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아픔을 가장 낮은 자의 목소리로 노래한다”

연극 ‘품바’는 1981년 초연됐다. 김시라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32년의 세월을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수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다. 하지만 최근 연극 ‘품바’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았다. 저작권을 외면한 여러 다른 형태의 공연이 무대에 오르며, 원작의 ‘오리지널리티’가 희미해진 까닭이다.


올해는 원작의 ‘오리지널리티’를 진하게 살려 돌아온다. 여기에 김뢰하, 장용철, 김왕근, 박호산 등 국내 연극계 걸출한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참여한다. 연출은 제14대 품바였던 선욱현이 맡았다. 그는 극단 필통의 대표이자 극작가, 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오리지널 ‘품바’를 복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는 선욱현 연출가와 연극 ‘품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선욱현 연출가는 연극 ‘품바’의 ‘제14대 품바’로 출연했었다. 올해는 연출을 맡게 됐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약 450번 정도 공연했다. 故김시라 연출님께서 살아계실 때 마지막으로 사사받은 셈이다. 이 작품을 다시 하게 된 것은 일종의 사명감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품바’는 다른 형태로 공연돼 왔다. 5명의 걸인이 출연하는 ‘품바’부터 흔히 ‘유사 품바’라 부르는 공연들이 무대에 올랐다. 연극 ‘품바’는 엄연히 작가가 있는 작품이다. 무분별하게 공연되는 것이 속상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리지널 품바’를 복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 배우로도 출연했고, 연출도 맡았다.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 같다.


연극 ‘품바’를 하면서 계속 느끼지만 정말 쉽지 않은 작품이다. 배우는 연기, 춤, 타령을 한꺼번에 해야 하고, 인간의 희로애락을 극과 극으로 표현해야 한다. 연기적, 체력적으로 상당히 힘들다. 그래서 ‘숙제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 숙제를 끝낼 수 있을까’ 싶다. 아마 지금 출연하고 있는 네 명의 품바(김뢰하, 장용철, 김왕근, 박호산)도 똑같이 느낄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사람들의 신명까지 일으켜야 한다.(웃음)


공연을 보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과로의 민족’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노동 시간은 많은데, 놀 줄을 모른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휴가보다 휴가비를 더 원한다’는 내용이 나오더라. 정말 놀랐다. 그렇게 잠자고 있는 관객들의 신명을 공연장 안에서만큼이라도 일깨우고 싶었다.


- 연극 ‘품바’는 32년 동안 무대에 올랐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텐데.


연극 ‘품바’를 지켜보기 시작한 것은 1993년부터 2001년도까지다. 처음에는 연극 ‘품바’를 돈으로만 보는 작업자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다. 원작자의 의도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1981년 겨울에 처음 공연했다. 5.18 민주화항쟁의 이야기를 들은 원작자가 걸인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후 연극 ‘품바’는 말도 함부로 내뱉을 수 없었던 시대를 거치며 사람들의 숨통이 되어갔다. 가장 낮은 자인 걸인의 말이었기에 제재도 크게 받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이 잘되기 시작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작품’으로만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 점이 섭섭하기도 했다.


이번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40대가 넘는 중견 배우들이다. 올해는 시대에 대한 ‘품바’의 기능을 담으려 했다. 작품은 ‘풍자’와 ‘해학’으로 요약된다. 단순하게 잘못 받아들인다면 ‘거지가 나와서 웃기는 공연’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세상의 아픈 부분을 가장 낮은 자의 목소리로 풍자한다.

 


- 이번 공연은 배우들의 노 개런티로도 화제를 모았다.


참여하는 네 배우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인정받는 배우들이다. 제대로 개런티를 지급하면 제작비가 몇 배는 오른다. 제작사의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네 명의 배우들이 ‘우리 개런티는 욕심부리지 말자’, ‘일이 먼저다’, ‘공연 먼저 만들어보자’ 했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 각각의 배우들은 어떤가? 직접 무대에 선 경험이 있어서 다르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품바’들은 그전의 ‘품바’들과 차이점이 있다. 기존의 ‘품바’는 30대 초중반의 배우들이 무대에 섰다. 현재 출연하는 배우들은 그보다 십 년 위 연배들이다. 연극 ‘품바’의 대사에서 드러나는 진정성과 맛을 가장 잘 살려내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은 대사가 굉장히 어른스럽다. 사실 내가 젊은 시절에 이 역할을 할 때는 뜻도 모르고 했던 것 같다.(웃음) 물론 그전 품바들이 더 젊기 때문에 재담이나 신명은 더 뛰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품바들은 그 대사의 의미를 알고 하는 것 같아 좋다. 


- 연극 ‘품바’를 다시 공연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천장근의 일대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것’이었다. 연극 ‘품바’는 천장근의 일대기를 그린 모노드라마다. 하지만 많은 관객이 천장근의 일대기를 모르고 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 사람의 삶을 더욱 극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


또 다른 하나는 ‘시대성’이다. 관객이 이 작품을 보면서 지금 시대를 다시 생각하고 느껴볼 수 있도록 했다. 일제시대, 해방, 5.18 민주화항쟁 등을 다루는 장면에는 영상을 넣었다. 그동안의 연극 ‘품바’와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관객들이 시각적으로 시대를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작품의 1장과 에필로그장에는 지금 시대의 노숙자를 등장시켜 오늘날에도 ‘품바’가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 이 작품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품바’가 ‘낮은 자’여서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가 춤을 추고, 희망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교수가 품바의 말을 했다면 사람들이 듣지 않았을 거다.(웃음)


- 마지막으로 공연장을 찾는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얼마 전 고등학교 교과서에 ‘역사’가 선택과목이 됐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 있다. 어느 기사에는 ‘5.18 민주화항쟁이 어디서 일어났냐’고 묻는 질문에 한 학생이 ‘강남에서 일어난 것 아니냐’고 대답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지금은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이 이만큼 얇아진 시대다. 연극 ‘품바’는 단순한 오락극이 아니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개론처럼 훑어볼 수 있고, 되새겨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학생들이나 가족이 함께 공연을 본다면 역사도 즐기고, 우리 민족의 신명과 힘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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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가기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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