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공연] 왜? 원작이 떠오르지…착한 무비컬

- 리뷰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2001년 동명영화 감성적 음악 더해 기존 스토리 너무 충실 관객몰입 방해
‘번지점프를 하다’ 한 장면(사진=뮤지컬헤븐).


[이미정 극작가]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2001년 이병헌·이은주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이재준 연출에 의해 재현됐다. 시각적 잔상이 강한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 때 보는 이에 따라 장단점이 극명하기 때문에, 기존 한국 ‘뮤비컬(무비+뮤지컬)’은 단순한 서사구조에 코믹한 등장인물의 해프닝을 보여줘 재미를 목적으로 제작된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 점에서 ‘번지점프…’는 기존의 뮤비컬과 차별화돼 있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비 오는 날 갑자기 자신의 우산 속으로 뛰어든 태희를 보고 운명적 사랑을 예감하는 인우의 커진 눈동자를 기억할 것이다. 이 눈동자 신은 후반부에 ‘동성애’ ‘환생’ ‘동반자살’이란 자극적인 코드조차 ‘운명적 사랑’이란 주장 아래 무리 없이 설득된다. 그런데 과연 뮤지컬은 인우의 눈동자 클로즈업을 대신할 장면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뮤지컬 문법을 이용해 영화와 다른 감성 코드를 보여줬다.

극장에 들어서면 공연 시작 전 어둠 속에서 무대 중앙 가림막에 하얀 선만이 길게 투영돼 있다. ‘저 선이 뭘까’가 궁금할 즈음 인우가 등장해서 칠판에 가로로 긴 선을 긋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게 뭘까? 지구다. 이 지구 상 어느 한 곳에 요만한 바늘 하나를 꽂고 저 하늘 꼭대기에서 밀씨를 딱 하나 떨어뜨려 그 바늘에 꽂힐 확률로 너희가 만난 거다. 그것이 인연이다. 어때? 인연이란 참 징글징글하지?” 고등학교 교사인 인우가 학기 첫날 학생들 앞에서 하는 말이다.

무대는 인우의 1983년 기억과 2000년 현재를 오가며 시공을 초월한 다양한 전환을 보여준다. 공연이 끝날 때쯤 무대 중앙에 투영된 선이 반대편의 선과 마주친다. 인우가 말한 그 ‘징글징글’한 운명의 의미를 알게 된다.

작품은 운명적 만남이란 코드를 빼고 보면 끔찍한 내용이다. 만약 인우와 태희가 만나지 않았다면 태희는 교통사고로 죽지 않았을지 모르고 또 인우가 태희의 환생이라고 믿는 고등학생 현빈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둘은 ‘끈 없이 번지점프’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죽게 되는 이 무서운 이야기를 아름다운 사랑으로 보이게 할 미묘한 주인공의 감정선을 고민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압축과 상징이 아쉬웠다. 뮤지컬의 무기는 열 마디 대사를 노래 한 곡에 압축시킬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지나치게 원작 대사를 차용한 후 노래까지 부르니 감정 과잉과 사족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많아졌다.

인우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차분하고 우울하게만 진행되는 점과 이병헌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대사 톤은 오히려 영화를 본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이었다. 또한 “사랑은 그렇게 풍덩 빠지는 게 아니야. 서로 알아보는 거지”라고 말하는 현빈이 ‘운명적 사랑’을 증명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정작 현빈보다는 태희와 인우의 장면이 너무 많았다. 감각적인 무대와 조명, 좋은 음악이었지만 원작에 얽매이지 않는 ‘번지점프…’만의 이야기 구조를 과감히 펼친다면 훨씬 큰 감동을 주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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