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유쾌하고 핫한 일곱 남자의 화끈한 생쇼, ‘콘보이쇼’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몸을 사정없이 흔드는 남자들이 눈에 들어왔을 뿐. 그들의 표정은 흩날리는 몸 때문에 읽을 수 없다. 바람에 나부끼는 것처럼 사뿐하게 팔랑거렸으며 그러면서도 에너지가 넘쳐났다. 인상 깊은 그들의 춤과 과장된 연기는 뮤지컬 ‘콘보이쇼’가 일본 작품임을 단박에 알아차리게 했다. 배우들의 오버액션은 객석 끄트머리까지 전해져 웃음을 전해준다. 큰 움직임과 새된 목소리는 다소 낯설다. 하지만 낯섦과 과장 그것이 바로 뮤지컬 ‘콘보이쇼’의 매력이다. 이 사랑스러운 오버가 없었다면 우리의 아톰은 빛조차 바라지 못한 채 쾌쾌한 지하실에서 숨죽이며 살아갈 운명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 철학, 재미와 함께 너풀거리?
지하실에 콕 처박혀 존재마저 희미해진 아톰의 먼지를 가볍게 툭툭 털어내는 여섯 명 혹은 일곱 명의 시인은 아톰에게 강인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들은 아톰이고 아톰은 곧 그들이다. 일곱 명의 시인은 언어로 구성된 시가 아닌 몸의 시를 선보인다. 뜨겁고도 섹시한 그들의 군무에 관객은 눈과 마음을 빼앗긴다. 하나의 유기체처럼 딱딱 들어맞는 동작은 ‘우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오게 한다. 그들의 땀방울은 무대를 모조리 적시고 급기야 객석까지 찐한 땀내음을 흘려보낸다. 그들의 춤은 그토록 격렬하고 역동적이다.
시인 6명이 모이자 시인모임이 완성됐다. 시인들은 함께 모여 서로 존재를 확인하고 시를 통해 오롯한 자신으로 실존한다. 이들에게 시는 자기 존재의 이유이자 또 다른 자신과도 같다. 마치 아톰처럼. 그런 그들에게 불쑥 이방인이 찾아와 자기도 모임에 끼워 달란다. 불청객을 반가이 맞을 리 없다. 그러자 불청객은 사방팔방 총을 쏘아댄다. 마치 어릴 적 놀이에 끼워달라고 보채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말이다. 흥겨운 군무를 선보이던 무대는 어느새 덥석 겁을 집어먹고 몸을 잔뜩 움츠린다. 허나 뮤지컬 ‘콘보이쇼’는 이런 분위기를 오래 방치하지 않는다. 외로운 영혼 ‘사리’가 자아를 찾겠다고 날뛰는 순간에도 ‘형사놀이’에 푹 빠진 여섯 명의 시인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뮤지컬 ‘콘보이쇼’에서 갖가지 철학적 사유가 넘쳐나도 결단코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은 것은 분위기에 어긋나는 재미를 곳곳에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 태종태세문단세를 산토끼 음률에 맞춰 외웠던 것처럼. 어렵기보다 되레 익숙하고 즐겁기까지 하다.
- 단단한 일곱 남자의 장기자랑 7종 세트
분위기는 종잡을 수 없이 바뀐다. 슬프다 싶으면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웃고 있다가도 눈물이 난다. 급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이 어색하지 않다. 그것은 단단한 팔과 다리, 탄탄한 근육에 숨겨둔 뚜렷한 자아 정체성을 가진 아톰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잿더미에 묻혀있던 암흑의 존재 아톰이,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탄생해 희망과 밝음을 안겨주듯이 말이다. 분위기에 맞춰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는 배우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몸에 꼭 맞는 아톰 옷을 입고 있다 불현듯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관객을 맞는다. 수시로 바뀌는 배우들의 의상은 공연 속 또 다른 볼거리다.
배우들은 보여줄 수 있는 건 하나도 남김없이 다 보여준다. 춤은 말할 것도 없고, 사물놀이를 연상시키는 난타, 또각또각 딱딱딱 탭댄스까지. 고요한 빗방울 소리에서부터 도미노가 쓰러지며 일으키는 경쾌한 마찰음까지 신나게 스텝을 밟는 그들의 모습은 에너지가 넘친다. 그들의 탭댄스는 귀에 깊이 각인된다. 뮤지컬 ‘콘보이쇼’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또각또각 구두소리에 저도 모르게 발을 쿵쿵 굴릴지도 모른다.
보여줄 것이 더 남았나 싶은데 이들은 관객에게 꾸역꾸역 밥숟가락을 들이민다. 한 상 거하게 대접받고자 들린 관객은 이미 포만감을 느낌에도 배우들이 내민 숟가락을 넙죽 받아든다. 관객이 밥숟가락을 입 가까이 가져가자, 일곱 명의 시인은 화려한 파티를 벌인다. 시인의 입에서 목련이 흘려 나오면 어김없이 목련 나무가 자라나고, 칼리만자로의 표범을 이야기하면 어느 틈엔가 달려나와 으르렁거린다. 목소리를 내리깐 일곱 명의 아톰은 이제 관객에게 되묻는다, ‘당신은 누구인지, 짧은 인생에서 무엇을 얻어갈 것인지’라고. 7명의 호흡이 딱딱 들어맞는 무대에 빈틈이라고는 없다. 그들은 서로의 배경이 되고, 또 주인공이 되기도 하며 각자를 추어올린다. 뮤지컬 ‘콘보이쇼’에 앙상블은 없다. 모두가 주인공일 뿐! 오는 2월 27일까지 동숭아트센터에서 변함없이 생쇼를 펼칠 그들이 가슴을 뜨겁게 데운다.
뉴스테이지 박수민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