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80] 미친 짓, 어쩌면 기적! 연극 ‘뼈의 노래’
엄마의 장례식, 그러니까 죽음으로 시작된 연극은 둘째딸 시오리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죽음과 죽음 사이에는 분명 삶의 여러 가지가 존재하나 어쩔 수 없이 죽음에 대한 기운이 극 전반에 희미하게 배어 있다. 삶이라는 것 또한 소소하면서도 일탈적인 단어들, 이를테면 바람, 바람개비, 뼈, 뼈 세공, 신기루, 에뮤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결핍의 상태에서 외로움에 내던져졌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살아왔던 세 가족의 18년 만의 만남은 부조화 속에서 위트 있는 어긋남으로 재기발랄한 조화를 이룬다. 게다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일본 마을 센보에 너무나도 이질적인 호주의 동물 에뮤가 등장해 소동을 일으킨다.
아버지 겐고는 견고하게 풍습을 고집하고 카오루는 이 촌구석에 호주가 왔다는 세상의 변화를 주장한다. 모든 원인이 아버지가 주장하는 풍습과 미신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결국 해결의 실마리 역시 풍습과 미신이 갖고 있다. 센보 마을에는 사람이 죽으면 바다가 보이는 산에 묻고 그 주변을 바람개비로 꾸민 후 시간이 흐른 뒤 뼈를 다시 꺼내 조각하고 간직하는 기묘한 풍습이 있다. 기괴하고도 매력적인 이 풍습에 더해 신기루의 전설 또한 맥을 유지하고 있다. 천 개의 바람개비를 만들어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꾸미면 신기루가 나타나 모든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해주고 소원을 이루게 해 준다는 규센보의 신기루다.
현실과 환상이 오묘하게 맞물려있는 이 연극은 뼈와 바람개비라는 구체적 실체와 신기루 같은 판타지의 경계에 있다. 삶과 죽음, 현대문명과 풍습, 현실과 전설, 갈등과 화해 등 대립되는 두 세계가 공존한다. 전통에 집착하는 신념 때문에 외면당하고 침묵하며 살아가는 겐고와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로 18년 전에 집을 떠났던 카오루, 아픈 시오리는 단단해 보이지만 서로를 받아들일 좁은 틈이 있음을 안다. 다시 만난 가족의 삶에 집중적으로 들어간 연극은 아버지와 두 딸에 대한 적절한 거리감을 두고도 아픔과 충돌, 이해의 과정을 부담스럽지 않게 그려내므로 관객은 그들 사이의 기류를 불편함 없이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작은, 대놓고 말하면 허름한 소극장이 바닷소리가 들리는 시골마을처럼 느껴지는 것은 연극이 지닌 감성의 힘이다. 이상하고도 조용한 이야기가 바람개비의 바람처럼 천천히,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히 불어와 나지막한 쓸쓸함과 아름다움을 전한다. 사람이 태어나 울면 바람이 되고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바람도 죽는다는, 이 기막힌 시적 상상력이 조용한 바람을 일으키며 관객을 저 바다 건너 신기루가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자칫 비현실적인 몽환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는 작품의 갖가지 설정과 유머로 진동하는 땅 위에 건재 한다.
우리는 뼈의 노래를 듣고 에뮤가 바람개비를 갉아먹는 환상에 시달리는 시오리와 함께 미쳐주기 위해 천 개의 바람개비를 만드는 겐고와 카오루의 미친 짓이 기적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신기루. 실제 눈앞에서 바람개비가 돌아가며 벚꽃이 흩날릴 때 우리는 신기루를 만나고 기적을 만나게 된다. 바람개비를 만드는 아버지와 카오루의 소동 과정은 한없이 서정적이기만 한 뼈대에 만화적 상상력과 위트, 맛깔 나는 대사를 더해 연극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세 명이 등장하는 연극은 필요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 다시 말하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유머와 적절한 갈등, 분명 플러스가 되는 음악과 암전으로 들리지 않는 뼈의 노래를 실감나게 한다.
연극 ‘뼈의 노래(연출 윤혜진)’는 극공작소 마방진이 선정한 2011 올해의 최고 기대주 3개 극단이 ‘바통타치’라는 이름으로 준비한 릴레이 공연 중 낭만유랑단의 작품이다. 극단 낭만유랑단이 소리 없이 돌리는 천 개의 바람개비 바람이 이해와 회복의 원동력이 된다. 사계절 벚꽃이 피고 꽃바람이 불어오는 곳, 낭만유랑단의 세계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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