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무대 위의 세련된 심리스릴러, 연극 ‘우먼인블랙’
살다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달리는 오토바이가 한 뼘 차이로 멈춰서 사고를 면한다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지만 멀쩡한 상태인 것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실존하지 않는 무언가에 보호받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심상치 않은 공포도 있다. 연극 ‘우먼인블랙’에서 아서 킵스가 느끼는 공포가 그것이다. 아서 킵스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과거에 자신이 겪은 끔찍한 사건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연극을 준비한다. 극중극의 형태로 이 작품은 무대를 채워나간다.
공포가 뼈 속까지 스며들다
연극 ‘우먼인블랙’의 극대화된 공포는 무대효과라 할 수 있다. 관객이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음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은 조명과 음향의 역할이 크다. 두려움과 공포는 나인 라이브 코스웨이(Nine Lives Causeway, 9개의 삶이 있는 길)에 위치한 외딴집에서 주로 나타난다. 굉장한 한을 품고 죽은 이의 혼령을 상상하게 되는 이곳, 상상은 공포를 절정의 순간으로 올려놓는다. 이 작품은 문이 저절로 열린다던지 상자의 열린 뚜껑이 닫힌다는 설정으로 클래식한 두려움을 끄집어낸다. 뿐만 아니라 흔들의자의 움직임 등 음향과 영상은 집요하게 세련된 공포의 조장한다. 클래식한 공포는 시작일 뿐이다. 이 세련된 공포의 설정엔 덤이 뒤따른다. 예를 들면 무대 위에 있던 아서 킵스를 굽어보다 순간적으로 관객 바로 앞에 짠하고 나타나는 기괴한 여인네의 영상은 객석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하다. 이에 뒤따르는 덤이라는 것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여성 관객들의 자지러지는 비명이다. 무대에서 주는 공포를 방어했다 해도 여성 관객들의 각기 짧고 긴 비명은 또 다른 공포와 불안을 전염시킨다.
두 배우의 굳건한 존재감
두 배우의 열연은 무대라는 작은 공간에서 ‘공포의 스릴’을 전달하기에 충분히 빛을 발했다. 3년 전 같은 역을 맡은 바 있었던 홍성덕 배우는 괴로운 기억을 가졌으나 그것을 연극으로 꾸며 우리식의 살풀이굿처럼 유령 혹은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연기를 선보였다. 공허함과 결심이 담긴 표정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아서 킵스의 독백과 낮은 톤의 목소리에 관객의 몰입은 높아진다. 이것이 이 연극이 가진 힘이다. 흔히 보는 지리멸렬한 피가 주룩 흐르는 공포가 아닌 목소리에 빠져들고 배우의 표정과 몸짓으로 공포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했다. 또한 극중 아서 킵스의 연기를 지도하는 조연출 역의 맡은 이용환 배우가 있다. 그는 작품 속 극중극의 젊은 아서 킵스를 연기하면서 본래의 아서 킵스가 가진 공포와 두려움을 이어 받는다. 조연출이 연극 ‘우먼인블랙’의 말미에서 아서 킵스에게 뱉은 하나의 질문은 영화 ‘식스센스’ 급의 반전을 몰고와 객석을 다시 초토화로 만들었다. 이용환 배우는 젊은 아서 킵스를 열연하며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극이 긴장감과 두려움을 상승시켰다.
연극 ‘우먼인블랙’은 수전 힐의 1933년 출간된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1989년부터 런던의 연극 무대에서 21년째 공연 중이다. 또한 이 작품은 영화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배우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 완결 이후의 차기작으로 영화 ‘우먼인블랙’을 선택했다.
연극 ‘우먼인블랙’은 대학로 샘터파랑새극장 2관에서 오픈 런으로 공연한다.
뉴스테이지 전성진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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