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현의 스테이지피플] 배우 김우형, 가장 행복했던 ‘지킬’을 보내며

약속보다 늦어진 인터뷰였다. 지난해 12월 뮤지컬 ‘아이다’ 공연을 앞두고 가졌던 김우형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약속이었다. 꿈의 배역이라 말하던 ‘라다메스’를 맡아 열정과 자신감이 충만할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적으로, 또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서도 어느 때보다 고민이 많았고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뮤지컬 ‘아이다’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방황의 종지부를 찍기를 기대했던 그는 뮤지컬 ‘아이다’를 마친 후 자신이 내릴 결론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었다. ‘아이다’가 막을 내린지는 6개월도 더 되었다. 김우형은 그 사이 자신의 또 다른 꿈의 작품인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연장 공연에 투입됐다. 의도치 않게 꿈의 배역이라 손꼽는 두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하게 된 것. 스스로 ‘바닥을 친 것 같다’ 말할 정도로 힘든 시기에 말이다.

 

- 방황후 진화한 지킬을 만나다

 

“뮤지컬 ‘아이다’를 끝낸 후에도 방황은 끝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작품을 한참 쉬려고 했죠. 그런데 ‘지킬앤하이드’ 제의가 들어온 거예요. ‘무슨 소린가’ 했어요. 원래 5월에 끝날 예정이었으니까요. 저는 연장 공연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었어요. 그래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죠. 한 3일 만에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내가 잊고 지내던 뭔가를 일깨워주지 않을까, 나를 슬럼프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김우형을 뮤지컬 배우의 길로 이끈 작품이다. 영화배우를 꿈꾸며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지만 누나인 뮤지컬 배우 김아선이 출연한 ‘지킬앤하이드’를 본 후 뮤지컬의 매력에 빠졌다. 2005년 ‘지킬’ 역의 커버로 오디션에 합격했고, 2006년에는 류정한, 조승우 등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주인공 캐스팅 보드에 이름을 올렸다. 스물여섯, 새파란 신인에게 파격적인 기회였다. ‘김지킬’로 불리며 호평을 받은 김우형은 이후 꾸준히 ‘지킬앤하이드’ 무대에 올랐고, 대형 뮤지컬의 주연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시즌은 뮤지컬 ‘아이다’와 겹쳐 김지킬을 보지 못할 뻔 했지만 갑작스레 공연이 연장되면서 결국 무대에 서게 되었다. 이래저래 그에게 운명과도 같은 작품인 셈이다.

 

“저에게 한 달의 연습 기간이 주어졌어요. 그런데 보름 만에 연습이 다 끝난 거예요. 데이빗 스완(연출)이 어이없어서 웃더라고요. 자기가 줬던 디렉션을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웃음) 저에겐 친정과도 같은 무대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굉장히 안정감을 찾았어요. 재미있게 연습했고, 흥행도 잘 됐고요. 지난 연말부터 올 초까지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인생사도 꼬였고 배우로서의 열정도 식어가고 있었고요. 한 마디로 바닥을 쳤죠. 올 해 제 꿈의 두 작품을 연달아 하게 됐는데 하나는 고통과 상처가 되었지만 큰 공부가 되었고, 하나는 슬럼프를 극복하고 스스로 좀 더 성장했을 느끼게 해 줬어요. 그래서 힘들었지만 ‘아이다’도 소중해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채우고 싶고,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번 시즌 관객은 조금은 달라진 ‘김지킬’을 만났다. 2006년 데뷔 무대에서 따뜻한 마음의 의사(지킬)와 잔혹한 살인마(하이드), 극단의 선과 악을 연기하던 신인 배우는 세월을 더해가며 같은 듯 다른 사람을 표현하려고 애썼고 자연스레 액팅이 디테일해졌다.

 

“시즌을 더해갈수록 선과 악의 경계가 희미해져가는 것 같아요. 해석이 진화하는 것 같달까. 꼭 하이드만 나쁜 놈이라고 할 수 없어요. 지킬도 나쁜 놈인 거예요. 또 지킬과 하이드가 제 성향과 너무 닮아 있어요. 제 안에도 지킬과 하이드가 있거든요. 나에게 친절한 사람에겐 더욱 친절하게 대하지만 거칠게 대하면 전 훨씬 더 거칠게 굴어요. 특히 남자들 사이에서 그렇죠. 남자들 다 비슷할 텐데…. 제가 자존심이 되게 강하거든요. 그걸 건드릴 때 순간 눈빛이 확 바뀐데요. 그렇지만 건드리지만 않으면 온순한 사람이에요.(웃음) 매너 지키려고 하고. 지킬과 하이드도 어차피 한 사람이잖아요. 구분이 있는 듯 없는 듯, 달라 보이면서도 같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표현하는 게 쉽진 않죠. 다음 시즌에도 조금은 진화하고 달라지겠죠? 지킬은 꼬부랑 할아버지 돼서 힘 빠지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 작품이니까요. 저는 무대 위에서 한 순간도 놓지 않아요. 공연을 하다보면 무대 위에서 숨 돌릴 수 있는 타이밍이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관객에게 보이든 안 보이든 2시간 30분 동안 놓지 않아요. 놓지 않으려면, 계속 살아 있으려면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좀 디테일해지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나만의 틈새 공략일수도 있어요. (웃음) (홍)광호처럼 노래가 특출하지 않기 때문에 노래로 한 순간에 드라마를 부각하기엔 무리가 있으니까.”

 

- 김우형다운 선택, ‘미스 사이공’

 

3개월여의 서울 공연을 마치고 6곳의 지방 투어를 마친 김우형의 다음 작품은 11월 25일 대구에서 막이 오르는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다. 미군 병사 존 역으로, 주연이 아닌 조연이다. 지난해 봄에도 같은 작품, 같은 배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다소 의외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뮤지컬 ‘조로’, ‘엘리자벳’, ‘닥터 지바고’ 등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배우라면 욕심낼 법한 초연 대작들이 라인업에 줄줄이 대기 중이기 때문. 기간이 겹치지 않았다면 어쩌면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미스 사이공’을 택했다. 믿음과 의리를 중시하는 그다운 선택이다.

 

“안할 수도 있었지만 져버릴 수 없었어요. 작품 선택에 있어서 항상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생긴 대로 사는 거지 뭐.(웃음) 돈을 벌고 싶으면 돈이 되는 작품을 하는 거고, 돋보이고 싶으면 튀는 작품으로 가는 거고, 좋은 사람들이랑 하고 싶으면 사람 따라 가는 거고요. 배우마다 추구하는 길이 있고 삶의 방향이 있으니까요. 저는 일단 사람이 먼저예요. 물론 작품에 대한 애착도 있죠. 지난번에도 작품이 좋아서 했던 거고, 주인공인 크리스보다는 존이 저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10년쯤 후에는 엔지니어를 해보고 싶어요. 그러고 보면 제가 확실히 배역에 대한 성향이 있나 봐요. 내후년에 ‘레미제라블’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무조건 오디션을 볼 건데 (웃음) 마리우스나 장발장보다는 앙졸라나 자베르가 매력 있거든요. 좀 강하고 남자다운 캐릭터가 저와 잘 맞는 것 같아요.”

 

햇수로 7년차 뮤지컬 배우. 극심한 슬럼프는 벗어났지만 김우형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타인의 시선을 즐기지 않고 자유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의 기질은 스스로를 통제해야 하고 남들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과 매번 갈등한다. 그러나 작품에 임하는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창피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가려고 해요. 처음부터 목적의식을 가지고 가기보단 주어지는 대로, 주어진 안에서 목적을 찾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흘러 중견이 되어 있겠죠? 언제까지 갈진 모르겠지만 욕심 없이 물 흐르듯 가려고요. 내려놓을수록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것을 점점 느끼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연기는 끊임없이 버리는 작업이에요. 나아가 인생도 버려야 채워지고 내려놔야 올라가는 것 같아요.”

 

아마도 내년에는 김우형을 연극 무대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 못해봤기 때문이란다. 연극과를 졸업했지만 아직 연극무대에 못 서봤다. 기회는 많았지만 의지가 부족했고, 솔직히 좀 무섭기도 했단다.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음은 물론이다.

 

“이제 도전해 볼만한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껏 뛰어넘지 못한 한계를 극복시켜 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열정이 타오르고 식어버리기를 반복하면서 느껴지는 불확실한 나의 길이 연극이라는 다른 분위기를 맛보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어떤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연극 무대를 밟고 싶습니다.”

 

 

- 에필로그

 

인터뷰는 ‘지킬앤하이드’의 창원과 대구 공연을 앞두고 있던 10월 초에 진행됐다. 게으른 필자가 느긋하게 인터뷰를 정리하던 사이 시즌이 끝나버렸다. 지난 일요일(16일) 대구에서 마지막 공연을 마친 김우형에게 시즌을 정리하는 코멘트를 부탁했다. 카카오톡으로 보내온 김지킬의 메시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전하고 싶어 원문 그대로 공개한다.)

 

“지금껏 긴장을 못 버리고 있었나봐... 끝나고 많은 관객들 함성을 들으니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리더라구.^^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았어...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지만 함께 한 정말 좋은 우리 배우, 스태프들이 날 지켜준 것 같아요... 난 중간에 투입되었지만 우리 배우, 스태프들 1년을 고생했어. 작년 10월 11일에 연습을 시작했거든. 정말 대단하지?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고 마지막으로 세 번의 지킬을 겪으면서 가장 행복한 시즌이었어...^^ ”

 

 

조수현(공연칼럼니스트) lovestag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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