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별점리뷰]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 원작영화와 무엇이 다르나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는 관객들의 기대치를 맞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다양한 효과가 가능한 영화에 비해, 무대에 서는 연극은 사실상 한계가 많다. 관객들의 기대 방향은 다르지만 그 크기의 기대치는 비슷하다. 연극은 영화 제작과 함께 약 3년간의 기획 기간을 거쳤다. 베일을 벗기까지 많은 궁금증을 안겼던 연극 ‘광해’를 뜯어본다.

 

 

심약한 광해군의 내면을 조각하다 ★★★★

 

필자가 갔던 공연은 원작 영화 ‘광해’의 출연진들이 관람한 날이었다. 이병헌, 류승룡, 장광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연한 배우들은 부담감이 어느 때보다 컸을 터다. 이 날 ‘광해’ 역으로 무대에 오른 김도현은 긴장한 기색이 엿보였다. 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쌓인 배우의 연기는  탁월했다. 김도현은 두 캐릭터를 오고 가야 할 뿐 아니라 빠른 장면 전환으로 생기는 넓은 폭의 감정 변화를 잘 소화했다.

 

연극 ‘광해’의 초반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광해군의 심리를 조명한다. 광해군이 왜 불안에 떨며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해야만 했는지, 자신을 대신한 허수아비를 세우려 했는지를 그린다. 이 장면은 오롯이 ‘광해’의 감정연기로 표현되며 연극의 맛을 살린다. 이 장면은  중전의 대사 “예전 전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와 대조되며 깊은 감흥을 선사한다.

 

실제로 역사 속 광해군은 다면적인 존재였다. 그는 임진왜란에 도망쳐버린 아버지 선조 대신 전방에 남아 난민들을 도왔다. 그가 실시한 ‘대동법’이나 명, 후금 사이에서 펼친 등거리 외교는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리하게 왕궁을 재건하며 민중의 삶을 어렵게 하고, 정적을 숙청하고 어린 친족까지도 암살한 잔인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작품의 연출을 맡은 성재준은 “이번 공연은 왕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밝혀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작품이 진행된다. 또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스타트 지점’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고 전했다.

 


‘연극적인 맛’을 살렸다! ★★★☆

 

연극 ‘광해’의 제작비는 약 3억 원으로 영화 ‘광해’의 20분의 1이다. 무대 세트는 예상보다도 단출했다. 그럼에도 강약을 조절한 북소리와 조명 사용으로 무대전환을 효과적으로 연출했다. 조명의 변화와 무대 뒤 쪽에 내려오는 스크린은 광해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해냈다. 단순한 무대 소품이기에 장면은 빠르게 전환되고, 이야기는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됐다.

 

연극적인 요소의 현장감을 살린 부분은 더욱 돋보였다. 허균은 하선에게 궁궐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게 하며 퀴즈를 낸다. 무대 앞 쪽에 나란히 선 네 명의 인물들은 야바위 노름처럼 이리 저리 자리를 옮기며 뒤섞인다.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네 인물들은 모자가 떨어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한다. 하선은 움직이는 인물들을 쫓으며 ‘깨알웃음’을 선사한다. 하선과 사물놀이패의 연주는 영화보다 큰 비중으로 나타난다. 라이브로 즐기는 사물놀이는 신명난다. 이들이 관객석을 헤매며 두들기는 꽹과리와 북, 장구소리가 관객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개연성은 부족했다. 연극 ‘광해’는 극의 중반까지 영화 ‘광해’의 주요 에피소드들을 줄줄이 나열한다.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는 영화의 스토리를 빠르게 답습하는 정도로 인식되기 쉽다. 물론 영화의 장면을 제한된 조건에서 그대로 그려낸 것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병렬식 나열과 연결되는 힘이 부족한 장면 구성은 지루함을 자아낸다. 

 


이소연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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