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무대 전체가 춤의 향연! 국립발레단 ‘돈키호테’

극 전체가 ‘디베르티스망’(춤의 향연)이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춤과 춤 사이로 웃음이 비집고 터져 나온다. 시원하고 미끈한 춤사위가 끝을 맺으면 관객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브라보!’라는 탄성과 경이를 무대 위로 던진다.


발레 ‘돈키호테’는 희극 발레의 대명사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발레로 꼽히는 6개의 작품 중(‘지젤’, ‘라 바야데르’,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돈키호테’) 유일한 희극 발레다.


발레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소설의 줄거리를 따르지 않고, 2권의 일부만을 발췌해 만들어졌다. 기본 줄거리는 마을의 말괄량이 처녀 ‘키트리’와 이발사 ‘바질리오’의 유쾌한 사랑이야기다. ‘키트리’의 아버지는 ‘바질리오’ 대신 마을의 돈 많은 노총각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이에 ‘바질리오’는 연인의 결혼식 날 가짜 자살 소동을 벌인다. ‘돈키호테’는 ‘키트리’의 아버지에게 죽기 전에 두 사람을 결혼시키면 곧 ‘바질리오’가 죽을 것이니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설득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마지못해 결혼을 허락하는 순간, ‘바질리오’가 깨어나고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식을 치른다.


이번 공연은 ‘마리우스 프티파’가 1896년 초연한 안무를 국립발레단 문병남 부예술감독이 재안무했다. ‘국립발레단만의 버전’이 탄생한 셈이다. 문병남 부예술감독은 안무와 내용에 변화를 줘 볼거리 가득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이번 공연에서는 원작의 배경인 스페인의 항구도시 바르셀로나를 스페인의 작은 마을로, 기존에 없던 ‘무차초’라는 캐릭터를 새롭게 설정해 극에 활기를 더했다.

 


국립발레단 ‘돈키호테’는 달아오른 축제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흥겹다. ‘루드비히 밍쿠스’가 작곡한 음악은 스페인의 흥취를 살린 멜로디에 유연함과 박자감이 실려 살아 움틀 댄다. 여기에 더해진 리드미컬한 춤은 활어떼 같은 생명력이 가득하다.


스페인의 전통춤 플라멩코를 떠올리게 하는 동작도 자주 눈에 띈다. 여자무용수는 토슈즈 끝으로 바닥을 탁탁 찍어 내리며 리듬을 만들어내고, 군무는 팔과 다리를 시종일관 뻗고 모으며 경쾌한 움직임을 쉬지 않는다. 객석은 어깨에 어깨를 두른 이방인들이 축제로 하나된 것 마냥 즐거운 기색 가득이다.


투우사 ‘에스파다’와 그의 연인 ‘메르세데스’의 춤은 매혹 그 자체다. ‘에스파다’는 투우사가 황소를 유혹하는 붉은 천을 온몸으로 휘날린다. 힘과 각이 실린 ‘에스파다’의 춤사위는 고전영화의 멋들어진 한 장면처럼 윤기가 흐른다. 온몸을 휘감았다 풀어내는 천의 움직임은 동작을 한층 더 화려하게 장식한다. 집시 여인 ‘메르세데스’는 강렬한 눈빛과 야릇한 관능으로 관객을 옴짝달싹 못하게 사로잡는다.

 

수준급의 실력을 필요로 하는 ‘바질리오’와 ‘키트리’의 춤은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바질리오’가 한 손만을 사용해 ‘키트리’를 들어 올리는 리프트 동작은 밸런스와 힘이 동시에 필요한 고난도의 기술이다. 또한, ‘키트리’를 공중에서 회전시켜 받아내는 리프트 동작도 상대에 대한 믿음과 호흡 없이는 불가능한 장면이다. 이번 공연에서 ‘바질리오’와 ‘키트리’를 맡은 이동훈과 김지영은 오랫동안 맞춰온 파트너십을 십분 발휘했다.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리프트는 절로 탄성이 튀어나올 정도로 힘이 넘쳤다.


1막 ‘키트리’의 캐스터네츠 춤도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이 동작은 ‘키트리’가 박자에 맞춰 끊임없는 회전을 선보여 눈을 둥그렇게 만드는 장면이다.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이라 불리는 김지영의 깔끔하고 스피디한 푸에테는 관객의 쏟아지는 박수 세례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2막은 고전발레에서 빠질 수 없는 ‘발레 블랑’(백색 발레, 여성무용수가 흰색 튀튀를 입고 등장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희극 발레인 만큼 약 40~50분가량의 정통 ‘발레 블랑’ 장면을 15분으로 줄여 ‘쁘띠 발레 블랑’으로 담아냈다. 이 장면은 춤에 여유가 돋보이는 김지영과 아름다운 상체 라인을 자랑하는 박슬기가 어우러져 눈을 즐겁게 했다. 캐릭터 솔리스트로서의 확고한 위치에 있는 이수희의 무게감 있는 ‘돈키호테’ 연기도 눈여겨 볼만 했다.


3막은 ‘대단원의 막’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그랑 파드되’가 펼쳐진다. ‘돈키호테’의 그랑 파드되‘는 수많은 갈라 콘서트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레퍼토리다. ‘그랑 파드되’는 일반적으로 아다지오-남성무용수, 여자무용수 바리에이션-코다로 이뤄진다.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는 아다지오 앞에 앙트레(춤의 도입부)와 바리에이션 앞에 짧은 춤을 집어넣었다.

 


3막은 ‘돈키호테’가 보여주는 화려함과 재치에 정점을 찍는다. 점입가경으로 더해지는 춤은 새로운 무용수의 등장 때마다 기대를 고조시킨다. 쾌활한 ‘무차초’ 캐릭터는 쾌활하고 다양한 변형의 점프 동작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여기에 32회전의 고난도 푸에테를 가볍게 수행하는 김지영의 기교와 박력이 넘치는 점프를 선보인 이동훈의 춤은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고조되는 군무와 ‘바질리오’, ‘키트리’의 힘찬 리프트로 마무리되는 마지막은 2시간여 동안 ‘돈키호테’에 매혹돼 있던 관객의 응축된 감탄사를 터트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