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Flashback.6] 뮤지컬 ‘닥터지바고’, 원작 감동 전달 아쉬워

썩어 들어가는 세상은 마음을 비틀고, 비뚤어진 마음은 분노의 표출구를 찾아 떠돈다. 결국, 정제되지 못하고 폭발한 분노는 세상을 붉게 물들인다. 하지만 그 붉음조차 덮지 못한 러시아의 하얀 눈발 아래서도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배경으로 ‘유리 지바고’의 삶과 ‘라라’와의 사랑을 담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원작에서 보여진 혁명을 통과하는 한 남자의 삶과 사랑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지는 못했다.


원작 소설이 다루는 러시아 대격변기의 이야기가 너무 방대했던 탓일까. 혹은 복잡하고 다각적인 인물관계 때문일까.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소설과 영화의 위대한 감동’이라는 광고 문구에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한다.


원작이 러시아혁명을 견뎌가는 한 남자의 삶과 사랑에 대한 대서사시였다면 뮤지컬은 ‘유리 지바고(이하 유리)’와 ‘라라’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작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많고, 유리와 라라의 본격적인 사랑이 시작되기 이전 설명해야 할 부분이 많아 이야기는 산발적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이야기 흐름은 사건을 나열하는데 그쳐 설득력을 얻기에는 부족했다.


뮤지컬 ‘닥터 지바고’는 초점이 잘못 맞춰진 사진처럼 정작 보여야 할 부분은 흐릿하게 드러난다. 혁명 속에서 유리가 겪는 고민과 갈등, 그 속에서 피어나는 유리와 라라의 격정적인 사랑을 기대했던 관객은 아내인 토냐와 애인인 라라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속없는 한 남자만을 무대 위에서 만나게 된다. 혁명 속에서도 진심을 잃지 않았던 뜨거운 열정을 품은 시인이자 의자였던 ‘유리 지바고’의 이야기는 그저 흔한 사랑이야기로 남고 말았다.

 


뮤지컬 ‘닥터 지바고’는 시대적 상황을 잘 그려낸 음악들로 이야기의 빈틈을 메우려고 한다. 실제로 작곡가 루시 사이먼이 만든 개별의 뮤지컬넘버는 아름답다. 특히, 유리와 라라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Now’와 유리가 탈출하면서 부르는 ‘Ashes and tears’는 머릿속을 맴도는 멋진 노래들이다. 하지만 작품 전체의 음악적 구성에서 관객에게 큰 울림을 주는 ‘한 방’의 부재가 아쉽다. 비슷하게 이어지는 음악 구성은 엇비슷한 분위기의 연속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4.4도의 경사진 무대를 선택했다. 안쪽으로 점점 좁혀가는 무대 세트는 깊이와 넓이에 입체감을 줬다. 무대를 가로지르는 철제세트는 뜨거운 전장의 언덕으로, 기차로 이용되며 다양한 변화를 꾀했다. 특히, 흑백 영상으로 처리한 시대와 상황에 대한 장면 설명은 무대 장치 중 단연 돋보인다. 라라와 파샤의 첫날밤 장면에서 뒤편에 느리게 옷을 벗는 여성의 영상이나 빨치산에 잡혀가 괴로워하는 유리의 뒤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무대에서 보여줄 수 없는 상황과 감정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조승우 합류 이전까지 홀로 공연을 이끌어 온 홍광호의 고군분투는 대단했다. 끓어오르는 듯한 중저음과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그의 ‘미친 가창력’은 관객을 기립박수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캐릭터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디테일함이 아쉽다. 전미도와 강필석은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연기를 펼쳐온 배우답게 작품 전체의 안정감을 실어주는 연기를 선보였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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