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in] 그녀의 심성이 배배꼬인 이유는? 연극 ‘걸걸걸걸’의 ‘금냉정’

연극 ‘걸걸걸걸’에는 네 친구가 등장한다. 어릴 적부터 똑똑해 산부인과 의사가 된 ‘나잘난’과 어딘지 배배꼬여 하는 말끝마다 태클인 ‘금냉정’, 예쁘다는 이유로 검사 남편을 만났지만 어딘가 맹한 ‘진선미’ 그리고 지지리 복도 없는 ‘안복순’이 그들이다. 저마다 사연을 품은 이들은 서러운 삶을 꾸역꾸역 삼킨 채 살아가는 중년 여성이다.


작품의 네 인물 중에서 ‘금냉정’은 도도하고 차가운 얼굴의 밤무대 가수다. 결혼도 하지 않고, 어머니도 외면한 채 산다. 친구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뒤틀린 언사다. 하지만 조금은 비뚠 얼굴로 비웃음을 남발하는 그녀의 꼬인 얼굴은 어딘지 서글퍼 보인다.


상처받기 싫어 상처를 주어야 했던 여자, ‘금냉정’


‘금냉정’은 세상의 모든 것에 꼬일 대로 꼬인 여자다. 친구의 걱정스러운 말 한 마디도 곱게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에게 하는 말끝 마다 자신을 힐책하는 것처럼 느껴 날카롭게 대응한다. 밤무대 가수로 활동 중인 그녀는 냉정하고 도도한 얼굴로 관객을 사로잡지만 노래는 모두 립싱크다. 30년 만에 만난 친구들에게도 사실을 숨길 만큼 은밀하게 만나는 남자가 있다.


‘금냉정’은 친구들 사이에 있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무심한 척하며 귀담아듣고 있다. 매사에 직설적으로 말해 솔직해 보이지만 진짜 마음은 드러내지 않는다. ‘금냉정’은 극의 중반쯤 되어서야 자신이 살아온 길을 독백처럼 꺼내놓는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으로서 비치는 ‘금냉정’의 첫인상은 비밀스러움이 가득하다.


연극 ‘걸걸걸걸’ 속 ‘금냉정’은 가난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없는 살림에 돈 벌어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어머니는 절친한 친구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그녀는 늘 친구가 입다 버린 옷을 입어야 했고, 주변 사람들의 동정과 멸시의 시선 속에 살아왔다. 숨기고 싶은 집안 사연은 한 집에 사는 친구 귀에 실려 밖으로 나돌았다. 한참 예민한 사춘기 시절, ‘금냉정’은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닥친 눈총과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나약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남의 말을 왜곡하기 시작했다.


‘밤무대 가수’, ‘유부남과 만나는 여자’, ‘중년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단 ‘금냉정’에게 가해진 사회적 모멸과 압박은 엄청났을 것이다. 주변을 떠도는 말들은 칼날이 되고, 가시로 변해 그녀를 공격했다. 진정한 사랑은 ‘외도’라 외면받았고, 진심 어린 충고도 ‘왜 이렇게 꼬였냐’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금냉정’은 누군가에게 받을 상처가 두려워 스스로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유혜리’, 차갑고 도도한 ‘금냉정’의 숨겨진 불안 드러내


‘유혜리’는 차갑고 도도한 인상으로 TV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연기자다. 그녀는 날 선 캐릭터를 주로 맡아 왔다. 이번 공연의 ‘금냉정’ 역은 기존의 ‘유혜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은 인물이지만 한층 진화된 캐릭터를 연기해 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유혜리’는 ‘금냉정’을 차갑고 도도하기만 한 인물이 아닌 주변 환경 속에서 서서히 닳아버린 중년 여성으로 연기했다. 극의 중반부터 드러나기 시작하는 ‘금냉정’의 사연은 관객에게왜 이 인물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득한다. 차가운 얼굴에 설핏 지나는 근심과 불안, 걱정은 관객에게 ‘금냉정’ 캐릭터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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