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폭력, 관객도 공범자가 된다”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
최근 나주에서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폭력 문제가 또다시 뜨거운 논의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8월 31일 경찰청과 형사정책연구원이 공동 발표한 ‘2011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2,054건으로 나타났다. 전체 강간·강제추행범죄인 1만 9,393건의 10.5%를 차지하는 수치다. 이를 하루 단위로 환산하면 아동·청소년 중 매일 6명이 성범죄 피해를 입는 셈이다.
아동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각 계의 시선과 목소리는 다양하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아동이라도 사회적 무관심이나 방치 속에서 성폭력의 위험에 방치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이다. 이를 위해 시민과 민간단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나서고 있는 가운데 공연계에서는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룬 연극이 무대에 올라 주목받고 있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이기심, 아이들 희생 부른다”
- 관객을 공범자로 만드는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는 후안 마요르가의 스페인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원제:하멜린 Hamelin)’를 황재헌 연출이 각색한 작품이다. 한 도시에서 발생한 아동 성추행 사건과 그림 형제의 동화로도 유명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한 전설을 소재로 했다. “사건의 단순한 고발이나 선동에 그치지 않고, 한국 관객에게 현실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황재헌 연출에게 작품의 특징과 사회적 의미를 물었다.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아동 성폭력을 다룬 이 작품은 어떤 관계성을 맺고 있는가?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이다. 동화에서 어린아이에게 ‘쥐’는 두려운 대상이고, 두려운 대상을 없애주는 존재가 ‘피리 부는 사나이’다. 어린아이를 이용하거나 두렵게 했던 대상을 ‘쥐’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단순한 동화에 그치지 않는다. 동화의 배경에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그 원인을 몰랐던 사람들이 아이들이 병을 옮긴다고 생각해 아이들을 학대했다. 수많은 아이가 어른들에 의해 화형당하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 했다. 이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아이들을 무참히 희생시킨 일화다. 작가는 이것을 현대의 ‘아동 학대’ 문제와 연관 지어 이 작품을 썼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은 실화인가? 스페인에서 이런 작품이 쓰이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작품 속 사건이 실화는 아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도 2000년대 초중반에 수백만에 이르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버림받거나 학대받는 등 아동 학대와 아동 성폭력의 문제가 심각했다. 이 작품의 원제는 ‘하멜른’이다. 작가가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배경이 되는 도시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아동 학대가 자행되는 전 세계의 각 도시를 상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 아동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아동 성폭력 문제는 실제 사건만 본다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다. 하지만 대개 가해자를 성도착증 환자이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가해자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치부하면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둘러싼 주변의 가족들, 이웃들, 사회구조적으로 소외가 발생하는 이유를 한 꺼풀 벗겨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아동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서는 검사 몬떼로가 주인공이다. 워커홀릭인 몬떼로는 아동 학대 문제를 다루면서 정작 자신의 어린 아들과는 서먹하게 지낸다. 하지만 그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이 아이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가족 안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작품은 아동과 진심어린 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는 아동을 대하는 어른들에게 진정한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공연의 사회적 의미, ‘시각의 확대’다”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룬 공연은 관객과 만남으로써 사회적 기능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공연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연의 가장 큰 사회적 기능은 ‘시각의 확대’다. 영화 ‘도가니’의 경우 실사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영상이 대중이 잘 알지 못했던 사회 문제를 폭로하고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는 기능을 했다. 공연은 관객이 여러 가지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표현기법을 사용한다. 당면한 이슈를 관객 스스로가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문제 해결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히는 역할도 한다. 특히, 이 작품은 동화에서 모티브를 차용하면서 당장 눈앞에 닥친 실제의 사건을 우화적으로 드러낸다. 관객 자신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현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작품이 전하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구체화한다면 어떤 것인가?
‘우리 아이와 대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동성폭력의 직접적인 가해자는 범인이겠지만 작품은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무관심과 명령조의 일방적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를 참혹한 범죄의 피해자로 내모는 현실은 한 명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만든 것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만든 것이다. 사회적 소외를 해결하고,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고 이해하기 위한 소통의 노력이 필요하다.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는 지난해 영화 ‘도가니’ 열풍에 이어 ‘아동 성폭력’이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탈의 또 다른 고발이 될 예정이다. 사회적 이슈를 바탕으로 뜨거운 사회적 메시지를 어떻게 무대에서 드러낼지 관객의 기대를 모은다.
아동 성폭력 문제에 대한 알레고리적 질문을 던지는 연극 ‘피리 부는 사나이’는 9월 7일부터 9월 23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된다.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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