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엘리자벳’ 한국어 가사 작업 “다 어려웠다”, 박인선 연출가

최근 가장 주목받는 공연은 무엇일까. 소, 중, 대극장을 통틀어 가장 언론과 관객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바로 뮤지컬 ‘엘리자벳’이다. 화려한 캐스팅과 의상, 무대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 등 많은 부분이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협력 연출을 맡은 박인선은 “작품이 잘 될 거라는 믿음은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었죠. 배우들과 스태프들 모두 감동하고 있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하자고 파이팅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 화제작은 해외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이 이끌고 있다. 하지만 해외 연출가와 한국인 배우, 관객 사이의 빈틈을 조율하는 것은 바로 협력 연출 박인선의 몫이다. 그는 협력 연출에 대해 “다른 작품에서 협력 연출은 어떤 포지션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가사 작업을 병행하다 보니 한국말에 대한 부분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주로 맡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몬테크리스토’, ‘햄릿’에 이어 로버트 요한슨과 함께하는 세 번째 작업이다. 박인선은 연이어 같이 작업해온 만큼 “어떤 부분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엘리자벳’ 팀의 호흡은 두 사람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뮤지컬 ‘엘리자벳’의 배우, 스태프들의 트위터를 통해 짧은 글 한 통이 게재됐다. 작품에 참여하는 한 스태프의 자녀가 백혈병을 앓고 있어 헌혈증을 기부를 부탁한다는 트윗이었다. 박인선은 인터뷰 도중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실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건넸다. “저희 스태프 중 한 분의 아이가 백혈병에 걸려 있어요. 그 때문에 배우들을 비롯해 ‘엘리자벳’의 모든 이들이 정성을 모으고 있고, 트위터로도 노력하고 있어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들 도와주고 계세요. 저희가 감동적일 정도로 열성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를 한 분이라도 알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는 뮤지컬 ‘엘리자벳’ 팀의 끈끈한 팀워크와 애정을 짐작게 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한국어가사 작업을 도맡았다. 가사 작업만 해도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됐다. 무대 위에서 불리는 가사는 음악감독과 함께 점검하고, 배우의 동선과 연기하기 편하도록 수정한 기간까지 더해 훨씬 오랜 시간 끝에 탄생한 가사다. 뮤지컬 ‘스페셜 레터’로 제15회 한국뮤지컬대상시상식 극본상, 제3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최우수창작뮤지컬상을 수상하는 등 극작 능력을 인정받은 그지만 이번 가사 작업에 대해서는 “다 어려웠다”고 일언지하에 답했다.
 

“미하엘 쿤체 씨의 가사는 시적이고 아름답고 서정적이에요. 독어를 직역해 놓은 가사를 보면 아름다운 가사가 정말 많아요. 하지만 정해진 음표에 맞춰서 가사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함축되고 축약해서 표현할 수밖에 없어요. 내용 자체도 시적이고 모호하고요. 어려웠던 점은 배우가 가사를 대사화해서 연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시적인 가사는 배우가 움직이고 연기하는 동기부여가 안 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예를 들어, 윤동주의 서시를 연기하라고 한다면 배우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작가인 미하엘 쿤체 씨의 의도를 살리는데 애로사항이 있었어요. 또, ‘엘리자벳’이 관객에게 생소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 최대한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꿨어요. 가사 수정 작업은 지금도 무대 모니터를 하면서 배우들이 말하기 좋고, 관객에게 잘 들리는 가사로 계속 수정하고 있어요”


그는 독일어 가사의 표현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밝혔다. “2005년 빈 공연에 대한 동영상을 보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독일어의 시적인 가사들이 없어졌다고 아쉬워하는 글도 봤었고요. 그런 부분은 저도 개인적으로 아쉬워요. 시적인 가사는 작품에 몰입하기가 어려워서, 배우도 연습을 하다 보면 어려움에 많이 부딪히거든요. 현재로서는 제일 베스트인 상황이라고 믿고 하고 있어요. 아마 재공연이 되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는 가장 작업이 어려웠던 곡으로 의외의 곡을 말했다. “프롤로그는 가장 어려운 넘버 중 하나였어요. 독일어로는 ‘딴 딴’ 두 음절에 ‘아름답고’, ‘냉혹했어’라고 표현이 돼요. 한국어가사로는 그런 의미를 담는 것이 불가능하잖아요. 원작의 이미지를 살리려고 했는데 여전 만족할 만한 부분은 없는 것 같아요. 듣다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고요. 그나마 가장 ‘괜찮다’고 생각하는 노래는 루돌프가 어머니인 엘리자벳 앞에서 부르는 노래인 ‘내가 당신의 거울이라면’이예요. 가사 작업하면서 배우들과 함께 많이 수정했었거든요”


뮤지컬 ‘엘리자벳’은 한국 관객에게 다소 낯선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스’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죽음’이라는 초월적 존재를 등장시켜 판타지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황후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담아냈다. 하지만 연출가 박인선은 이에 대해 “뮤지컬 ‘엘리자벳’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고 운을 뗐다. “자유를 꿈꿨던 한 여성의 이야기고, 관객이 ‘나도 저런 경험이 있는데’,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저런 선택을 했을 텐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예요. 자유롭고 싶은 데 속박당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죽음의 유혹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고요. ‘엘리자벳’의 이야기가 몰락하는 대제국의 황후라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극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동질감도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라고 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뮤지컬 ‘엘리자벳’에 대해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 관객을 향한 고마움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사랑을 해주셔서 배우, 스태프 모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루하루 좋은 공연 보여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많이 사랑해 주세요”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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