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사랑은 마법이다, ‘올모스트, 메인’

보랏빛이 드리운 말간 무대는 조용히 관객을 응시한다. 세트는 애초에 없었다. 배우가 무대요, 그들 간의 호흡이 배경이다. 단출한 무대는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한눈을 팔 곳이 없다. 관객은 오로지 배우의 움직임만을 뒤좇는다. 몽롱한 보랏빛이 관객을 감싸자, 서서히 불이 꺼지고 조용한 틈새로 배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대 한켠에서 비춰오는 보랏빛은 다양한 사랑의 자태를 관객에게 여실히 전달한다. 사람의 감정이 여럿이듯 사랑의 모습도 여럿이다.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맹맹한 사랑, 달콤한 사랑, 쌉싸래한 사랑, 매콤한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의 맛’을 선보인다.

 

- 마법 한 스푼, 오로라 한 입

 

갖가지 사랑의 감정이 극장 내를 둥실 떠다닌다. 입을 열어 그 맛을 보면 새콤함, 씁쓸함, 외로움, 그리움 등 로맨틱하면서도 아픈 맛이 입안을 감돈다. 편안히 자리 잡고 앉은 관객은 기어코 그 다양한 맛에 빠져들어 자신도 모르는 채 온갖 사랑을 맛본다. 사랑은 몸서리치게 달콤하기도 하고 그 행복함 속에 괴로움과 눈물 나게 매운맛이 들어 있기도 하다.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다양한 등장인물을 내세워 다채로운 사랑의 ‘맛’을 느끼게끔 한다. 잔잔히 펼쳐지는 연극은 물 흐르듯이 관객의 가슴을 파고든다. 총 9개의 ‘사랑의 향’이 들어 있는 이 작품에서 나와 비슷한 사랑을 하는 인물 한 명쯤은 만날 수 있다.

 

-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모든 것은 공감에서 비롯된다. 객석과 무대가 분리되어 있지만 관객과 배우의 마음은 한 공간에서 숨 쉰다. 배우의 땀은 관객을 적시며, 그들의 한숨은 관객의 마음에 내려와 앉는다. 관객과 배우를 하나로 엮는 것은 공감에 있다.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에 배우의 한숨은 나의 한숨이 되고, 나의 눈물이 배우의 두 뺨에서 흐른다. 늘 지켜만 볼 뿐 사랑한다 고백하지 못한 끙끙이의 마음도, 떠나가는 사랑을 잡지 못해 슬픈 이의 마음도, 타인과는 다른 사랑을 하는 사람의 마음도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따스히 품는다. 이 따뜻함에 기대어 관객은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위로받는다.

 

- 달콤함과 담담함 사이

 

이 작품이 사랑 이야기로 치장했음에도 달달함에 질리지 않는 건 사랑에 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하나의 감정만 느끼지 않듯이 사람이 하는 사랑에도 새로운 관점이 존재함을 넌지시 보여준다. 조각난 심장을 손에 쥐고 다니는 그녀는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오로라가 뜨는 곳에서 그를 배웅해주고자 먼 길을 떠나온 그녀는 급작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훔쳐간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을 지켜주고자 떠나온 길에서 그녀는 새로운 사랑을 잡으러 손을 내민다. 이렇듯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다 금세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 미워 보이지 않는 것은 신선한 시각과 해석에 있다. 관객은 그녀를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보다 되레 돌처럼 굳어버린 그녀의 심장이 다시금 뛰길 바란다. 사랑에 관한 다양한 모습을 통해 세상에는 내가 이해 못 할 사랑도 많다는 것을 슬며시 알려준다.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묵묵함을 자랑한다. 연극은 이렇다저렇다 떠드는 법이 없다. 조용히 자신의 사랑을 담담한 마음으로 보여줄 뿐이다. 배우들의 열정 역시 뜨겁지만 그 뜨거움을 관객에게 인위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관객을 울린다.

 

사랑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를 한 곳에 버무려 놓은 이 작품은 다양한 사랑의 관점을 보여주며 은근슬쩍 사랑에 빠지게 한다. 사랑의 갖가지 감정을 맛보게 해줄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오는 1월 30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차이무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뉴스테이지 박수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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