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고통과 상처의 역사, 연극 ‘특급호텔’

흐느낀다. 아직 배우도 나오지 않은 무대, 자막만으로도 눈물이 터져 나온다. 그러다 갑자기 분노가 솟구친다. 분노가 극에 다다르자 마음은 현실을 회피한다. 그리고는 진실을 망각해버린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집에서 끌려온 한국의 소녀들이 군대에 유린돼 성의 노예가 됐다는 자막을 시작으로 연극 ‘특급호텔’의 막이 오른다.

 

11살, 16살, 17살, 18살 네 명의 소녀들이 막사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타지에서 만난 소녀들은 고향 이야기를 나눈다. 소녀들의 눈에는 물이 고이고, 목이 메인다. 사실 이 대화의 실체는 그리움이 아니라 생존 욕구다. 소녀들은 고향의 소리와 엄마를 떠올려야만 하루를 버틸 수 있다. 이 막사에서 일어나는 소름끼칠 기억만이 오늘도 소녀들을 짓누르고 있다. 특급호텔이라 이름 붙여진 막사, 그 곳은 일본군 위안부 막사다.

 

극단 초인의 연극 ‘특급호텔’은 미국 극작가 라본느 뮐러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라본느 뮐러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묘사했다. 이에 이번 공연은 굉장한 객관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한국 관객에게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다. 제국주의 군대에 짓밟힌 우리나라 소녀들의 현실 앞에 모든 이성과 계산이 중단된다. 관객은 오로지 멈춰지지 않는 감정과 앞서는 본성으로 네 명의 소녀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무대 위에서 그녀들은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웠던 사건들을 내뱉는다. 뚜렷한 기승전결도 없이 사건들이 나열된다. 극은 줄거리 없이 그들에게 생긴 일들만이 배우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칼로 가슴이 도려내진 일, 자신이 셀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숫자의 남자들의 욕정을 받아내야 했던 일, 폭탄 맞은 친구의 하체를 붙잡고 일본군이 행한 일 등 끔찍하게 나열되는 대화 앞에 사사로운 감정은 허무하다. 기승전결 없이 전달되기에 연극 ‘특급 호텔’은 더욱 무섭고 두렵다. 기승전결의 구조는 극적 재미를 높이고, 주제를 전달하기에 더욱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스스로 그것을 거부한다. 극적 전개 대신 절제된 언어를 선택했다. 그 때문에 관객은 부담스럽다. 배우들이 전달하는 고통과 치욕을 여과 없이 경험한다. 감정이 다른 곳에 분산될 틈을 주지 않는다. 일본의 항복 선언 직전 일어난 선희의 자살은 그래서 놀랍거나 슬프지 않다. 오히려 예상된다. 그녀들의 고통만이 오롯이 전달된 결과다.

 

연극 ‘특급호텔’의 극적 장치 역시 단순하다. 시계 방향으로 360도 회전하는 무대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순환하는 구조의 무대는 위태롭다. 위태로움은 불안을 만들고 그 불안은 온전히 극에 전해지며 소녀들의 현실을 투영한다. 도망가도 도망갈 수 없는 그녀들의 현실, 꿈꿔도 전진할 수 없는 현실이 순환하는 세트와 만나 주제를 명확히 한다. 또한 극단 초인만이 가지는 몸 언어 역시 이 작품에서도 찬란하게 반영된다. 과장되지만 절제되고 정확한 몸짓이 무대에서 언어로 피어나 흡입력을 높인다. 검고 검은 배경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빨간색 소품 역시 의도한 것 이상의 빼어난 효과를 일으킨다.

 

연극 ‘특급호텔’은 애써 관객에게 모든 상황을 구구 절절 이야기 하지 않는다. 무대 위 그들의 언어는 압축적이고 상징적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어렵지 않게 모든 것을 알아듣는다. 알아들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깊이 공감하고 그려낼 수 있다. 우리 역사를 무대로 올린 극이 가지는 힘이다. 그 힘은 관객을 현실에 직면시킨다. 고통과 상처의 역사를 잊을 수 없게 만든다. 극단 초인은 이 지점을 위해 역사적 사실을 포장 없이 무대에 올렸다. 포장 없는 무대는 관객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진실의 반대는 망각이라고 외치는 연극 ‘특급호텔’의 잔상이 강하다.
 

 

 

뉴스테이지 김문선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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