대를 보러 온 관객이 어느 선까지의 영상을 원하는지 고민해 봐야 해요. 영상을 활용한 표현방법이 무대언어로 승화돼 잘 녹아야지만 관객들에게 미적 쾌감을 줄거예요.

 

Q. 미적 쾌감을 줄 수 있는 좋은 무대는 구체적으로 어떤 무대라고 생각하시나요.
공연 기능에 충실한 무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림은 좋은데 공연은 안되는 작품이 간혹 있어요. 무대는 미술품이 아니기 때문에 동선, 드라마 등 공연에 도움을 주고 관객들에게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해줘야 해요. 무대가 무난하면 안돼요. 관객들은 그 정도로 만족하려고 극장에 오는 건 아니거든요.
 
Q. 마지막으로 연극학과에서 제자를 양성하는 일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후배, 제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자주 하시는지, 무대 미술가로서 가져야할 자질이나 조건이 있다면요.
무대미술가는 글로 쓰여져 있는 작품을 분석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주제 파악 정도가 아니라 이 시대에 이 극본이 왜 필요한가 같은 사고가 있어야 하죠. 또한 글을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면도 있어야 하고 무대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도도 필요해요. 그래서 무대 미술가는 비유하자면 시인이면서 화가이자 건축자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러한 통합적인 예술을 하는 것이 무대미술가죠.

 

 

 

글, 사진_ 뉴스테이지 김문선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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