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호동②] 순수한 사랑 그 절정에 서서, 발레리나 김리회
앳돼 보이는 소녀의 볼이 발그레하다. 발그레하던 볼이 자신도 모르게 파르르 떨린다. 지금껏 느껴본 적 없던 감정이 소녀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힘은 아버지도, 나라도, 목숨도 희생해야 할 것으로 만들었다. 사랑. 결과가 아무리 참혹 한다 한들 사랑의 순간 낙랑공주는 참으로 해맑다. 여기, 참으로 해맑은 또 하나의 낙랑공주가 무대에 설 준비를 하고 있다. 바로 국립발레단 그랑 솔리스트 김리회. 창작 발레 ‘왕자호동’의 첫 전막 리허설을 막 마치고 나온 김리회에 볼이 발그레했다. 그녀의 눈이 호동왕자 이야기에 순간 촉촉해진다. “호동왕자가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울컥한 거 있죠? 호동왕자 눈에서 ‘가지마’라는 말이 저절로 읽히는 거예요.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이 작품 다들 꼭 보러 오셔야 해요!”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은 설화를 바탕으로 고전적 감성에 현대적 테크닉을 반영해 발레로 만든 창작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발레’가 한국 설화와 만났다는 자체만으로도 매 년 기대를 모은다. 이번 국립발레단 ‘왕자호동’ 낙랑공주 역에 김리회가 김주원, 이은원과 함께 캐스팅됐다. 김리회는 2006년 ‘호두까기 인형’의 마리 역으로 주역 데뷔한 후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왔지만, ‘왕자호동’의 주역은 처음이다. ‘첫 도전’은 늘 새롭고 행복한 일이지만, 동시에 겁부터 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 말을 온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겁이 좀 났어요. ‘왕자호동’은 일반 발레보다 드라마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해야 하잖아요. 예전에 언니들이 했던 ‘왕자호동’을 볼 때 감정에 정말 푹 빠져 봤었거든요. 제가 그렇게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문병남 부 예술 감독은 첫 만남에 두꺼운 대본을 그녀에게 건넸고, 세세하게 지시했다. 두 번, 세 번 대본을 읽고, 지난 영상을 보면서 그녀는 점점 자신만의 낙랑공주를 세워 가고 있다. 비극인 작품 탓에 사람들이 죽는 영화만 보고, 역사 공부도 다시 하게 된 그녀다.
“창작 발레라 그런지 다른 작품과 마음가짐이 다른 것 같아요. 한국 문화를 알려야겠다는 정신적인 책임감이나 부담감이 있어요. 극 중에 태권도를 하는 장면도 있는데, 발레에 어떻게 접목됐는지 상상이 되세요? 외국인들이 그 장면을 좋아한데요. 참 색다른 것 같아요. 손동작이나 의상 색감, 무대 색감도 달라요. 다른 발레들과 비교해서 감상하시면 더욱 즐겁게 관람하실 수 있을 거예요.”
지난 2월, 국립발레단의 ‘지젤’ 공연이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발레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에 ‘지젤’에 이어 공연되는 ‘왕자호동’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김리회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기대해주시니까 그만큼 이번 공연을 통해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 때문에 긴장되고 부담스럽기도 하죠. 하지만 잘 이겨내고 그 분위기를 이어가면 국립발레단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립발레단의 성장과 기대까지 도맡아 걱정(?)하는 김리회는 국립발레단이 선택한 차세대 무용수다. 2006년 80대 1의 경쟁을 뚫고 입단한 것은 물론, 2009년에는 모스크바 국제 무용 콩쿠르에서 깜짝 은상을 수상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어 2010년 아라베스크 콩쿠르 베스트 커플상, 심사위원상, 한국발레협회 프리마발레리나 상을 받으며 주목받고 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예쁘다’라는 단어를 실감한다. 발레리나로써 완벽한 신체조건, 또랑또랑 자신 있는 대답, 게다가 시종일관 웃어 버리는 얼굴이 참 예쁘다. 스스로는 “아무 때나 웃어서 연습 때마다 많이 혼나는 걸요(웃음)”라며 의기소침해 하지만, 그런 그녀 모습에 관객들은 매료돼 버린다. 그래서일까. 순수하게 호동왕자 밖에 모른다는 낙랑공주가 그녀에게 잘 맞아 보인다. 김리회의 낙랑공주를 만날 수 있는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은 오는 4월 22일부터 2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글_뉴스테이지 김문선 기자, 사진_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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