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만 보이는 배우는 되고 싶지 않다” 배우 고수희

‘유능극강(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이긴다)’은 배우 고수희를 두고 한 말일까.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잘 늙는 일만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배우 고수희의 눈은 차분하지만 힘 있게 빛나고 있었다.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실려 오는 언어들은 가슴에 와 닿는 묵직함이 남달랐다. 그것이 스크린과 무대 위에서 배우 고수희가 보여주는 깊이의 이유일까 싶기도 했다.

 

고수희는 연극 ‘청춘예찬’으로 데뷔해 15년 연기 인생을 걸었다. 데뷔는 연극이었지만 드라마, 영화 등 장르의 구분을 두지 않고 활동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너는 내 운명’, ‘분홍신’,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풍찬노숙’,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등, 이 탄탄한 작품들이 그녀의 연기 인생을 검증해 주는 증거들이다. 고수희가 출연하는 작품에 왠지 모를 믿음이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배우 고수희가 최근 선택한 작품이 바로 연극 ‘선녀씨 이야기’다. 그녀는 어떤 이유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일까. 7월 26일 이른 저녁, 연습실 근처 카페에서 고수희를 만났다.

 

“보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 연극 ‘선녀씨 이야기’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이삼우 연출님의 연락을 받고 대본을 읽어봤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동안 어머니 역을 많이 했었다. 이제 두 번 다시 어머니 역은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이 작품은 꼭 해야겠다 싶었다. 가장 한국적인 엄마를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연극 ‘선녀씨 이야기’는 전국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배우나 연출이 잘한 것도 있겠지만, 내용 자체가 누구에게나 공감이 주는 이야기다. 그것이 가장 큰 메리트인 것 같다. ‘엄마’도 여러 모습이 있지 않나. 영화 ‘마요네즈’ 속의 엄마도 있고, 영화 ‘마더’ 속의 엄마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엄마의 모습이 있다.

 

- 어머니 역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감정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연기할 때는 먼저 내가 그리는 어머니를 가장 많이 생각한다. 내가 봐 왔던 엄마의 모습, 내가 상상하던 엄마의 모습 등등. 조금 모자라는 부분은 실제로 엄마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다.

 

- 어머니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가?

 

자주 하는 편이다. 고수희가 표현하는 ‘엄마’에는 ‘우리 엄마’가 모두 조금씩 들어있다. 그런 것을 보고 관객 분들이 공감해주시는 걸 보면 우리 엄마가 다른 엄마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는 강한 어머니셨다.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엄마. 굉장히 이성적이셨고, 자식에게는 스파르타식으로 대하셨다.(웃음) 연극 ‘선녀씨 이야기’ 중에 어머니가 ‘엄마 이야기를 들어다오. 엄마가 이렇게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는 그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다. 하지만 연기하면서 얼마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 어머니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을 수도 있겠다.

 

어머니 역을 자주 하니까 이제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엄마는 내가 공연하는 작품을 다 보신다. 연극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공연을 할 때 보러 오셔서는 그렇게 우시더라. 배우 어머니로 근 15년을 살아오셨으니 이제 반 무당이시다. 가끔 디렉션도 한다. ‘너 거기서 걸음걸이가 아니더라’, ‘그 부분 대사가 잘 안 들리더라’, ‘거기선 감정을 더 냈어야지’ 하신다. 거의 연출가 수준이다.(웃음)

 

- 연극 ‘선녀씨 이야기’가 어머니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같은 것이 있나?

 

없다. 관객에게 아무것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 느끼는 그대로 가져가셨으면 좋겠다. 나도 관객의 입장일 때 강요당하는 것이 싫다. 아마 이 작품이 싫은 분도 있을 수 있다. 등장하는 어머니가 굉장히 바보 같은 엄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은 열어두고 관객이 알아서 판단하실 수 있게 연기하고 싶다.

 

- 이번 공연에는 임호, 이재은, 진선규 등의 배우가 출연한다. 함께하는 연습은 어떤가.

 

다들 연습 집중도가 높다. 팀워크도 이상할 만큼 굉장히 좋다. 이러다 마지막에 엎어지는 거 아닌가싶을 만큼.(웃음) 그리고 다들 정말 열심히 한다. 연습이 끝나도 집에 안 가고 개인 연습을 남아서 한다. 지금은 자기 것을 찾아가는 단계라 더욱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임호 선배님이 팀 분위기를 많이 만들어 주신다. 진지한 ‘왕’ 역할로만 뵀는데 정말 재미있으시다. (이)재은이는 동생이지만 연기 경력이 월등하게 많아서 그런지 이것저것 많이 배운다. (진)선규는 또 워낙에 잘하는 배우다. 연습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려고 하는 부분이 참 좋다.

 

- 연극 ‘선녀씨 이야기’는 이삼우 연출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어머니 역에 대해 따로 언급 같은 것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믿고 맡겨주시는 것 같다. 특별한 디렉션 없이 동선의 문제만 짚어주신다. 때로는 정말 나를 다 믿는 걸까 싶을 만큼 불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하는 프로덕션 공연이 처음이라 긴장하시는 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혀 개의치 않으신다.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런 부분에서 자만심이 느껴지면 배우들도 동조를 못 할 텐데, 적정선에서 선 타기를 잘하신다. 배우를 갖고 놀 줄 아시는 분이다. 심지어 배우들에게 거제도에 내려가서 작업하자고 하기도 한다.(웃음)

 

- 이 작품을 보는 관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연극 ‘선녀씨 이야기’는 내 이야기고, 내 가족의 이야기고, 우리 엄마의 이야기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공연인 것 같다. 이전에 공연 보신 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연습하면서도 배우들이 자기감정을 못 이겨 그렇게 운다. 방금 전까지 무대에서 연기하던 배우가 잠깐 퇴장한 뒤에 다음 장면을 보면서 우는 거다. 그래서 연습 진행이 더뎌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손수건이 필요한 작품이다’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다. 보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배우 고수희, “나만 보이는 배우는 되지 말자 생각한다”

 

-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엔 연출가로도 데뷔했는데.

 

영화배우, 탤런트에 국한되고 싶지 않다. 그냥 배우이고 싶다. 연기할 수 있는 것은 이것저것 다 해보려고 한다. 연출은 원래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내 이야기를 내가 가장 잘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해보니까 연출의 마음을 알겠더라. 배우도 연출을 해봐야 한다고 느꼈다.

 

- 다방면으로 활동하면서 연극에 꾸준히 출연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첫 데뷔가 연극이었고, 이후에는 연극 1편, 드라마 1편, 영화 1편 이런 식으로 비슷하게 출연했다. 연극이 좋은 건 바로바로 관객의 반응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움직임에 바로 관객의 반응이 오는 게 느껴진다. 중독성 있는 것 같다. 마약을 해본 적 없지만 마약 같은 느낌이랄까.(웃음)

 

- 배우 고수희에게 연극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반드시 연극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장르적인 것 상관없이 ‘무대’를 두고 봤을 때, 내가 거기 있어야 가장 빛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 연기자로서 갖고 있는 자신만의 철학 같은 것이 있나.

 

나는 굉장히 본능적인 배우다. 무대에선 계산을 잘 하지 않는다. 일부러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된다. 무대에서는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약속이 있다. 그것을 지키면서 그때그때 연기한다. 그래서 관객이 볼 때 나의 연기가 촌스럽거나 투박해 보일 수도 있다. 

 

- 마지막으로 배우 고수희가 가고 싶은 연기자로서의 방향성에 대해서 듣고 싶다.

 

사십대가 되어가고 있다. 적당한 나이에 데뷔해서 연기한 지 15년 됐다. 이제는 ‘내가 잘 늙는 일만 남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혈기 왕성할 때 자만하기도 하고, 거만을 떨어보기도 했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무대에서 배려하고 양보하는 걸 배운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40대, 50대가 되고 언젠가 손숙 선생님, 박정자 선생님처럼 되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무대 위에서 나만 보이는 배우는 되고 싶지 않다. 그렇게 겸손을 배우는 것 같다.

 

 

정지혜 기자_사진 박민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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