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가슴 뛰고 설레어요” 뮤지컬 ‘메노포즈’ 이은하 배우

올해 데뷔 39년을 맞이한 가요계 대선배 이은하가 뮤지컬 ‘메노포즈’를 통해 신인 배우로 돌아왔다. 지난 2~3년 길고도 무거운 침체기를 보낸 그녀는 우연처럼 만난 재즈 음악을 계기로 지난 봄 재즈 앨범 ‘My Song My Jazz’를 발매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 이은하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넓은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고,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됐다. 어릴 적 바쁜 생활 속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뮤지컬 ‘메노포즈’의 제의가 들어왔다.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뮤지컬”의 기회가 스스로 찾아온 것이다. “사람은 때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아요”라는 말하는 ‘배우 이은하’와 함께 ‘이은하와 뮤지컬’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봄에 재즈 앨범을 내신 걸로 알고 있어요. 뒤이어 뮤지컬을 도전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놀랐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해서 정말 바쁘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저 나름대로 여러 가지 사업을 해봤는데 잘 안됐어요. SM, JYP, YG 같은 선배제작사들처럼 되지 못한 건 제가 사업가적 마인드가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저는 ‘그냥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늘이 준 이 노래하는 재능을 안 쓰고 다른 데로 빠지려고 하니까 시련을 주신 것 같아요.


2~3년 슬럼프를 겪다가 재즈를 시작하게 됐어요. 올봄 재즈 음반이 나왔어요. 대중가수로 오랜 시간 노래하다가 주변에서 재즈를 권하기에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왠지 고집스러운 마니아층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재즈를?’이라는 의구심이 들었어요.(웃음) 생각해보면 재즈도 지금 우리가 듣는 음악과 같이 서양음악에서 파생된 거잖아요. 카페 같은 데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인데 제가 너무 어렵게 생각했던 거예요. 재즈를 하면서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그래서 뮤지컬도 하게 됐고요.


- 이제껏 굉장히 바쁘게 살아오신 것 같아요.


사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하늘을 쳐다볼 여유’가 없잖아요. 지금 아이돌스타들이 그렇듯이요. 어릴 땐 시간을 낸다는 게 쉽지 않았고, 지방 공연을 가면 창밖 내다볼 시간도 없이 곯아떨어져서 자다가 깨서 노래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각박한 생활이었죠. 이제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생각할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하늘이 정말 푸르구나’, ‘계절이 바뀌어 가네’, ‘이렇게 개나리가 예뻤구나’ 하면서요. 지금은 오히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그 시간들이 저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요.


- 뮤지컬 제의는 어떻게 받게 되신 거예요?


재즈를 하고 있을 때, 그렇게 하고 싶었던 뮤지컬을 ‘같이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근데 소재가 ‘갱년기’라고 하더라고요. 저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난 아직 결혼을 안 했으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연기자가 역할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거더라고요. 처녀가 이혼녀 역을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매니저도 ‘그런 편견을 버리라’는 조언을 해줬어요. 그래서 하게 됐죠.


- 뮤지컬 첫 도전, 어떠셨어요?


뮤지컬 ‘메노포즈’에 함께하는 분들이 날 인정해주셨다는 게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첫 작품치고는 상당히 혹독했어요.(웃음) 6년 전에 이영자 씨 하는 이 공연을 봤는데 좋더라고요. 예매해서 한 번 더 봤어요. 우리나라 뮤지컬이 이렇게 발전해 오는 동안에도 저는 재즈처럼 뮤지컬은 ‘저들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제의가 들어왔을 땐 “그래 이제 해 볼 때도 됐는데” 하는 마음으로 덤볐죠.


- 노래는 워낙 잘하시는 걸로 잘 알려져 있으시지만 아무래도 연기는 첫 도전이시잖아요. 어려운 점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목소리가 허스키해서 가성을 잘 못 내요. 코러스는 두성과 가성을 섞어서 해줘야 하거든요. 나는 ‘육성’이나 ‘흉성’같은 스트레이트 창법이라 그런 점은 따라가기가 어려웠어요. 소리를 죽여줘야 주인공이 사니까. 나는 가성을 육성으로 조절해서 하려니까 그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 이 작품 하면서 살이 많이 빠지셨다고 들었는데.


예전에는 앞서 나가는 음악을 주로 했어요. 그러다 사업을 하게 되면서 생각하는 게 많이 폐쇄적으로 변했던 것 같아요. 사람도 만나기 싫었고, 그러다 보니 살이 많이 쪘었고요. 그러다 재즈를 하고, 뮤지컬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게 되면서 저절로 부기가 빠졌어요.(웃음)

 


- 뮤지컬 ‘메노포즈’는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메노포즈’라는 말 자체가 ‘폐경’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미혼이시라 공감하시는 부분도 있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다 공감해요. 우리 엄마 이야기고, 내 이야기고, 우리들의 이야기거든요. 표면적으로는 여성들의 이야기지만 남자들의 이야기도 돼요. 저는 ‘폐경’이 누구나 겪는 ‘사춘기’라고 생각해요. 홍역은 앓는 사람이 있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있잖아요. 하지만 ‘사춘기’는 누구나 겪어요. 똑같아요. 어른이 돼서 겪는 ‘사춘기’인거죠.


- 말씀하시는 것을 듣다 보니 이은하 배우가 뮤지컬 ‘메노포즈’를 통해 얻은 것이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이 작품을 하면서 ‘협동’을 배웠어요. 사실 솔로 가수들은 나 혼자 잘하면 되거든요. 코러스들이 나를 받쳐주니까 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되는 거죠. 그런데 공연을 하다 보니까 뮤지컬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서로를 받쳐주고 도와주는 ‘우리’라는 개체가 있어요. 저는 이 작품을 통해 ‘거듭나기’라고 할까. 어릴 적 못 배운 사회생활을 배우는 것 같아요. 나를 낮추고, 당신을 도와주고, 서로를 받쳐주고 함께 윈-윈하는 그런 협동정신을 배웠어요. 실력을 떠나서 저는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초년생을 잘 이끌어줘서 ‘협동’이란 말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 뮤지컬 ‘메노포즈’에서 맡고 계시는 PW 역은 어떠세요? 네 명 중 맏언니 역이잖아요.


외국에선 이 역할 자체가 듬직하고 늠름한 분이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역할이 전문직 여성에 이혼까지 한 인물인데, 결혼도 안 해본 제가 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무대는 라이브다 보니까 내가 겪은 모든 것을 빼내지 않으면 보이지 않더라고요.


-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 있으세요?


주어지는 것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개척해야 하는 부분이잖아요. 제가 결혼도 안 해봤고, 이혼도 안 해봤고, 애를 낳아 본 적도 없지만, 지금 내가 이 여자의 삶으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이건 ‘또 다른 삶’으로 들어가는 거죠. 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제2의 인생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배역을 고집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또 다른 삶으로 파고들고, 분석하고 그게 좋더라고요. 제가 관객 입장에서 볼 때는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인물을 해석하는 시간도 꽤 걸리더라고요. 노래는 앞으로도 계속할 거예요. 하지만 뮤지컬 작품 제의가 들어왔을 때 ‘내가 한 사람의 인생을 공부해서 출연할 수 있다’면 그것도 ‘멋진 인생’일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배우로서, 혹은 가수 이은하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신지.


영원한 ‘이은하’로 남아야겠죠. 열세 살에 노래를 시작해서 39년째 노래를 하고 있어요. 그저 정말 힘이 닿는 한, 내 목소리가 나오는 한 끝까지 노래 부르다 죽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우리에게 은퇴는 없어요. 젊은 친구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마지막 가는 길이 은퇴인 거거든요. 계속 대중 속에 남아 있고 싶어요.


뮤지컬에 대해서는 지금 제가 아직 초년생이라 할 수 있는 말이 많이 없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부터 배우고 싶어요. 그래서 가슴 뛰고 궁금해요. 뮤지컬 ‘메노포즈’를 들여오면서 우리나라화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원작도 궁금하더라고요. 해외 여행가면 이 작품도 보고 싶어요. 뮤지컬 ‘메노포즈’는 저에게 처녀작이라 애착이 많이 가요. 첫사랑은 아니더라도, 애인을 만나면 설레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뮤지컬과 ‘연애’를 좀 해보려고요.(웃음)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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