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in]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의 귀여운 도시할매, ‘지화자’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대구의 한 시골마을. 꽃무늬 스카프에 하늘하늘 스커트 자락을 새초롬하게 흩날리며 도시할매 ‘지화자’가 등장한다. 편지 한 장 들고 그녀가 들어선 곳은 세 마리의 동물(몽, 냥, 꼬)과 함께 살아가는 억척스런 시골할매 ‘박복녀’의 집이다. 그런데 이 도시할매 ‘지화자’가 하는 말이 뜬금없다. 30년 동안 ‘박복녀’가 지켜온 집에서 자기 식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대뜸 자신의 아들집이라며, 마당 평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할매 ‘지화자’는 뻔뻔스럽기 그지없지만 어딘가 밉지 않다. 범상치 않은 매력의 소유자, ‘지화자’가 가지는 캐릭터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어느 새 곁을 내 주게 되는, 소녀 같은 ‘공감’ 캐릭터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에는 두 명의 할머니가 등장하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무뚝뚝하고 억척스러운 ‘박복녀’에 비해 ‘지화자’는 소녀 같은 감성에 들꽃 같이 여린 마음을 지닌 할머니다. 그래서인지 무슨 새침한 말을 해도 미워할 수 없고, 가까이에 있다 보면 어느새 곁을 내주게 된다. 고함치며 내쫓던 박복녀 할머니가 평상을 내주고 밥상을 내주고, 어느새 마음 곁을 내준 것처럼 ‘지화자’ 할머니는 사람의 날카로운 내면을 간단히 무너뜨리는 부드러운 힘이 있다.

‘지화자’가 잃어버린 줄 알고 찾아 나선 유일한 식구, 의붓아들이 사실은 그녀를 버리고 떠난 것이라는 현실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아들 찾기에 발을 동동 구르는 두 할머니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며 뼈아픈 여운을 남긴다. 길 잃은 개 ‘몽’이와 버려진 고양이 ‘냥’이, 알을 못 낳는 닭 ‘꼬’의 슬픈 사연도 화려한 앙상블의 유쾌한 노래와 안무와는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박복녀 할머니의 숨겨진 과거와 함께 그들 모두의 아픔들이 ‘지화자’ 할머니를 중심으로 조금씩 느리게 치유돼 간다.
상대방의 아픔이 자신에게 전이되는 이유는 ‘공감’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는 그동안 알면서도 외면해 왔던 소외된 노인문제, 가족문제를 남녀노소 불문한 다양한 관객에게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진솔한 공감’을 형성한다. 관객은 마음껏 웃으면서도 그들의 아픔을 절절히 이해해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화자’ 할머니가 가진 따뜻하고 유쾌한 ‘공감’의 힘이 있다.
솔직하고 다정하며, 잘 울고 잘 웃는 ‘지화자’ 할머니의 투명한 감성은 타인의 아픔에 공명하는 동시에 자신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 울고 있을 때 함께 울어주는 존재의 소중함을 느껴본 일이 있다. ‘지화자’ 할머니의 진솔한 인정과 애정은 피 한 방물 섞이지 않은 박복녀 일가의 처마 아래서 그녀를 다시금 새로운 ‘식구’로 태어나게 하는 그녀만의 강력한 무기다.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는 외롭고 소외된 현대인에게 잊혀진 ‘식구’의 감성을 되살려주는 수작이다.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면 객석에서도 돌보지 않은 곳곳의 외로움들이 불려나온다. 작은 밥상에 이마를 맞대고 밥을 먹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눈물도 웃음도 함께 나누는 두 할머니의 모습에서 관객은 ‘식구’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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