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현의 스테이지피플] 월드스타·국민가수의 무대를 책임진다, 콘서트 연출가 노성일

“본인만큼이야 하겠어요? 하지만 저도 뭐라 설명하기 힘든 심정이에요.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며 지난날을 돌아보니 지훈이와 함께 했던 수많은 영광의 순간들이 하나하나 전부 떠오릅니다. 필름처럼요.”

 

톱스타 비(정지훈)가 다음 달 초 군 입대를 앞두고 오는 24일과 25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갖는다. 그의 무대를 진두지휘해온 노성일 연출가는 새삼 감회가 새롭다. 4년 전 ‘레전드 오브 레이니즘’ 투어부터 비와 인연을 맺은 이래 60회가 넘는 공연을 함께 해 온 노 연출에게 비는 단순히 연출가와 아티스트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본래 록 뮤지션이었다. 대학 밴드에서 드럼과 베이스를 연주했던 그에게 우연한 기회가 주어졌고 그의 인생 설계가 완전히 달라졌다.

 

- 무대 위의 완전체, 정지훈

 

“2000년도에 ‘디아블로’의 매니저로 이 쪽 일을 시작했어요.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 2001년에 ‘버드록 콘서트’를 진행했었는데 제가 음악을 했었기 때문에 출연진, 공연장 섭외부터 무대 동선까지 주도적으로 관여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공연 당일 연출석까지 앉게 됐죠. 그게 연출가로서 제 첫 무대였습니다.”

 

첫 무대 이후 10여 년이 흘렀다. 그 동안 그는 박진영, 김태우, 손호영, MC몽, DJ DOC 등의 아티스트와 작업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는 인순이와 비의 공연을 전담하고 있다. 소위 국민가수와 월드스타라 불리는 이들의 무대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노 연출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비의 영향이 컸음을 인정한다.

 

“4,5년 전 저는 그저 젊고 유망한 연출가 중 한 명이었어요. 비의 기획사 측에서 가능성을 보고 공연 연출을 제의했는데 그 때 심리적 압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죠. 그도 그럴 것이 그 이전에 비는 제이미 킹처럼 기라성 같은 세계적인 스태프와 작업했으니까요. 뭔가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죠. 저는 엄청난 스케일로 압도하기보다는 팬들이 톱스타 비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당시 지훈이가 막 월드스타로 떠오르면서 팬들에게 점점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거든요. 화려한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지훈이와 좀 더 아기자한 무대를 연출하고 싶어 하는 저의 아이디어가 절충되면서 좋은 결과물들이 나올 수 있었어요.”

 

노 연출이 4년 넘게 지켜본 비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무대 위의 완전체라고 단언했다.

 

“뭘 시켜도 너무 잘해요. 무대 위에서 비는 언제나 1등입니다. 다시 이런 가수를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타고난 광대예요. 댄스야 말할 것도 없고요. 흔히 사람들은 지훈이의 보컬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춤을 월등하게 잘 추기 때문에 비의 노래가 가려지는 것이지요. 작년 연말에 인순이 선생님이 비 공연을 보시고는 ‘비는 정말 노래 잘하는 가수’라고 인정하셨어요. 모니터가 불가능할 정도로 울림이 심한 공연장에서 인이어도 안 끼고 정확한 음정을 잡아내는 사람이 바로 정지훈이예요. 자기 노래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죠. 비의 위상이 거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단 공연을 보고 이야기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비에 대해 시큰둥했던 사람 백이면 백 모두가 공연을 보고 나면 팬이 됩니다. 도쿄돔, 부도칸, 사이타마 아레나, 요요기 국립경기장 4곳을 매진시키고, 타임100에 2번이나 선정되고, 세계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남의 나라 아시안게임 폐막식 엔딩 무대를 장식하는 사람이 월드스타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월드스타죠?”

 

- 중요한 것은 ‘누구의 무대’가 아니라 ‘어떤 무대’다

 

경력 10년 중 절반을 비와 함께 하며 노 연출은 ‘안 해본 공연이 없고 안 가본 공연장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베테랑이 됐다. 하지만 그는 우리 나이로 겨우 서른 넷. 여전히 젊고 갈 길이 멀다. 욕심 내지 않고 천천히 집중하면서 갈 생각이다.

 

“욕심을 내다보면 질이 떨어지게 마련이에요. 맡은 공연의 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얘기죠. 물론 해보고 싶은 공연은 많습니다. 장르적인 한정도 두고 싶지 않아요. 언젠가는 뮤지컬에도 도전해 보고 싶고요. 작년에 ‘김준수 뮤지컬 콘서트’를 하면서 뮤지컬이란 장르도 배웠어요. 사라 브라이트만 공연처럼 다채로운 콘셉트를 가지고 조수미씨의 공연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조용필씨의 콘서트도 해 보고 싶어요. 또 외국 가수 공연 연출도요. 우리나라 가수는 외국 연출자를 쓰는데 외국 가수는 우리 연출자를 쓰는 선례가 없거든요. 케이팝 열풍을 타고 노려볼 만한 타이밍이 아닐까요? (웃음) 아, 그리고 비의 광저우 아시안게임 폐막식 무대를 작업하면서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 개·폐막식을 연출하고픈 꿈도 생겼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공연을 연출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공연을 만드느냐’입니다. 그것은 끝까지 지킬 원칙이지요.”

 

노 연출은 스스로를 ‘허리 세대’라 부르며 한국 공연의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 그가 생각할 때 장비와 스태프의 수준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훌륭하지만 전용극장시스템이 없는 척박한 환경이 우리나라가 공연 선진국이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우리나라는 체육관에서 공연을 하고 일본은 공연장에서 스포츠를 한다는 말’이 있다며 아쉬워한다. 기획자, 가수, 연출자가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은 점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연출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무엇보다 책임 의식을 갖기를 바란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공연을 만만하게 생각 안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들어 ‘그냥 하면 되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덤비는 분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공연 하나를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회의와 검토를 거치는데요. 쉽게 말해서 공연의 총감독이면 모든 걸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기획 단계부터 디데이까지의 타임스케줄도 꿰고 있어야 하고. 어느 연령대가 티켓을 많이 사는지 마케팅적인 상황까지도 알아야 해요. 저는 관객이 입장할 때의 표정, 끝나고 나갈 때의 표정도 살펴봅니다. 공연의 주인은 관객이니까요. 몇 년 동안 수도 없이 깨지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2011 RAIN THE BEST SHOW’ : 9.24(토) ~ 9.25(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조수현(공연칼럼니스트)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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