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네 안에 존재하는 뒤틀린 욕망, 연극 ‘어느 배우의 슬픈 멜로 드라마 맥베스’

날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있다. 사람은 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그는 손을 파닥파닥 움직이며 계속 날개짓을 한다. 땅을 박차고 뛰어본다. 세상에 이런 바보 같은 꿈을 갖고 있는 이가 어디 있는가. 하지만 그는 계속 꿈꾼다. 날 수 있다는 꿈과 야망은 그를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자 쫓고 매달리게 하는 힘이다. 그런데 순수했던 꿈과 야망이 어느 샌가 욕망으로 변질됐음을 깨닫는다. 설사 위험한 걸 눈치 챘을지라도 그때는 멈출 수 없다. 지금까지 달려왔던 시간이 아까워서 혹은 돌이킬 수 없어서 욕망을 제어 할 틈이 없게 된다. 4백 년 전 세상에 발표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어찌 아직도 이야기 되는걸까. 연극 ‘어느 배우의 슬픈 멜로 드라마 맥베스’는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무명배우와 맥베스의 만남은 순수했다. 사회에서 소외 받는 자일 수밖에 없는 무명배우지만 그는 순진한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연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무명 배우가 만난 스코틀랜드 영웅 맥베스는 그를 바꾼다. 영웅은 순진한 무명배우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무명 배우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영웅 맥베스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극중극 무명배우가 풀어내는 맥베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무명배우의 바람과 달리 권선징악 영웅 이야기를 기대하는 작품의 관객들은 아무도 없다. 관객들은 이미 ‘맥베스’가 셰익스피어의 비극임을 알고 있다. 관객들은 그가 혼자 펼쳐낼 1인극 새로운 맥베스가 기대될 뿐이다.

 

극이 시작됐다. 이게 웬일. 관객들은 전개를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악해질 때 마다 더 크게 분노하고, 그들의 욕망에 거북해한다. 뒤틀린 욕망은 점점 눈뜨고 볼 수 없이 더 선명해진다. 그것은 연극 ‘어느 배우의 슬픈 멜로 드라마 맥베스’의 첫 시작이 너무 순수했기 때문이다. 작품은 무명배우와 영웅의 첫 만남이라는 원작에 없던 설정으로 변해버린 맥베스와 그 부인을 부각하면서 무명배우의 순수함이 없어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명배우의 사라진 순수함은 관객들에게 맥베스의 악함과 욕망을 더욱 무섭게 느끼도록 만든다. 더불어 무명배우는 결말에서 맥베스를 비극적 인물로 만드는 원작을 또 한 번 뒤튼다. 무명배우는 악마가 된 맥베스를 여전히 영웅으로 생각하며 그를 연기한 것으로 기쁨에 잠긴다. 비극이 유쾌한 희극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하지만 보는 이에겐 여전히 비극이다. 무명배우가 악마로 변한 맥베스를 여전히 영웅으로 택한 것은 순수했던 무명배우에게도 깃들어 있는 욕망과 악함을 관객들에게 보게 한다. 그리고 욕망이 맥베스의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하도록 확장시킨다. 작품은 결말을 비틀어 관객 스스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내면의 악과 욕망을 발견하게 유도한다.

 

극단 초인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 1인극의 옷을 입혔다. 1인극은 배우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관객에게도 부담과 긴장의 연속이다.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은 한 배우의 에너지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다른 장치가 없는 이 작품은 관객들의 극에 대한 집중력 역시 배우에게 온전히 쏠린다. 관객은 잠시도 다른 생각할 틈이 없다. 한 배우에게만 집중해도 됐기에 원작을 변화시킨 형태도 받아들이는 데 어색함이나 무리가 없었다. 더 나아가 신선함까지도 발견하게 만들었다. 또한 1인극을 통해 관객들이 욕망을 회피하지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욕망과 내면의 어두움을 회피하는 것은 어찌 보면 사람들의 본성이다. 자신들의 욕망은 작고 나쁘지 않다고 우기는 행위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가. 배우의 대사와 행동에 온전히 집중할 수밖에 없는 1인극은 회피할 틈 없이 관객들을 욕망과 대면하게 만든다. 거기에 배우 이상희의 연기도 한 몫 한다. 처절할 정도로 혼신을 다하며 극을 이끄는 연기는 보는 이를 숙연하게 까지 한다.

 

 

 

뉴스테이지 김문선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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