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모비딕’, 새로운 땅에 닻을 내리다! 신지호와 이일근(KoN) 배우의 항해일지①

허먼 멜빌의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뮤지컬 ‘모비딕’은 국내 최초로 도전하는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다. ‘액터-뮤지션 뮤지컬’은 악기 연주가 곧 대사이자 표현이 되는 새로운 장르다. 이러한 낯선 장르에 닻을 내린 주인공들은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신지호, 국내 최초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이일근(KoN)이다. 무대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이야기를 끌어가게 될 두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 낯설고 거칠었던 ‘모비딕’의 항해일지를 들여다봤다.

 

- 모비딕에서 각자 맡은 역할이 궁금하다. 어떤 인물들인가?

 

신지호 : 나는 모비딕에서 이스마엘이라는 캐릭터다. 모비딕에서 이스마엘은 ‘화자’다. 실제 허먼 멜빈이 쓴 원작에서도 첫 문장이 ‘내 이름은 이스마엘이다’로 시작된다. 원작은 배에서 겪은 일들을 쓴 일기다. 이스마엘은 도시에서 직장에 치이고, 갈 곳을 잃어 자신의 어렸을 적 꿈을 이루기 위해 바다로 간다. 바다로 가서 식인 부족 출신이지만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퀴퀘그라는 친구를 만난다. 이스마엘은 막내 선원으로 모든 선원들을 다 지켜보는 역할이다. 그는 모비딕을 마주치는 순간까지 모두 목격하고 기록한다. 결국 마지막에는 이스마엘만 남고 모두 죽는다. 그가 살아남고 나서 1년이 지난 다음에 글을 쓴 것이다.

 

- 맡은 역할이 전체적인 부분을 그려내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겠다.

 

신지호 : 맞다. 그래서 독백이 정말 많다. 그런 부분이 힘들었다.

 

이일근 : 나는 이교도 식인부족 추장의 아들인 작살잡이 퀴퀘그 역을 맡았다. 이교도라서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퀴퀘크는 항상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완벽하게 동화되지는 않는 캐릭터다. 겉보기는 험악해보여도 문명인보다 따뜻하고 순수한 모습을 갖고 있다. 극 속에 등장하는 네레이드라는 정령 캐릭터와 유일하게 소통하는 것도 퀴퀘그다. 네레이드와 소통하면서 비극을 가장 먼저 예감한다. 그런 퀴퀘그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된 사람이 이스마엘이다. 이스마엘은 문명인을 상징한다. 퀴퀘그는 자연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두 사람의 소통이 문명과 자연의 소통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용신 연출님의 의도를 고려해 설명하면 에이협 선장은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고, 퀴퀘그는 ‘정서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대사는 적지만 정서적인 측면에서 말없이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스마엘과 마음을 열고, 자연을 상징하는 네레이드와 소통하면서 정서적 조율을 하는 캐릭터다.

 

신지호 : 대사는 제일 적은데 제일 멋있게 나오는 캐릭터다.(일동 웃음)

 

- 대사가 많은 신지호 씨가 퀴퀘그 역을 부러워하시는 것 같은데?

 

신지호 : 퀴퀘그는 참 멋있다. 대사가 없어서 과묵해 보이는 이미지라 더 멋있는 것 같다. 작품 보시면 아실거다.

 

- 두 분 모두 뮤지컬 배우로서는 첫 도전인데 ‘모비딕’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

 

신지호 : 나는 2010년 '쓰릴미'에서 피아니스트 역으로 연습을 마쳤었다. 그런데 앨범이랑 방송이 겹쳐서 하차하게 됐다. 다른 분이 피아노를 치게 됐는데 거기에서 알게 된 분이 계셨다. 그분이 조용신 연출가님이 ‘모비딕’의 이스마엘 캐릭터를 찾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피아노를 치는 배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정말 안 구해진다는 말을 들었다. 그 분이 연출가님께 ‘쓰릴미’를 같이 했던 친구가 있는데 괜찮을 것 같다고 나를 소개해주셨다. 사실 당시 나는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있는지도 몰랐다. 뮤지컬을 좋아했고, 또 연기에 대한 욕심 같은 것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게다가 ‘모비딕’이 연주를 하면서 연기, 노래를 할 수 있는 뮤지컬이라고 하니까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물론 나중에는 조금 후회도 했다.(웃음)

 

이일근 : 뮤지컬 ‘모비딕’의 정예경 음악감독이 학교 후배다. 서울대 후배라서 원래 잘 알았던 사이다. 정예경 음악감독한테 전화가 와서 이번에 뮤지컬을 만드는 데 악기 연주를 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외에도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와 뮤지컬계 종사하고 있는 친구들이 연락해서 해보라고 권유를 했다. 학교 다닐 때는 대학로에서 작은 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뮤지컬 ‘아이러브유’ 때 바이올린 세션으로 참여한 적도 있다. 원래 뮤지컬에 관심이 있었다. 기회가 오면 ‘뮤지컬을 한번 해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이런 내 생각을 알고 있어서 오디션을 보라고 연락을 해줬다. 7월에 일본의 공연이 있어서 오디션 못 볼 줄 알았는데, 8월 초로 미뤄서 2차 오디션에 참여했다. ‘모비딕’ 첫 공개오디션에서 마지막 번호로 오디션을 봤다. 그 오디션에 합격해 내가 가장 먼저 셋업이 됐다. 조용신 연출가님도 처음에는 시원찮은 여러 부분들 때문에 과연 이 공연이 정상적으로 공연될 수 있을까 했던 차에 나를 보고 ‘되겠다’고 생각하셨다더라. 그렇게 한 명 한 명 모아 공연을 시작했다. 작년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리딩을 준비해서 본격적으로 1년에 걸친 준비를 하게 됐다.(웃음)

 

- 두 분 다 공연을 앞두고 그간 힘들었던 기색이 엿보인다. 연출가님도 무대를 올리기까지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셨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고, 어떤 위기가 있었나?
 
신지호 : 작년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서 창작뮤지컬을 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한 달 동안 연습을 짧게 해서 CJ 아지트에서 첫 공연을 선보였다. 그 때 기자분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당시 기자분들이 ‘오그라드는 연기는 어떻게 할 거냐’, ‘발음은 어떻게 할 거며, 어떻게 캐릭터를 표현할거냐’ 등 처음에는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굉장히 새롭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당시 나는 발음이 정말 힘들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국어 발음이 많이 안 좋았다.

 

- 지금은 굉장히 발음이 좋다. 어색한 줄 잘 모르겠다.
 
신지호 : 노력을 정말 많이 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올해 워크숍 공연을 두 번 했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와 ‘두산 아트랩’에서 공연했다. 그 동안 배우도 많이 바뀌었다. 지금 열 명의 배우가 있는데 그 중 다섯 명이 12월부터 같이 했고, 다른 배우들은 자꾸 바뀌었다. 그래서 적응이 힘든 것도 있었다. 우리 둘은 원 캐스팅이다.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도 불구하고 할 만한 배우가 많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원캐스팅으로 갔다. 그러면서 연습 기간이 너무 길어졌다. 몇 개월 뒤에 또 하고, 몇 개월 뒤에 또 하는 식이었다. 송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 가서 공연했다. 그렇게 띄엄띄엄 공연을 하다 보니 잊어버릴 때 쯤 다시 하는 식이 됐다.(웃음)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시간 내에 연습해서 공연을 하는 게 어려웠다. 모든 배우들이 ‘그만둘까’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일근 : 우선 제작 기간이 굉장히 길었다. 그 동안 참여했던 작품은 이미 셋업이 돼 있는 공연들이었다. 한 달 정도 연습하고 공연하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웃음) 작년 8월 오디션을 봤으니 이제 정말 1년이 다 돼간다. 지호 말대로 워크숍 공연을 하고 그 다음에 잊혀질만하면 다시 또 하고 하는 식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계획했던 일들이 미뤄지게 됐다. 올해 예상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다 보니 기획사에서도 그렇고 나도 못하게 되는 일들이 많아 힘들었다.

 

- 연기는 어땠나? 맡은 역할과 실제 성격이 달라서 고생했다고 들었다.

 

이일근 : 연기도 원래 뮤지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퀴퀘그는 말수가 굉장히 적다. 그래서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 나는 몸을 썩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서 있는 자세부터 정말 힘들었다. 일반 사람들과 달리 이교도의 이방인 캐릭터라 신비스러운 느낌을 줘야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신 있어 하는 정확한 발음과 빠르게 말하기가 퀴퀘그 캐릭터에는 필요가 없는 거다.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고, 몸을 쓰는 데는 자신이 없는데 그걸 잘해야 하다 보니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캐릭터를 접했을 때 ‘내가 무슨 이런 험상궂은 캐릭터를 맡았지’하고 생각했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캐릭터에 맞게 몸에 문신한다고 했을 때도 ‘뭐? 미쳤어’ 이랬다. 지금은 ‘문신 하나 더 넣으면 어떨까’ 하고 내가 먼저 말한다.

 

신지호 : 문신은 퀴퀘그의 자존심이라고. (웃음)

 

이일근 : 맞다. 문신 욕심이 생겼다.(웃음) 처음에 나에게 없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발견해서 지금은 나름대로 잘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퀴퀘그를 점점 닮아가는 것 아닌가.

 

이일근: 대구뮤지컬페스티벌 갔을 때 마지막 날 손병호 게임을 하면서 다들 모여 놀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그걸 가만히 보고 있었다. 딴 짓을 한 것도 아니다. 모두가 얘기하는 걸 다 듣고 있으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걸 본 안무 선생님이 나중에 ‘너 정말 퀴퀘그 같다’고 하시더라. 상황에 동참을 하지는 않으면서 뒤에서 지켜보는 모습이 그렇다고 하셨다. 그런 말을 듣고서 ‘내가 작품을 하면서 조금 변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뉴스테이지 글_박세은 기자, 사진_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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