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Flashback.24] 당신이 기억하는 진실은 무엇입니까, 연극 ‘퍼즐’

모든 경계가 모호하다. 과거와 현실 사이의 벽은 무너지고, 기억과 진실 사이는 황량하다. 긴급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지옥문 앞에서 살아온 남자 ‘사이먼’. 그가 기억하는 시간은 트랙터 사고로 세인트 주드 병원에 실려 온 2000년이다. 하지만 의사는 그가 독극물 때문에 병원으로 실려 왔으며, 지금이 2002년이라고 말한다. 그가 무엇이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는 무질서한 기억을 헤매는 동안, ‘형의 죽음’이라는 또 다른 진실의 장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소거된 그의 기억,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관객,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되다


연극 ‘퍼즐’은 마이클 쿠니의 ‘포인트 오브 데스’가 원작이다. 영화 ‘아이덴티티’로 잘 알려진 마이클 쿠니는 사람의 이상 심리 상태나 최면, 환생 등 초자연 현상을 통해 긴밀한 스릴러를 선보여 왔다. 연극 ‘퍼즐’은 마이클 쿠니의 가장 큰 장기인 ‘무너진 경계의 혼효’가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2013년 한국 무대에 오른 연극 ‘퍼즐’은 아시아 초연이다. 작품은 현실과 과거의 몽롱한 경계를 통해 주인공 사이먼의 사라진 2년을 찾는 과정을 담는다. 연극 ‘퍼즐’은 ‘우먼 인 블랙’(2012), ‘공포의 대저택’(1961) 등에서 드러나는 영국식 공포와 스릴러가 짙은 작품이다. 연출가 이현규는 한국 관객에게 이질적인 영국식 공포에서 비켜나 조금 더 대중적인 ‘미스터리 스릴러’에 초점을 맞춘다.


이야기는 주인공 ‘사이먼’이 기억을 잃은 채 병원에서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난 2년간의 기억을 잃은 ‘사이먼’은 혼란스러워하지만 이내 평정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내 ‘안나’, 형의 여자였던 ‘클레어’가 등장해 그의 기억을 헝클기 시작한다. 중반부를 지나면 ‘사이먼’의 기억은 빛의 산란처럼 사방으로 재방출된다. 진실의 파편들은 기억인지 상상인지도 구분할 수 없다. 주변은 ‘정신 착란’ 즘으로 치부하며 그의 혼란을 박해한다. 무너진 경계 위로 폐허처럼 드러난 이슥한 과거는 자꾸만 분산되고, 그 길에서 무너지는 ‘사이먼’의 절규는 스릴러의 서슬한 힘줄을 돋워낸다.

 


작품은 ‘사망시점’을 의미하는 원제를 ‘퍼즐’로 바꿨다. ‘퍼즐’의 상징성을 입은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적’ 성격과 상징적 의미가 더욱 단단해졌다. 작품 곳곳에는 이 무대 자체가 하나의 ‘퍼즐’임을 암시하는 대사가 속속 등장한다. 예로, “퍼즐 같은 거예요. 맞추면 됩니다”라는 식이다. 여기에 청각적, 시각적, 공간적 단서들이 작품 곳곳에 산재해 있다.


관객은 ‘아리아드네의 실’과 같은 단서를 따라 천천히 진실을 향해 움직인다. 숨겨진 단서는 관객을 객체가 아닌 작품에 직접 참여하는 주제로 만든다. 관객은 수많은 단서와 기억의 편린 사이에서 스스로 ‘사이먼’의 기억을 재구성한다.


연극 ‘퍼즐’이 여타 스릴러물과 다른 점은 결말은 있지만 결론은 없다는 점이다. 작품은 분명히 나름대로의 결말을 맺고 있다. 그 결말은 꽤 선명하다. 하지만 결말은 앞선 사건들을 관객들이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으로 귀납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연극 ‘퍼즐’은 관객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되는 셈이다.


몰입에는 배우의 영향력도 매우 크다.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만큼 배우가 흡입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작품의 긴장감도 무딘 칼날처럼 뭉툭해진다. ‘사이먼’ 역을 맡은 홍우진은 진실을 찾아가는 ‘사이먼’을 극사실주의적인 연기로 풀어냈다. 그는 ‘여기가 어디죠?’라고 묻는 첫 대사부터 ‘사이먼’의 불안과 긴장을 담아 관객을 극 속으로 부지불식간에 흡입시켰다.

 


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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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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