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Flashback. 5] 소극장 뮤지컬의 혁명,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

‘혁명’이란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이다. ‘낭만’은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상태’를 말한다. 두 단어의 공통점은 자신의 지금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조금만 비켜서 보면 사랑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것, 단숨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 혹은 ‘혁명’이다.


진부함을 넘어선 이야기의 응집력, 집중도 높여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은 100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프랑스 혁명과 갑신정변 속 세 남녀의 이야기를 담는다. 1789년 프랑스, ‘피에르’와 ‘마리안느’는 귀족으로 안락한 삶을 누리며 살아간다. 어느 날 서민 청년 레옹이 바스티유 감옥의 설계도를 훔치러 오고 우연히 마주친 마리안느와 강렬한 사랑에 빠진다. 1884년 조선의 홍규와 원표는 개혁을 눈앞에 둔 동지다. 원표의 소개로 서도와 마주친 홍규는 그녀와 단숨에 사랑에 빠진다. 서도는 혁명의 성공을 반신반의하면서도 홍규와의 사랑을 꿈꾸며 혁명 속으로 뛰어든다.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의 이야기는 진부하다. 줄거리만 읽어도 비극에 종지부를 찍을 마지막을 미리 짐작케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소재와 전개의 진부함을 능가하는 이야기와 캐릭터의 결속력으로 관객을 집중시킨다. 작품은 혁명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담아낼 수 없기에 ‘사랑’이라는 주제로 과감한 집중과 생략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민중의 ‘혁명’의 이미지는 옅게 했지만, 세 인물의 굵직한 이야기에 힘을 실어 ‘혁명’과 ‘사랑’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강조했다. ‘사랑’과 ‘혁명’ 두 단어 사이의 동질성에 집중한 연출가의 영리한 선택은 용병의 정확한 칼질처럼 단단하고 빈틈이 없다.


급진적인 혁명가인 레옹은 조선의 개혁가 홍규와, 프랑스의 귀족 피에르는 냉철한 현실주의자 원표와 닮아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혁명에 뛰어드는 여인 서도는 마리안느와 일맥상통하는 캐릭터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여섯 남녀의 모습이 트라우마처럼 겹쳐지며 단단한 구성으로 극을 숨 가쁜 비극으로 몰아간다.


소극장의 장점과 대극장의 만족감을 동시에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은 소극장 뮤지컬에는 좀처럼 자주 볼 수 없는 오페레타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인다. 무대 오른쪽에 놓인 파티션 뒤로는 드럼과 퍼커션, 피아노, 바이올린이 자리한다. 적은 악기 구성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하바네라’를 연상케 하는 멜로디나 대극장의 전유물로 느껴지던 장조와 단조를 오가는 전조 등으로 관객에게 마치 대극장 작품을 보는 듯한 풍부한 음악적 만족감을 준다.


작품은 음악의 배치나 구성에도 공을 들였다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극 전반에 걸친 곡의 배치도 강약 조절이 뛰어나지만 한 곡 한 곡 안에서 곡의 구성도 드라마틱하다. 예를 들면 레옹과 마리안느의 첫 만남은 마리안느의 귀족 생활을 다그치는 레옹과 그를 나가게 하려는 마리안느의 부드러운 선율이 교차된다. 이 음악적 대립은 두 인물의 대응을 선명하게 보여주면서도 관객의 긴장을 조였다 풀어주며 극의 드라마를 부각시킨다.

 


무대는 미니멀의 극치다. 관객석을 제외하고 두 면만으로 구성된 무대는 병풍처럼 세워진 파티션만이 전면적으로 배치돼 있다. 소품도 단순하다. 등장하는 소품은 한 개의 좁은 탁상과 두 개의 의자, 한 권의 책, 여러 장의 종이뿐이다. 특히, 극 중 등장하는 ‘레옹의 죽음’ 소설책은 프랑스 혁명과 갑신정변에 놓인 세 남녀를 촘촘하게 잇는 실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여기에 시대를 넘나드는 캐릭터는 각 병렬된 사건을 연결하는 바늘로써 사건을 오가며 이야기를 더욱 단단한 조직체로 만든다.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은 안무, 조명, 음악이 보기 드문 호흡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피에르와 레옹이 서로 맞서 싸우는 장면에서 드럼으로 표현되는 강렬한 총소리의 굉음과 배우들의 동작을 스타카토처럼 끊어지게 보이는 효과를 낸 스트로브 라이트, 작은 탁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견제하는 안무는 작품의 백미다.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은 ‘소극장’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편견을 넘어서면서도 소극장의 장점을 잘 활용한 작품이다. 프랑스 혁명, 갑신정변이라는 시대성 강한 소재와 오페레타 스타일의 음악은 극장을 작아 보이게 할 만큼 짜임새가 단단하다. 또한, ‘ㄴ’ 형태로 구성된 객석의 구석구석을 배려한 블로킹(리허설 단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배치와 위치를 무대에 구성하기 위해 동선이나 자리를 정하는 일)과 동선은 좁은 극장을 십분 활용해 작품을 매력을 극대화했다.


1인 2역, 집중력 있는 연기 선보인 ‘3인의 혁명가’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에 출연하는 배우는 단 세 명이다. 극 중에는 여섯 명의 남녀가 등장하며 배우들은 1인 2역을 맡는다. 레옹과 홍규 역을 맡은 윤석원은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마이 스케어리 걸’ 등에서의 장난스러운 이미지를 벗고 묵직한 연기와 노래로 돌아왔다. 중저음의 묵직한 멜로디뿐만 아니라 가녀린 가성과 폭발적인 고음까지 소화했다. 무엇보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섬세하고 치밀한 연기가 돋보인다.


서도와 마리안느 역의 문진아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와 캐릭터의 조화가 뛰어나다. 부드럽지만 단단한 음색과 성량이 오페레타 스타일의 음악을 소화해 내는데 충분했다. 또한, 아담한 체구에도 두 남자 배우에게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원표와 피에르를 맡은 박성환은 믿음직한 목소리로 대극장 무대에 주로 서 왔던 뮤지컬배우다. 그는 이번 공연을 통해 소극장 무대에서 노래뿐 아니라 연기적으로도 믿을 만한 뮤지컬배우라는 것을 관객에게 입증했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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