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안도는 증오와 함께 온다! 연극 ‘미친극’

때로는 거울 속의 비친 내 모습이 진짜이고, 중력에 순종하며 대지 위에 교과서적으로 서있는 내가 허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것이 진짜이건 모두 나에게서 파생된 존재다. 연극 ‘미친극’에서 한 인간의 존재가 어디에서 파생돼 왔느냐는 중요치 않다. 서로가 서로를 소름끼치도록 똑같이 비추는 거울 같은 삶을 가볍게 비웃으며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들춰낼 뿐이다.

 

화장대 앞에 앉아서 야한 화장을 하는 아내 장미와, 작가의 실패한 글들이 가득한 구겨진 종잇조각처럼 소파위에 쭈그리고 누운 남편 도연의 대화로 극이 시작된다. 이 장면이 관객들의 시선을 잡는 이유는 낯익은 슬픔에서 기인한다. 낡아빠진 듯 보이는 그 둘의 지친 삶의 단면과 닳아버린 예스러운 대화체는 박제된 천재시인 이상의 권태로운 하루와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연극 ‘미친극’은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소’라는 기괴한 시와 닮았다. 띄어쓰기를 무시하며 논리성을 부정하고,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무의식 세계를 표출하듯 이 작품은 대중을 상대하는 연극임에도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연출과 대사들로 가득하다. 어떤 자신감에서 일까. 극 전체에 무거운 그림자처럼 내려앉은 그로테스크함은 무대 위를 장악하고 있는 몸통 잘린 배나무로 대변된다. 아니 사실은 감나무다. 썩어빠진 느낌의 암울한 감나무는 기괴하게 몸통의 가운데가 텅 비었다. 송두리째 공허로 뿌리 뽑힌 상실의 갭이다. 그 사이로 미친 인생과 같은 도끼에 찍혀 피를 흘리기도 하는 감나무는 도연이 안도의 오줌을 누는 화장실, 요강 따위가 되기도 한다. 안도가 낳은 증오의 산물 감나무. 안도는 증오와 함께 온다고 외치는 극중 연출가 장성익의 포효는 무대 위를 가득 메운다.

 

이 작품은 거울이 거울을 비추듯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와 같다. 방학을 학수고대하는 사채업자 방학수와 연출가, 연출가의 시나리오 속에 존재하고 있는 도연과 장미, 도연과 장미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미로 같은 연극 구조 속을 헤매며 탈출구를 찾는다. 분주하게 일어나는 장면들과 흐름은 극중극 장치 같지만 연출의 의도에 따르면 이것은 트릭이다. 시나리오 속에 등장하는 줄 알았던 도연과 장미는 실재 존재하고 있고 연출가와 배우들은 이들에게 거울처럼 비춰진 또 다른 현실이다. 이 작품은 이중적 구조로 관객들에게 난해함을 던진다. 관객들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미궁에 빠진다. 빠르게 진행된 연출에 관객들은 어안이 벙벙하지만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여운은 헷갈렸던 사실들을 각성시킨다. 지루할 틈은 없다. 실수로 쏟아진 물감처럼 흘러나와 공허한 무대 위를 축축하게 적시는 슬픈 선율의 음악이 관객들의 감정을 괴로울 만큼 헤집어 놓기 때문이다.

 

극 전체의 분위기는 어렵지만, 매끄러운 연출로 인해 흥미진진함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연극 ‘미친극’은 말 그대로 미쳐 돌아가는 감정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욕망의 실타래를 당연한 분위기인양 끌고나간다. 최치언 작가의 거친 풍자의 독설과 촌철살인의 위트는 착한남자 방학수에 딱 맞는 옷처럼 들러붙는다. 최치언은 작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극중에 환기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또 다른 작가 등장의 암시로 끝나는 극의 마무리는 방학수의 지겹게 반복되는 삶과 같이 길고 긴 여운을 준다.

 

자칭 착한남자라지만 전혀 착하지 않은 방학수의 잔혹동화는 극의 제목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우리시대의 비틀어진 욕망은 결국 파멸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착한남자의 삶은 불행하다. 안도는 증오와 함께 오기 때문에.   

 

 

뉴스테이지 강태영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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