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그는 나를 사랑하긴 했을까, 연극 ‘그자식 사랑했네’

기억은 늘 그랬듯 내 것만 존재한다. 내 어린 시절, 내 친구, 내 꿈 그리고 내 사랑. 아무리 기억하려해도 그의 사랑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은 완전하지 못한 듯하다. 완전하지 않은 기억만큼이나 사랑도 완전하지 못하다. 닿지 말아야 할 사랑을 하기도 하고 닿았으나 느낌없는 사랑을 하기도 하고 닿았으나 잃어야 할 사랑을 해야 하기도 한다. 우리의 기억은 묻는다. 그는 나를 사랑하긴 했을까. 나는 그를 사랑하긴 했을까.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고, 절대로 논리적일 수 없어 더욱 본능적인 사랑의 기억 앞에 연극 ‘그자식 사랑했네’가 시작된다. 
 
- 19세 이상 관람가, 그들의 이야기를 엿보다


작품은 철저하게 여자주인공 미영의 기억에 의존한다. 그 남자의 첫 인상, 그와의 첫 만남, 그와의 첫 키스 모두 그녀의 생각뿐이다. 그녀가 사랑했던 감정이 존중되고, 그녀가 가진 의식이 투영된다. 그녀의 생각이 전해질 때 그 남자의 행동은 무대에서 멈춘다. 관객들은 극 내내 여자의 심리와 생각대로 철저하게 끌려 다닌다. 작품은 여자의 섬세한 심리를 관객들에게 엿보게 함으로서 지금은 흔적으로만 남아버린 사랑의 기억을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러한 극 전개는 관객으로 하여금 미영의 심리에 깊게 관여하게 만든다. 이는 주제를 극명하게 하는 동시에 관객들 사이에 미영에 대한 동의가 작품의 호불호(好不好)를 나누는 결정적인 위험을 갖고 있었다. 미영의 ‘발랑까진’ 대사와 ‘여자 친구 있는 남자와 계속 자는’ 행동을 솔직하게 느꼈던 관객들은 섬세한 심리묘사와 현실성에 공감한다. 반면 그렇지 않을 경우 관객은 이해되지 않는 미영의 심리와 관객 자신 사이의 부조화로 러닝시간 90분 내내 얼어붙어 있어야만 한다. 또한 작품은 19세 이상 관람가로 연령을 제한하며 과감한 스킨쉽을 예고했다. 스킨쉽은 예상만큼 때로는 예상보다 훨씬 가깝고 대담하게 자주 등장해 관객들에게 그들의 사랑을 동일시하는 대신 제 삼자로서 관찰하게 만들었다.

 

- 칠판과 OHP, 신선하고 기발한 연출이 돋보여 

 

추민주 연출, 극본이라는 작품의 꼬리표는 뮤지컬 ‘빨래’를 기억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기대와 설렘이다. 연극 ‘그자식 사랑했네’에서 역시 그녀의 연출력은 돋보였다. 그녀는 칠판과 OHP 필름의 아날로그적인 무대세트, 시, 팝송 등을 통한 연출로 관객들의 낭만을 자극했다. 낭만과 함께 OHP필름, 매직, 물방울이 구현하는 무대 배경은 관객들에게 호기심까지 유발 했다. 호기심과 낭만은 자칫 지루하고 단순할 수 있는 무대 세트를 강하게 만들었다.

 

- 멀티맨과 연주자가 이번 공연의 승부수 

 

2년 만에 돌아온 작품은 2인극이 아니었다. 작품은 연주자와 멀티맨을 작품 전면에 내세워 극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관객들은 공연장에 들어가자마자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페퍼톤스의 객원보컬 이선을 마주한다. 마치 소극장이 아닌 라이브카페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연주자 이선의 역할은 점점 중요해진다. 그녀는 남, 녀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변할 때마다 그와 어울리는 연주와 노래로 극의 분위기를 이끈다. 멀티맨 역시 마찬가지다. OHP필름으로 무대 배경을 시시각각 바꾸는 것도 그의 역할이고, 극의 분위기가 민망하고 무거워질 때마다 관객을 웃게 만드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헤어진 그와 그녀의 사랑이야기를 하는 연극이 웃겼다면 다 이들 때문이다. 작품은 이들을 투입하면서 이전 시즌 공연에서는 없었던 신선함과 재미를 추구하는데 성공했다. 

 

 

뉴스테이지 김문선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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