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뮤지컬 ‘넌센스’처럼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무대 없어” 배우 강민혜

뮤지컬 ‘넌센스’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배역이 하나 있다. 어린아이 같이 앳된 얼굴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 ‘엠네지아’ 수녀다. 그녀는 신기에 가까운 복화술을 선보이기도 하고, 높은 음역대의 노래를 쉽게 소화해 박수갈채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마냥 밝고 순수해 보이는 ‘엠네지아’도 알고 보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슬픔’으로 채워져 있다. 밝음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연기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5월 16일 늦은 오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강민혜는 ‘엠네지아’ 수녀만큼이나 해사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2008년부터 뮤지컬 ‘넌센스’의 ‘엠네지아’ 역으로 출연해왔다. 선하고 사랑스러운 생김새와 탄탄한 연기력으로 오랫동안 작품과 관객의 신뢰를 동시에 받아온 배우다. 말끝 마다 ‘노력’과 ‘소통’이란 단어를 빼놓지 않는 그녀는 “너무 FM 같은 답변만 한 것 아닌지 모르겠네요”라며 겸연쩍어했다. 실력과 성실로 자신의 길을 나아가고 있는 배우 강민혜와 함께 뮤지컬 ‘넌센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배우로서의 방향성 알려준 뮤지컬 ‘넌센스’


강민혜가 배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고등학교 때다. 그녀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어머니와 성악을 전공한 언니에게서 예술적 영향을 받고 자랐다. 성가대로 활동해 노래도 곧 잘하던 터였다. 이러한 그녀의 ‘끼’를 알아본 고등학교 선생님은 강민혜에게 ‘연극영화과’ 진학을 제안했다. “예체능계로 갈 것 같았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녀의 진로도 고등학교 연극반 활동을 시작하며 급물살을 탔다.


그녀는 연극과에 진학한 뒤 2007년 뮤지컬 ‘우리 동네’를 통해 데뷔했다. 뮤지컬 ‘넌센스’는 이듬해인 2008년 첫 출연했다. 아는 선배의 추천으로 비공개 오디션을 본 것이 인연이 됐다.


“처음에는 ‘레오’ 역으로 캐스팅돼 연습을 했었어요. 뮤지컬에 관심이 많아서 발레를 배웠었거든요. 그러다 연출님께서 평소 제 모습을 보시고는 ‘너 엠네지아 노래 한 번 해봐’라고 하셨어요. 그 자리에서 주뼛거리지 않고 바로 노래했더니 ‘너 앞으로 엠네지아 연습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연기를 어떻게 해야지’가 아니라 그냥 ‘강민혜’를 보여드렸던 것 같아요.”


강민혜가 뮤지컬 ‘넌센스’에 출연한 것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약 5년 정도다. 다른 작품과 병행하거나 잠시 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우연처럼 맺은 뮤지컬 ‘넌센스’와의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한 작품을 하는 이들이 겪는다던 ‘매너리즘’이 그녀를 괴롭혔던 적은 없었을까.


“처음에는 ‘매너리즘’에 빠질 틈이 없었어요. 감당하기 어려운 역이라 정말 열심히 했어요. 잠시 작품을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관객에게 솔직하고 진실하게 보여드리는 게 답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저를 깨우쳐 준 것도 ‘관객’이었어요. 지금 함께하고 있는 정희 배우님은 뮤지컬 ‘넌센스’를 저보다 더 오래 하셨어요. 그런 분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계속 배워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뮤지컬 ‘넌센스’는 강민혜에게 특별한 작품이다. 연극과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접한 작품이었고, 그녀에게 배우로서의 방향성을 알려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강민혜는 “어릴 땐 크고 화려한 작품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포커스를 뒀었어요. 하지만 뮤지컬 ‘넌센스’를 통해 관객과 호흡하는 맛을 배웠죠”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공연하면서 뮤지컬 ‘넌센스’ 만큼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공연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준 작품이라 특별하죠”라고 전했다.


그녀에게 뮤지컬 ‘넌센스’를 오랫동안 하는 이유가 있느냐 묻자 단번에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관객과의 소통이 쉽지는 않아요. 저는 제가 관객과 같은 감정을 소통하고 같은 사건으로 즐거워하고 슬퍼한다는 게 참 좋아요. 뮤지컬 ‘넌센스’가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도 온세대가 함께 소통하면서 볼 수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사실 공연 문화가 특정 연령대나 관객층만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요즘 대학로는 가족끼리 볼 만한 공연이 많지 않아요. 뮤지컬 ‘넌센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뮤지컬 ‘넌센스’ 공연 중 상상 못했던 에피소드들 많다”


강민혜는 ‘엠네지아’ 역을 두고 “자칫하면 바보라고 생각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진지한 얼굴로 ‘엠네지아’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그녀는 “그동안 함께 해온 더블 캐스팅 배우들을 보며 ‘엠네지아’라는 인물이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이 많이 실수했던 점은 ‘엠네지아’가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어요. ‘엠네지아’는 바보가 아니라 솔직하고 순수한 거거든요. 사람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인물이에요. ‘엠네지아’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슬픔이 있어요. 그 슬픔은 늘 가슴 속에 있거든요. 비춰지는 게 워낙 순수해서 오해하기 쉬운 것 같아요.”

 

‘엠네지아’ 역은 극중 놀라운 복화술을 선보인다. 강민혜는 능숙하고도 여유 있는 복화술로 늘 극장을 떠나는 수많은 관객의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그녀에게 복화술의 비법을 묻자 “전문적으로 복화술을 배운 적도 없고, 성악을 배워본 적도 없어요”라는 놀라운 대답이 돌아온다. 그녀는 이어 “연습밖에는 답이 없었어요. 노래나 복화술에서 부족한 부분을 연기적으로 많이 풀어내려고 노력했어요”라고 덧붙였다.


뮤지컬 ‘넌센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이다. 관객은 뮤지컬 ‘넌센스’의 관람자이자 또 한 명의 배우로서 활약한다. 강민혜는 공연 중 에피소드를 묻는 질문에 떠오르는 것이 많은 듯 조용히 혼자 미소 지었다. 그녀는 먼저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라며 운을 뗐다. “제가 ‘못생긴 아저씨’라고 지목하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지목한 건데 정말 기분 나빠 하시는 거예요. 극중 캐릭터를 깨고 ‘죄송해요’라고 할 수 없으니까 많이 당황했죠.(웃음) 지방 공연에서는 선물을 드리는 부분에서 아주머니들이 무대 위로 ‘우르르’ 올라오신 적도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그녀는 차분한 얼굴로 조곤조곤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배우는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에요. 누군가 저를 찾아줘야 할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욕심을 부리려고 하면 오히려 더 어렵고 힘든 것 같아요. 저는 제게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하려고 해요. 그렇다고 퇴보하거나 머물기만 하는 건 또 안 되잖아요. 항상 노력하고 공부하고 싶어요. 늘 관객과 소통하고 싶고요.”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인터뷰사진 정지혜 기자_공연사진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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